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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동 명예교수 우리문화의 재발견 "나의 서원, 나의 유학"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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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내용


나의 서원 나의 유학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떠난 여행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떠난 여행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유학자 이기동 교수가 전국의 서원을 중심으로 소중한 우리네 문화유산 답삿길에 올랐다. 서원은 인재를 키우고 선현을 모시며 시정 비판의 기능도 담당하던 조선시대 대표적인 지역 교육 기관이었다.
저자의 발길은 조선 성리학의 발원인 목은 이색 선생을 모신 서천 문헌서원을 필두로, 성균관과 문묘ㆍ함양 남계서원ㆍ정암 선생 적려 유허비ㆍ경주 옥산서원ㆍ김해 신산서원(산해정)ㆍ안동 도산서원을 거쳐 강릉 오죽헌과 강진 다산초당에 닿는다. 멈춰선 곳마다 명망 높던 유학자들의 한 역사와 인간적인 자취가 오롯이 남아 있다. 시간 순으로 이를 가지런히 모으니 일견 조선조 유학의 흐름이 간결하게 정리되는 듯하다. 담양 소쇄원과 보길도 원림 그리고 구례 운조루에 머무르면서는 유교적 이상이 재현된 소박한 천국의 모습을 떠올려보기도 한다.
한국인의 마음으로 사서삼경을 완역해낸지 어느덧 십여 년. 지난해 정년을 맞아 비로소 자유로운 공부의 길로 들어선 저자는 이번 서원과 문화재 답삿길이 진정한 한국인의 마음을 찾아 떠난 여행길이었다고 말한다.


사상의 이정표인 듯


배움의 길손을 기다리던 공간들

저자는 우리 사상의 흐름을 크게 세 줄기로 구분한다. 하늘같은 자기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철저히 수양에 몰두하는 수양철학의 흐름, 이 세상을 지상 천국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적 실천철학의 흐름, 하늘같이 높은 차원에서 모든 것을 아우르며 초연하게 살아가는 초탈원융철학의 흐름이 그것이다.
이 세 흐름은 고려 말 이색이라는 ‘거대한 호수’로 흘러들어가 하나로 합류되었다가 조선시대에 다시 각자의 흐름으로 나뉘어 흐른다. 다시 말해 이 세 줄기의 사상은 모두 목은 선생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유학이란 이름의 우리 사상을 공부해온 저자가 목은 이색 선생을 모신 서천 문헌서원에서 자신의 여정을 시작하는 건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수양철학의 흐름은 회재 이언적 선생(옥산서원)을 거쳐 퇴계 이황 선생(도산서원)에게로 이어졌고, 실천철학의 흐름은 정암 조광조 선생(정암 선생 적려 유허비)을 거쳐 율곡 이이 선생(오죽헌)으로 이어진다. 또한 초탈원융철학의 흐름은 매월당 김시습 선생과 화담 서경덕 선생을 거쳐 남명 조식 선생(산해정)에게로 이어진다. 이 책은 커다란 사유의 세 줄기를 따라 마치 이정표처럼 배움의 길손을 기다리고 있는 서원들과 또한 상념의 징표로 불릴 만한 우리 유산의 공간들을 찾는다. 


현장에서 우리 유학의 정신을 되새겨보다


강단에서 저자는 자상하지만 엄격했다. 그간 오해받거나 왜곡되었던 유학을 우리네 사상으로 정립하는 데 사유의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학자로서 스스로 경계하며 유학의 근간인 수기(修己)와 치인(治人)을 몸소 실천하려 애썼다. 이런 그가 지난해 여름 정년을 맞았다. 강단에 대응해 말과 글과 행동의 대오를 갖추던 차원에서 보다 높은 공부의 세계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은 이제 강단을 떠나 도리어 현장으로 투입된 이의 탐사기이도 하다.
회재 이언적 선생을 모신 옥산서원에서 저자는 수기치인의 증거를 확인한다. 회재 선생은 정적의 재임용에 반대하다가 관직을 박탈당하자 바로 고향 마을 인근의 자옥산 계곡에 독락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자기완성의 수양철학에 매진했다. 선생은 수기가 완성될 때 치인에 나아가되, 치인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기를 보완한다는 정신을 관철한 유학자였다. 7년여에 걸친 수기의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선생은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다시 벼슬길로 나아가 사직에 종사했다.
유교적 이상 사회 건설의 열망을 불태우다 끝내 비극적인 운명과 맞닥뜨려야만 했던 정암 조광조 선생. 그 통한의 징표인 선생의 적려 유허비에서 저자는 이곳이 여느 유적지와 달리 처절한 비운이 서린 공간임을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 개혁에의 의지와 그 달성은 험난한 것이다. 그러나 정암 선생의 정신만큼은 그 후학들에 의해 면면히 계승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저자는 발길을 돌린다.
또한 이 책은 사상의 개념과 이론들을 정치하게 설명하는 대신, 그 맥락과 구도를 거시적으로 다룸으로써 우리 유학의 현재적 의미까지 통시적으로 파악되도록 돕는다. 예컨대 일두 정여창 선생을 모신 남계서원에서 저자는 초월의 맥락을 언급하며 이렇게 적는다. “포함하는 것은 초월할 때 가능하다. 유교에 갇혀 있으면 유교를 초월할 수 없으므로, 유교를 포함할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이는 불교도 마찬가지이며, 오늘날의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리라. 유교를 공부하면서도 유교를 초월하여 유교를 포함할 수 있으면, 동시에 불교와 기독교 등을 포함할 수 있다.”
이 맥락은 유학ㆍ노장철학ㆍ불교 등을 아우르는 초탈원융철학의 최고봉이었던 남명 조식 선생을 모신 신산서원(산해정)에서 선생의 행적을 상기하며 현실화되고 보다 선명해진다. “남명 선생의 일생은 세상사에 초연한 삶으로 일관했다. 죽음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세상사에 초연함이 삶의 의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임진왜란과 구한말, 그의 기상을 이어받은 선비들은 의병을 일으켜 기꺼이 목숨을 바쳤다.” 선생과 그의 학풍에 붙여진 ‘초월의 철학자’와 ‘칼을 든 선비’란 대비는 이렇게 만나 해명된다.



이기동 교수 인터뷰 링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7/16/0200000000AKR20180716129600005.HTML?input=119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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