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나노미터 단위에서 다루는 나노광학이라는 학문은 오늘날 우리가 이용하는 다양한 첨단 기술과 맞닿아 있는 연구 분야다.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세계에서 빛의 성질을 정밀하게 연구하는 이 학문은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미래로의 발전 가능성을 한 단계씩 높여 왔다. 나노광학의 최전선에서 해외 연구 및 교육 활동을 이어 오던 김세정 교수는 2025년 9월, 우리 대학 전자전기공학부에 합류하며 나노광학 연구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낯설고도 흥미로운 해외 연구 환경 속에서 더욱 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안고 귀국한 김세정 교수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2025년 9월에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김세정이라고 합니다. | 멜버른 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연구와 교육 활동을 이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 한국으로 귀국해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멜버른 대학교에서 이직 준비를 하면서 국내 대학뿐만 아니라 미국의 여러 대학에도 함께 지원하고 있었는데요. 그중에서도 성균관대학교의 연구 인프라나 활발한 산업 연계 기회, 우수한 학생들까지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연구자로서 좋은 기회라고 판단되어 최종적으로 우리 대학으로의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인 수원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의의가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나노광학은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주제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노 및 양자광학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빛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매일 접하기에 매우 친숙하지만, 현재 연구 최전선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사실 광학의 응용 분야는 매우 광범위해서 디스플레이나 광통신 등 광학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분야를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빛 알갱이, 즉 광자(photon)를 활용하여 여러 광 디바이스를 만드는 것인데요.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기기들을 들여다보면, 그 내부에 수많은 전자 소자들이 집적되어 컴퓨팅 성능을 구현하듯, 저는 광자로 광소자를 제작하고 이들을 칩 위에 집적함으로써 미래의 컴퓨팅 및 통신 디바이스를 구축하고자 합니다. | 한국은 나노광학 기술 개발 분야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교수님의 오랜 해외 연구를 바탕으로 보았을 때, 한국의 연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강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한국 연구 환경의 강점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국내 대학들의 연구 역량이 비약적으로 높아졌다는 점을 꼽고 싶습니다. 20~30년 전만 해도 해외에서 선진 기술을 습득해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국내에서 학위를 마친 박사들이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더 많을 만큼 해외 명문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의 강력한 제조업 인프라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의 존재는 관련 연구를 수행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합니다. 특히 제조 기반 산업이 부족한 호주에서 생활하며 기업의 중요성을 체감했기에, 탄탄한 생산 기반을 갖춘 한국의 강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 해외 대학에서 한국인 연구자가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흔한 경우인지 궁금합니다. 또한,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과 임용 이후의 경험들이 교수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나요? 요즘에는 외국에 계시는 한국인 교수님들이 적은 숫자는 아니긴 한데, 아무래도 모든 학위를 국내에서 받은 분 중에 해외 임용이 되는 경우는 아직도 흔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네트워킹이나 임용과 관련된 정보를 얻는 측면에서는 쉽지 않은 부분들이 있었고, 그래서 첫 임용까지 시간이 조금 걸리기는 했습니다. 박사후연구원을 총 6년을 했거든요. 그런데도 지나고 보면 모든 과정에서 얻은 게 있었습니다. 일단 제 그룹을 꾸리기까지 총 세 분의 지도교수님 밑에서 일하면서 각 연구실의 연구 노하우와 문화를 배울 수 있었고요. 멜버른대에서 연구실을 꾸리고 그룹 PI (Principal Investigator)로 성장하는 동안에는 호주 대학교의 의사 결정 방식, 직장 문화,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등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두 나라에서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시야를 공유하게 되었고 전보다 더 유연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새로운 관점을 얻게 된 것이 지난 경험들이 남겨준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 멜번에서 KASEA(Korean Academy of Scientists and Engineers in Australia)의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멜번 (전)총영사와 김세정 교수 | 타지에서 오랜 시간 동안 연구를 진행해 오셨는데, 그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시드니에서 4년 동안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고, 멜버른대학교 교수로 4년 반, 총 8년 반을 호주에서 지냈는데요. 처음에는 문화적,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으나, 어렵긴 했지만 재밌게 배웠습니다. 특히 해외에서 교수로 지낸 지난 4년은 현지 학계 시스템과 호주의 조직 문화를 깊이 있게 체감할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인 과학자로서 한인 커뮤니티의 중요성도 몸소 깨달은 결실 있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 시드니공과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 시절 사진. 광학 실험 셋업을 다루고 있는 모습 | 교수님께서 진행하신 연구뿐 아니라 글쓰기 활동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과학동아>에 집필하신 칼럼들이 흥미로웠는데요, 연구자로서의 글쓰기와는 접근 방식이 상당히 다를 듯합니다. 각 분야의 글을 쓰실 때 두는 차별점이 있으신가요? 어쩌다 보니 논문만 쓰던 연구자가 대중 책도 집필하고, 또 과학동아에도 글을 썼는데요. 글쓰기 스타일에 따로 차별점을 두고 있지는 않고, 누구나 읽기 쉽도록 쓰자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글쓰기가 제 주 업무는 아니다 보니, 글을 자주 써서 실력을 늘리자는 생각도 가지고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이로운넷이라는 매거진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 이후에 서서히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과학동아는 어렸을 때 너무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제가 연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요. 주로 중고등학생들이 읽는 글이기 때문에 넷플릭스나 영화에 나온 장면과 최신 과학 동향을 연결해서 재미있으면서도 교육적인 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관련 칼럼: 과학동아 2024년 9월호, 투명인간이 되는 두 가지 방법 | 지난해 9월, 우리 학교 전자전기공학부의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궁금합니다. 교육자로서 보람이자 성취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현하고 확장하도록 돕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작은 성공(micro-success)들을 경험하며 자신감 있는 인재로 성장하고, 나아가 사회 각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구성원이 되는데 제가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연구실에 오는 대학원 학생들과는 즐겁게 연구하면서도, 결코 쉽지만은 않은 과제들을 끈기 있게 완수해 내는 성취의 기쁨을 함께하는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구성원 모두가 세계 최고의 연구자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목표입니다. | 교수님의 연구실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연구실을 이끌어 가시는 과정에서 교수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성균관대에서는 이제 막 첫걸음을 시작하고 있는데요. 다행히도 많은 학생이 지원해 주어서, 그중에서 선발한 7명의 학생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저와 대학원생 모두를 포함한 구성원들의 성장입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그룹으로서의 성공과 구성원 각자의 성장이 일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주는 젊은 학생들에게, 제 연구실에서 보내는 대학원 기간이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의 중후반부로 나아갈 수 있게 해 주는 발판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연구실은 그들에게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말하고 마음껏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샌드박스여야 하며, 그러한 환경은 지도교수와 학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김세정 교수의 NOVA Lab 홈페이지 | 교수님이 바라보시는 나노광학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나노광학은 어떠한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나요? 광학 연구는 기존의 전자 기반 기술이 직면한 병목 현상(bottleneck)*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예중 하나로 우리 연구실에서도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인 광 신경망(Optical Neural Network, ONN) 연구가 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 구축과 전력 수급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저전력·고성능 AI 하드웨어가 필수적인데, 빛을 이용해 연산 효율을 극대화하는 ONN이 대안책이 될 수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학 기술은 전자기기의 물리적 한계를 타개할 가능성이 있어, 미래 기술로 활발히 연구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병목 현상: 전체 시스템의 성능이나 속도가 특정 하나의 구성 요소 때문에 제한되어 저하되는 현상 | 마지막으로, 연구자의 길을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막 넉 달이 지났는데, 학생들을 상담할 때 "이제 나이가 많아서 늦은 것 같아요"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꽤 많이 만났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는 연령대별로 기대되는 역할이 명확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해 연구자의 길을 걷는 것은 보편적인 기대와는 조금 다른 길이고 그만큼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과학적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배우고 싶다면, 학부 연구생부터 경험을 쌓으며 진로를 탐색해 보길 추천합니다. 진부한 말이지만 늦었다고 생각되는 때가 가장 빠른 때입니다.
생성형 AI의 발전과 함께 AI를 악용한 딥페이크 문제도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 대학 소프트웨어학과를 비롯해 인공지능대학원, 데이터사이언스융합학과에 소속된 우사이먼성일 교수는 이러한 사회적 흐름에 발맞춰 딥페이크 탐지 연구를 통해 이에 대응하고 있다. 그는 Google Scholar 기준 딥페이크 분야 전 세계 8위에 오를 정도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기술은 학문적 연구에만 국한된다는 과거 통념과 달리, 우사이먼성일 교수가 보여주는 기술은 실질적인 문제 해결의 핵심 키로 작용하고 있다. 이번 579호 인물포커스에서는 인공지능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그의 철학을 자세히 들어보며, 기술은 어떤 방향성을 갖고 연구되어야 할지 질문을 던진다.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 인공지능대학원, 데이터사이언스융합학과에 소속된 우사이먼성일입니다. 2019년에 성균관대에 부임한 이후 인공지능 보안, 특히 딥페이크 탐지 관련 연구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살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미국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9년 정도 연구원으로 일하였습니다. 직장을 다닐수록 공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늦깎이로 박사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인생에서 후회 없는 가장 큰 투자였던 것 같습니다. 현재 학생들과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고, 하고 싶은 연구 및 일을 할 수 있어서 바쁘면서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 (왼쪽부터) 우사이먼성일 교수, 오픈AI 창업자 샘 알트만 | 최근 딥페이크 탐지 기술 연구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셨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2017년부터 딥페이크 탐지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딥페이크 및 인공지능의 악용 사례가 큰 사회적 문제로 여겨지진 않았지만, 현재 생성형 AI 기술의 발전에 더불어 점점 더 큰 문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보 조작, 가짜 뉴스, 지인 능욕 등 많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의 악용 사례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하게 진화하는 여러 종류의 딥페이크를 높은 성능으로 탐지할 수 있는 강건성과 일반화 성능이 높은 탐지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많은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학습하여 탐지할 수 있는 딥러닝 아키텍처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특히 CLIP, DINO 등 거대 딥러닝 모델을 활용해서 탐지의 일반화 성능을 높이고, 추가로 크고 똑똑한 모델이 화질이 나쁜 모델을 먼저 학습한 뒤 그 내용을 작은 모델에 전달하는 지식 증류(Knowledge Distillation) 기법을 활용해 다양한 환경, 특히 저화질이나, 압축된 딥페이크를 탐지할 수 있는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제가 세계 최초로 공개한 멀티모달 딥페이크 데이터셋(FakeAVCeleb)*을 전 세계 많은 연구자가 활용하는 등의 성과가 났습니다. 또한, 지난 2025년 10월 세계적인 컴퓨터 비전 학술대회인 IEEE ICCV에서 열린 딥페이크 탐지 챌린지에서 우리 팀이 전 세계 2위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네요. * 멀티모달 딥페이크 데이터셋(FakeAVCeleb): 음성과 영상을 동시에 조작한 데이터를 포함해, 보다 현실적인 딥페이크 공격을 탐지하기 위한 핵심 자료 장기간 축적해 온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국내 딥페이크 탐지 기술 분야에서는 우리 연구팀이 최고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와 더불어 딥페이크의 악용을 방지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자 한 노력들이 높이 평가되어 이번 장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교수님 연구팀은 연구에 그치지 않고 국가경찰청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며 딥페이크 해결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업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낸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과거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삼성SDS, 경찰청, 대검찰청과 공동연구를 수행하였고요. 현재는 경찰청, 그리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도 협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찰청에서 수사관이 실제 수사에 적용할 수 있도록 정확도는 물론 활용도까지 높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100% 국산 기술이며 성균관대에서 개발한 이미지/영상 딥페이크 탐지 기법이라고 자부합니다. 나아가 경찰청과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구체적인 수사에서의 어려움을 파악하고 어떻게 실질적인 도움을 더 드릴 수 있을지 꾸준히 모델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국내 경찰청뿐만 아니라, 독일 뒤셀도르프 경찰청과도 협력을 진행하고 있으며, 저희가 만들 탐지 모델을 API화 하여 독일 경찰청에서도 현재 테스트 및 활용 중입니다. 또한,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맞아 현재 중앙선관위와 딥페이크 악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도록 협력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만든 탐지 기술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있어 개인적으로도 뜻깊습니다. | 딥페이크처럼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분야를 연구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연구 과정에서 마주한 난관과 이를 어떻게 극복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AI 기술이 정말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생성형 AI 기술이 딥페이크에 접목되어 많이 악용되고 있습니다. 즉, 학습 데이터에서 사용되지 않은 새로운 딥페이크 기법이 나올 경우, 기존의 모델은 성능이 아주 크게 떨어지게 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고 모델을 학습하고, 새로운 모델을 만드는 과정이 난관이고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신러닝에서 활용되는 Continual Learning, Domain Adaptation Method, 그리고 다양한 Data Augmentation 기법 및 고성능 얼굴인식 기법을 적용해서 탐지 성능을 향상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나 음성이 특정 주파수 영역에 반복적인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경향을 활용해 탐지 성능을 지속적으로 높이도록 모델을 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예측하기 어려운 실세계에서의 딥페이크에도 높은 성능을 보여주는 탐지 기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와 우리 연구실에서는 앞에서의 기술들을 활용하여 현실에서 악용되는 딥페이크를 탐지하는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이력 중에 ‘불멸의 6·25전쟁 영웅, 청년으로 돌아오다 특별 사진전’ 참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해당 전시에 참여하게 되신 계기와 연구자 개인으로서 이 프로젝트가 지닌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 AI 얼굴 복원기술(GFP-GAN) 및 안면 복원(Face Restoration)을 활용해 복원된 김두만 장군의 사진, 출처= 국가보훈처 우연히 국가보훈부에서 6.25 종전 70주년을 맞아 훼손되고 빛바랜 6.25 영웅들의 사진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여 복원할 수 있는지 문의를 주셨어요. 너무나 뜻깊은 일이라 학생들과 기쁘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연구자로서 저희가 개발한 기술들이 나라를 위해 숭고하게 목숨을 바치신 영웅들의 노고 및 희생에 조금이나마 답할 기회가 되어서 너무나 기쁘게 진행한 프로젝트였습니다. 또한, 복원한 사진이 아래와 같이 유족에게도 큰 기쁨을 드릴 수 있어서 더욱 보람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 복원된 사진 속 6.25 영웅 유족의 말- “소프트웨어학과·인공지능학과 학생 여러분 엄청나게 감사합니다. 특히, 우사이먼 성일 교수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함을 전하려 했으나 찾지 못해 이곳이라도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감사의 인사말을 전합니다. (중략) 지난 3월 보훈부와 성균관대학 소프트웨어학과·인공지능학과 학생들이 피땀 흘려 이 세상에 단 한 장 남은 사진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이쁘고 아름답게 복원작업을 해주셨습니다. 70년 전 아버지의 색 바랜 육사 8기생 생도 시절 사진이 단 한 장 남아 있었는데, 그것도 육사 민원실에 요청해 간신히 생도 시절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어 집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전사하신 아버님의 사진 한 장은 돈으로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 1호입니다. 그런 사진을 자연스러운 컬러 사진으로 너무나도 생동감 있게 복원작업을 해 주셔서 말도 못 하게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성균관대학, 고생하신 학생분들께 진심으로 고마움과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해당 프로젝트 관련 기사 보러 가기 | 교수님의 연구를 살펴보면 기술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된 의의가 느껴집니다. 연구 주제를 결정하실 때 가장 우선시하는 기준이나 가치가 무엇일까요? 제가 연구 주제를 결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해당 기술이 경제적 가치를 넘어서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 2. 의미 있는, 그리고 진정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기술인가? 3. 나를 포함한 연구원들이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주제인가? 4. 이전에 많이 연구가 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인가? 5. 앞으로 꼭 필요한 기술인가? 학문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근본적으로 사람을 도와주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간적, 사회적 가치가 변동되고,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현재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의 폐해 및 위험성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걱정이 많이 됩니다. 따라서 저는 연구자 및 기술자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으면서도 인간적 가치를 포괄할 수 있는 인공지능 연구 및 개발에 큰 관심을 가지고 해당 연구를 준비합니다. | 이전에 NASA 제트추진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신 경험도 있으십니다. 이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나 현재 연구에 영향을 준 경험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2005년 참여한 화성 정찰 궤도선(MRO)* 연구가 저의 첫 번째 스페이스 미션 프로젝트였습니다. 저는 화성에서 촬영한 사진 파일을 지구로 전송하는 CFDP file transfer protocol과 DTN (Delay-Tolerant Networking)을 연구 및 개발하였는데요. 제가 개발에 참여한 인공위성이 화성에 갔다는 사실과, 설계 수명을 훨씬 넘긴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것 같습니다. * 화성 정찰 궤도선(MRO): 화성에 물이 존재하는지 탐색하고 화성 탐사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설계된 우주선으로, 화성 착륙선의 안전한 착륙지 선정 및 화성 표면에서 물이 흐르던 추가 증거 등을 제공함. ▲ 화성정찰궤도선 그래픽 이미지. 출처= NASA 물질적 가치를 떠나 과학적으로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정말 소중한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사에서 정말로 뛰어난 엔지니어, 과학자, 기술자들과 연구할 수 있는 것 또한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일하며 여러 명이 함께 과제를 수행할 때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현재 저는 나사에서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배운 협업 방법, 조화의 방식, 연구 문제에 대한 접근, 연구 논문 및 제안서 작성법 등은 지금의 저에게 다방면으로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연구 분야나, 현재 관심을 갖고 준비 중인 연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공지능 보안, 그리고 앞서 말했듯 인간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하는 인공지능 기술, 새로운 인공지능 파운데이션 모델을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 연구 활동 외에도 교육자이자 연구실 책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연구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좋은 연구실은 모든 참여 연구원이 인간적으로나 일로나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약속이기에 어디서나 정말로 중요한 부분입니다. 어떤 조직이든 1명으로는 그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개인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야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구성원끼리 서로 존중과 배려를 해야 하고, 이기적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공부 및 연구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과정이 쉽지 않기에, 제가 본 바에 의하면 똑똑한 학생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끈기가 있고 열심히 하는 학생이 연구실 생활 및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책임감 있고 끈기 있는 학생이 많으면 자연스럽게 성과가 잘 나오고 저절로 좋은 연구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학생들과 사진 복원 중인 우사이먼성일 교수, 출처= 전자신문 | 마지막으로 교수님의 연구실인 DASH Lab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지금 관심도가 높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인공지능기술(예: LLM의 성능을 어떻게 높일까?) 을 벗어나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정말로 의미 있는 인공지능 기술(예: LLM의 문제점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해결할까?) 을 연구 및 개발하고 싶은 학생들은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앞서 말했듯 좋은 연구실을 만들기에 필요한 착하고 책임감 있게 열심히 연구하실 학생분들이 지원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사이먼 교수의 DASH Lab 연구실 탐방 기사 읽으러 가기 >DASH Lab 홈페이지
면역은 우리 몸이 세계와 형성하는 경계를 지키는 가장 섬세한 감각이다. 지난 9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SAIHST) 융합의과학과에 부임한 김항래 교수는 이 경계를 더욱 정밀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연구를 통해 현대 면역학이 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다시 한번 조명했다. 이번 호에서는 김항래 교수가 축적해 온 깊은 탐구, 그리고 면역학이라는 학문을 연구하는 길 위에서 마주한 의미 있는 우연들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삼성융합의과학원 융합의과학과 및 삼성서울병원 유전자종합연구소에 소속된 교수 김항래입니다. 저의 주요 관심 연구 분야는 memory CD8+ T 세포의 표현형 및 기능을 분석하고 이와 관련된 기전을 연구하여 기능을 회복시키거나 강화하는 요인을 탐색하는 것이며, 환자 치료 중심의 면역치료 연구를 확장하고자 2025년 9월에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우리 대학 삼성융합의과학원으로 이직하게 되었습니다. ▲ 김항래 교수 | 학부 때는 수의학과에 재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의학 대신 의학을 연구하시기로 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네, 저는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습니다. 다른 학과와는 달리 수의학과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고등학교처럼 강의와 실습을 진행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학생이 별도로 연구에 대해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학부 1학년생이던 1991년, 패치 클램프(patch clamp)* 기술 개발로 에르빈 네어와 베르트 자크만 두 분이 노벨상을 공동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생리학을 접하기 전이었지만 전기생리학의 원리에 매력을 느껴 앞으로 이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패치 클램프(patch clamp): 세포에 미세한 전극을 붙여 이온 채널의 전류 흐름을 측정하는 실험 기법 그러다 면역학을 배우고 나서 그보다 훨씬 복잡한 세계에 더욱 강한 매력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특히 1993년 《사이언스(Science)》에 실린, 천연두 바이러스 잔여 재고를 파괴할 것인지에 대한 상반된 주장을 담은 두 편의 논문이 제 연구 방향을 선택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논쟁의 계기가 된 천연두는 인류가 감염병에 대응하여 드물게 얻어낸 승리의 기록이자 '행복한 고민'이라 불릴 만합니다. 또한, 우리가 사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의 기원 역시 천연두 바이러스 백신주(vaccinia virus)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면역학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접했던 이 논문이 면역학을 공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어 추후 대학원에서 연구자의 길을 고민하던 중 의과대학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The Remaining Stocks of Smallpox Virus Should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Why the Smallpox Virus Stocks Should Not Be Destroyed』(사이언스, 1993) |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인 면역학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면역학을 연구 방법론이나 질문을 해결하는 접근 방식에 따라 세포면역학과 분자면역학으로 나눈다면, 제 연구 분야는 세포면역학에 가깝습니다. 연구의 주요 대상 세포는 세포독성 T 세포로 알려진 CD8+ T 세포입니다. 저는 암,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의 질병 상태에 따라 이 CD8+ T 세포의 기능이 어떻게 영향받는지 분석하고, 그 기능을 개선할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장기적인 방어 능력에 핵심적인 기억 T 세포(memory T cell)로의 분화와 관련된 요인들을 탐색하는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구 초기에는 사람의 T 세포를 대상으로 시작했으며, 현재는 기전 연구 및 치료를 목적으로 쥐를 이용한 동물 모델에서의 연구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에서는 면역치료를 이해하는 데에 T 세포를 중심으로 연구의 축이 세워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을 시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면역세포 치료제에는 T 세포 외에도 NK 세포, 대식세포 등이 활용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T 세포는 면역세포 치료 분야에서 가장 오랫동안 연구되어 면역치료의 기초 생물학과 임상적인 시도가 많이 축적된 세포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항원 인식, 신호 전달, 면역학적 시냅스 형성까지 분자 수준에서 정밀하게 해석이 가능한 유일한 면역세포입니다. 이렇게 견고하게 축적된 지식은 새로운 기술이나 개념을 검증하는 데 있어 가장 견고한 기준점을 제공하며, 연구 결과를 임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예측력을 높여줍니다. 더불어 T 세포는 CAR, TCR, 면역관문(immune checkpoint) 등의 공학적인 개입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져 온 플랫폼입니다. 따라서 면역 반응의 원리를 밝히는 동시에 이를 치료 전략으로 확장하기에 가장 적합합니다. 결론적으로 T 세포를 중심으로 한 접근은 특정 세포에 국한된 선택이 아니라, 면역치료 전반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검증된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연구 중 FRET 센서를 이용해서 최적화된 CAR 세포를 선별해 내는 연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해당 연구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연구는 CAR-T 세포의 성능을 평가할 때 암 항원에 얼마나 강하게 결합하는지보다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얼마나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실시간으로 증명한 연구입니다. 이를 위해 성지혜 교수(KIST, 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형광 센서 기술, 이창한 교수(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항체 개발 연구, 그리고 장미희 박사(KIST)의 CAR-NK 연구가 결합한 공동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우리 연구팀은 FRET(형광 공명 에너지 전달) 센서를 활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와 결합한 직후 내부 신호가 얼마나 잘 조작되는지를 측정했습니다. 그 결과, 가장 강하게 결합하는 CAR보다 중간 수준의 결합력을 가진 CAR이 항원과 더 안정적인 결합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실제 면역세포 기능도 더 우수함을 규명했습니다. 이는 CAR-T 설계의 기준을 단순히 결합력 중심에서 기능적인 면역학적 시냅스 구조 형성과 신호 전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함을 제시한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 면역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현시점, 면역치료 연구에서 앞으로 가장 중요해질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현재 면역치료 연구의 동향은 “더 강한 면역반응”보다는 “더 정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면역조절”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명확하게 바뀌고 있으며, 이는 저희 연구를 포함한 최근 기초 및 임상 연구 결과들에 따라 뒷받침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하나의 면역세포에 국한된 분석을 넘어 면역세포 간 상호작용과 공간적 조직이 치료 반응에 미치는 영향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면역 반응이 어디에서 어떤 구조로 일어나는가’가 치료 결과를 좌우한다는 근거들이 제시되고 있으며, 이는 최근 면역치료 연구 전반에서 공통으로 강조되는 흐름입니다. 임상적으로는 단일 면역치료 전략의 한계도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환자에게서는 단일 면역치료가 탁월한 효과를 보이지만, 다수의 환자에게서는 충분한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면역치료를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표적 치료 등의 다른 전략과 병용하는 전략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동일한 치료라도 환자마다 반응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면역 반응을 사전에 예측하는 접근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면역 반응을 예측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과 같은 핵심 과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종합적으로 볼 때, 현재 면역치료 연구자들은 면역을 ‘더 세게 켜는’ 기술에서 벗어나 면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조율하는’ 시스템 과학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는 기초 면역학 발견과 임상 사례들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방향이라고 판단합니다. |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있었던 뜻깊거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으신가요? 연구하면서 가장 뜻깊고 기억에 남는 순간은 완벽하게 계획된 실험이 아닌 예상과 어긋난 데이터로부터 새로운 질문이 시작될 때입니다. 연구의 진정한 매력은 내가 얻은 데이터에서 출발한 작은 ‘발견’을 바탕으로 가설을 세우고, 지식의 공백을 채워 나가며 때로는 기존에 널리 받아들여지던 신념이나 논리에 도전할 수 있을 때 느껴집니다. 현재 마무리 단계에 있는 한 연구 역시 실험 과정에서 처음에는 ‘잘못된 결과’라고 여겼던 데이터에서 출발했습니다. 그 결과를 단순히 폐기하지 않고 남아 있는 사실을 근거로 재해석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면역세포가 염증 조직이나 종양에 침투하는 방식에 대한 새로운 기전과 시각을 제시하는 연구로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연구에서 우연(serendipity)과 집요한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연구에 관한 결과는 추후에 여러분과 논문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우리 대학 융합의과학원에서의 김항래 교수님의 모습 또한 궁금합니다. 2025년 9월, 교수로 부임하시면서 진행하신 연구나 수업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융합의과학원에는 그동안 뵙지 못했던 전공 분야의 교수님들이 계셔서 저의 연구를 확장할 좋은 기회가 많습니다. 현재는 이곳으로 옮겨와 면역치료를 위한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배우고 공부하는 중입니다. 수업의 경우에는 올해 유전자종합연구소에서 면역학 개론에 해당하는 강의를 진행했으며, 대학원에서는 2026년 1학기에 ‘면역학의 이해’라는 과목을 개설할 예정입니다. 이 수업은 교과서 중심으로 진행하여 면역학 전공 대학원생이나 관심 있는 학생들이 핵심 개념을 확실히 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으로 대학원에서 필요한 수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입니다. | 앞으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 싶으신 목표가 있으신가요? 어떤 교육자, 어떤 연구자가 되어야 하는지 늘 고민하고 있으며, 이 질문에 답한 후에도 제 생각은 계속해서 변화해 나갈 것입니다. 천연두 백신의 성공 역사에서 시작된 면역학 공부를 통해 연구자가 되었고, 교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우연히 교육자의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육자보다는 멘토 또는 선배 연구자라는 호칭이 저에게는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앞으로는 환자의 치료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구에서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Serendipity'란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아서 콘버그(Arthur Kornberg)는 과학에서의 발견을 두고, 우연은 자주 등장하지만, 그것을 발견으로 만드는 것은 준비된 사고와 집요한 탐구라고 강조했습니다. 즉, 세렌디피티는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고 충분히 고민하고 질문해 온 사람에게만 의미를 갖는 우연이라는 뜻입니다. ▲ upyourimpact.com, by Chuck Frey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 여러분께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연구 과정에서 당장의 성과나 정답에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는 점입니다. 깊이 생각하고, 기본을 성실히 쌓으며, 스스로 던진 질문을 끝까지 붙드는 과정에서 우연은 반드시 의미 있는 발견으로 바뀔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또한, 좋은 동료가 되고 동료를 찾기를 바랍니다. 긴 연구의 여정 동안 좋은 동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각자의 탐구가 언젠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새로운 길을 열게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한국어문회에서 수여하는 난정학술상은 국어국문학 연구와 발전에 평생을 바치셨던 故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의 뜻을 기리고, 국어국문학 분야에서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낸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6년 제1회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지난해 8회까지 본상과 우수상 각각 두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매년 난정 선생의 생일인 4월 28일에 시상식을 열어 왔다. 그리고 국어학 분야 수상자를 내는 올해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에는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권인한 교수가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어문회는 권인한 교수를 본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국어 한자음 연구와 차자 표기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다수의 주옥같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여러 학회의 학회장을 두루 거치면서 국어국문학 연구자를 이끌어 주었다”는 점을 들어 높이 평가했다. 권인한 교수가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며 국어학 연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는 순간을 함께해 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권인한입니다. 이제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아 여러모로 먼발치로 물러나 있습니다만, 뜻밖에 성균웹진에서 조명받을 수 있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전공은 국어음운사 - 특히 한국한자음 역사인데요. 금석문, 목간, 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에 대한 판독 및 해석을 통해 고대 한국한자음의 재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목간학회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국어학자의 이야기가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권인한 교수 | 지난 4월,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교수님의 올해 연구 여정에 깊게 새겨진 순간일 듯한데요. 이번 수상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당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면서 떠오른 감정은 영광스러움과 감사함, 그리고 행복함이었습니다. 난정학술상은 우리 어문 연구와 한자 교육 진흥에 평생을 몸 바쳐 열과 성으로 크게 공헌하신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인데, 저의 수상작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가 난정 선생님의 학문과 맞닿아 있어서 동일 전공의 후학이 이 큰 상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영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부족한 저에게 난정상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한국어문회(이사장 남기탁 교수)와 난정학술상 심사위원회 여러 선생님들께 올리는 감사함이 컸습니다. 덧붙여 평생의 숙원을 이룬 행복감이 찾아왔습니다. 공부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제가 40대 이후 30여 년간 금석문, 목간, 그리고 신라사경 등의 1차 문자 자료들을 만나 한자음 관련 증거들을 모으고 분석하여 그 결실을 이전과는 차별성을 지니는 ‘신연구’라는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저 자신이 참으로 복 받은 행운아라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주력하시는 연구 분야 -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 출토 문자, 구결 등 - 에 대해 성균웹진 독자분들께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으로 우리말을 적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적은 고유명사 표기, 관공서 문서를 적은 이두(吏讀) 표기, 불경 등의 경전을 학습한 구결(口訣) 표기,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적은 향찰(鄕札) 표기 등 각종 차자표기법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고대 한국한자음의 연구는 이러한 차자표기법의 절반 이상을 규명해 내는 학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유명사·이두·구결·향찰 표기자의 절반 이상이 한자의 음을 빌려 쓴 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는 이 차자표기자들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한자음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를 규명해 내는 학문입니다. 제가 금석문, 목간, 신라사경 등의 자료에 집중한 것은, 당대 우리 조상들이 남긴 1차 문자 자료들인 이들을 통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대한국어 시기 한자음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습니다. 선배 학자들이 고대 한국한자음에 접근하고자 이용한 자료는 대부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유명사 표기들이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2차 역사서들에 실린 표기들로서 여러 가지 한계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신라 금석문, 목간, 신라 사경류(寫經類), 고려시대 불서류(佛書類)에 이르는 1차 문자 자료들을 살펴보게 되었고, 여기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학계에 보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고대한국어와 문자문화 연구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 오셨어요. 처음 관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게 되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분야에 대한 흥미가 학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학부 시절이나 석사과정 시절의 최대 관심사는 현대한국어 음운 연구였습니다. 그러다가 박사과정을 수료할 즈음부터 한국한자음 연구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고, 그 후 30여 년간을 이 작업에 몰두하였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음 연구에 들인 첫 발걸음은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인 1991년 1학기에 제출한 「계림유사 “고려방언” 자료의 성조 재구를 위한 기초적 조사」라는 한 편의 기말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를 지도교수이신 故 김완진(金完鎭) 선생께서 그해 어느 학회 발표문에 인용하면서 저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아주신 때를 기점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2년 성대에 부임한 해에 구결 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구결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2007년 한국목간학회 창립 회원으로서 금석문, 목간 자료를 함께 다루면서 1차 문자자료를 통한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2009년 1월 이후 일본 나라시 소재의 동대사(東大寺) 도서관에서 신라사경인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740년대 추정) 속에 담긴 수많은 신라인의 각필(角筆) 문자들을 접하면서 신라한자음, 나아가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이번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과 특히 맞닿아 있다고 소개하신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2024)의 집필 과정과 내용에 대해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인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저를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으로 이끈 것은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입니다. 이 책은 앞서 말씀드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저의 이전 졸작인 『광개토왕비문 신연구』(박문사, 2015) 발간 이후인 2016년 초엽부터 본격적인 집필 기획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몇 편의 시험적인 논문을 발표한 후, 이를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KRF)의 2019년도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2019. 7. 1.~2022. 12. 31.) 전문 학술지에 7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을 하나의 체재로 통일하는 동시에, 출토 문자 자료를 통해서 본 “고대 한국한자음 기층음의 형성과 전개” 부분과 연구 자료 중 자음주(字音注)들을 중심으로 성모·운모·성조별로 체계성 여부를 살펴본 “고대 한국한자음의 체계성 검증” 부분을 새로 집필해서 최종 원고로 완성하여(2022. 8. ~ 2024. 1.) 출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주요 연구 자료는 신라 금석문(9종 12건, 6세기),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245점, 6세기 중·후반), 일본승 中算이 찬한 『묘법연화경석문』(976)에 실려 전하는 신라의 원측, 순경, 경흥, 태현사의 한자 주석(7~8세기), 오타니(大谷)대학 소장의 元曉 찬 『판비량론』 단간 속에 보이는 성점(聲點), 범패부(梵唄符) 등 각필 한자음 자료(733년 이전), 동대사도서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에 보이는 각종 각필 한자음 자료(740년대), 사산비명 등 최치원의 협주, 비명시 압운 등의 한자음 자료(9세기 말~10세기 초),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8·61·66 등 고려시대 불서류에서 찾을 수 있는 한자음 자료(11~13세기 초) 등 6세기에서 13세기 초에 이르는 한자음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분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로 제시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특징을 11가지로 제시하였는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한자음의 /-ㄹ/ 종성의 시작이 6세기 중·후반으로 소급된다는 점, 상성과 거성이 혼동되는 한국한자음의 특징이 8세기 초반에까지 소급된다는 점, 어두에 /ㄹ/이 올 수 없는 두음법칙의 시작이 3세기 『삼국지』 고유명사 표기들에까지 소급되고, 5세기 『광개토왕비문』을 거쳐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굳건하게 유지되었다는 점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목간·금석문·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를 다루실 때 크게 다가오는 난점이 있으신가요? 목간과 금석문의 경우는 글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울진 봉평리 신라비처럼 논이나 도랑 등 비석이 본래 세워진 위치가 아닌 곳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을 때 손상된 문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목간의 경우도 묵흔이 잘 남아 있지 않았거나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행서나 초서로 쓰인 부분은 판독상의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따르는 자료는 각필로 쓰인 신라시대 구결 자료입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적 간극으로 인한 각필 흔적의 손상도 문제이려니와, 각필 자료의 조사를 위해 각필 스코프라는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빛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해당 글자가 눈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판독상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 동대사도서관 화엄경 각필 조사 | 국립국어원이 창립되던 1991년부터, 학예연구사로 5년여간 근무하셨어요. 국어원에서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91년 1월 10일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창립될 때부터 1996년 2월까지, 5년여 동안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맡은 연구 업무는 북한어 연구였습니다. 북한의 신문·잡지 등을 살펴보고, 북한의 국어사전들을 분석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요. 1992년에 『조선말대사전』이 출간되었을 때, 표제어의 발음에 표시된 악센트 높낮이 숫자를 분석한 보고서를 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여 주로 각 표제어의 발음 표시에 대한 원칙과 실제에 대한 지침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3월부터는 울산대학교에 부임하여서, 끝까지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의 5년은, 남북한 언어 차이를 조사·분석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 사업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바가 있었다고 사료되기에 저의 30대 초반에 보낸 보람찬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3월 국어국문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과에는 저를 포함하여 7분의 교수만 계셨는데, 제 바로 윗분이 박양규 교수님으로 저와의 나이 차가 15년이 될 만큼 다들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분들이었습니다. 사학과의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노인대학의 사무장 역할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일찍 학과장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매년 가을 문학기행 때에는 안동이 고향이신 김시업 선생님을 모시고 안동 일원을 여행하면서 국문과 학부·대학원생들과의 친목을 도모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한 분 한 분 정년을 맞으시기 시작하여 과세(科勢)가 줄어들기도 하였습니다만, 2005년부터 노명희, 천정환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뛰어난 신진 교수들을 새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제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보다 두 배 가까운 열세 분의 교수를 모신 학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과대학 학장직을 수행할 때(2017~2018) 학교 당국의 협조하에 대학원에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학과 성장세에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과는 교수들 사이, 교수와 학생들 사이 관계가 매우 화목하다는 점이 널리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교수들끼리 크게 다투어 본 적도 없고, 전공 간 이견이 생기더라도 학과 회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해 왔으며, 매 학기 초 교수-학생 간 상견례를 통해 학생들과의 친교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합된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선배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국어국문학과 문학기행, 2012년 가을 임진각 | 고대 한국어, 국어사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에게 어떤 준비를 해 보라고 조언해 주시겠어요? <국어의 역사> 강의 시간에 지금까지 소개한 문자 자료들을 화면에 띄워가며 수강생들의 흥미를 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고대 한국어 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줍니다. 첫째, 고대 한국어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예외 없이 한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글자의 판독에서 해석에 이르는 기초 작업을 위해서는 한자, 한문에 대한 기초 지식 연마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서체를 모아놓은 서체 자전은 물론, 불경 등의 자료를 해석하려면 한글대장경을 비롯한 기존 해석 자료를 충분히 섭렵해야 합니다. 또 자신의 해석 능력 향상을 위해서 한문 문법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둘째, 신라~고려시대에 이르는 구결 자료의 연구를 위해서는 구결자에 대한 학습도 필요합니다. 구결자는 대부분 한자의 획 일부를 따온 생획자(省劃字)들이므로, 해당 구결자가 어느 한자에서 온 것인지를 알아야 해당 한자의 음과 훈을 적용하여 구결의 독법을 세울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구결문의 해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존에 발표된 선배 학자들의 논저를 공부하면서 어느 점들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이를 자신만의 학문 체계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보고, 읽고, 익히는 과정에서 학문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어국문학과에는 현대문학 5분, 고전문학 3분, 국어학 3분, 한국어교육학 2분 등 한국 최고 실력의 교수진이 여러분들을 학문의 길로 이끌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관심 영역에 맞는 교수님들과 만나 적극적인 질의와 응답을 통하여 학문에 입문해 보십시오. 학문의 길뿐 아니라 교사, 언론인, 관료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우리 교수진이 인생 선배로서 건네는 조언을 통하여 모두의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진로를 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청년다운 크나큰 도전적 자세입니다. 여러 난관을 뚫고 전진하기 바랍니다.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유지하여 노력하다 보면 여러분들 앞에 달콤한 성공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파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가 특별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순간들조차 각자의 서사가 된다. 일상 속에서 조용히 축적된 서사가 곧 꿈을 이룰 수 있는 토대가 되어준다. 이번 인물포커스는 6년 동안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NGO 사무국장으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쌓아온 김도헌 동문 인터뷰를 통해 공동체의 회복과 안녕을 위해 노력하는 NGO의 서사를 소개한다. |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 경제학과 18학번으로 지난여름 갓 졸업한, 그리고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 NGO인 International Law Enforcement Federation (ILEF)에서 6년째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인 김도헌이라고 합니다. 성균관대 동문으로서 성균웹진 인물포커스에서 조명받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특권인 만큼 매우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의 이야기가 독자분들께 흥미롭게 와닿기를 소망합니다. | 6년 동안 NGO의 사무국장으로 재직 중이신데, 현재 활동하고 계신 단체 NGO에 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단체는 미국 뉴저지에서 2003년에 설립되어 2011년부터 유엔 경제사회이사회(ECOSOC)의 특별협의지위를 보유해 온 국제 NGO입니다. 안전하고 공정한 공동체 조성에 이바지하겠다는 기치 아래, 저희 ILEF는 국제 법 집행 리더십 강화, 시민 보호, 평화 구축을 위한 교육, 지역 안전 이니셔티브, 국제 협력 등 다방면의 사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특히 2023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와 협력하는 글로벌 NGO 연대체인 The Alliance of NGOs on Crime Prevention and Criminal Justice에 가입하여 조직범죄 예방 및 근절을 위한 실천적 대안 모색에 적극 이바지해 오고 있습니다. ILEF의 두드러지는 점은 한국인을 중심으로 설립된 NGO라는 점입니다. 설립 당시 USAALEF (United States Asian American Law Enforcement Federation)라는 단체명으로 미국 내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권익 신장을 주된 목표로 활동해 왔습니다. 2017년을 기점으로 현재의 명칭으로 변경하고, 국제 분쟁 속 인권 침해에 대해 국제인도법 집행력 강화를 도모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 ECOSOC와 NGO 등 생소한 단어가 많은데,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ECOSOC(경제사회이사회)은 경제·사회·개발·인권 등 전 지구적 이슈를 다루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촉진하는 유엔 기구입니다. 이 ECOSOC이 NGO에게 부여하는 공식적 지위가 바로 협의 지위(Consultative Status)로, NGO가 유엔 체계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됩니다. 협의 지위는 일반·특별·명부 등재 세 가지로 구분되며, 저희가 보유한 특별협의지위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은 NGO에 주어집니다. 이를 통해 ECOSOC 및 산하 기구 회의 참석은 물론 서면 보고 제출과 발언이 가능하며, 저희 단체는 이러한 권한을 바탕으로 매년 UNODC 주관 Constructive Dialogue(회원국과 시민사회가 모여 협약 이행 상황과 과제를 논의하는 장)에 참여해 경험과 제언을 공유하며 국제 정책 형성에도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 경제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전공과 현재의 진로가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을까요? 사실 저는 고3 때부터 가수를 꿈꿔왔습니다. 대학 진학 후 보컬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며 가수의 꿈을 키워가던 중, 성대결절 진단을 받고 말았습니다. 가수 지망생에게 성대결절은 너무도 큰 시련이었으나,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호전되는 걸 알고 있었기에 두 달 간의 묵언수행에 돌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달의 침묵은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동안 가수가 아닌 다른 진로를 처음으로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했을 때, 저는 늘 국제적 쟁점 및 사회 이슈들에 관심이 많았고, 영미권 팟캐스트를 달고 살 정도로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어떤 가치를 위해 살고 싶은지 자문했을 때 공동체의 회복, 안녕과 번영이라는 확고한 답이 나왔습니다. 세 요소를 모두 충족하는 게 유엔 NGO였고, 단체들을 조사하던 중 미국 뉴저지에 근간을 두고 한인 중심으로 설립된 ILEF가 이색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당시 단체가 일종의 동면기에 있었으나 한미 간 가교이자 한국과 국제사회를 잇는 교두보로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습니다. 이 플랫폼에 제가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모험심이 강하게 발동했고, 단체 측에서 저의 비전을 알아봐 주신 덕에 21살의 나이로 ILEF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제 발자취는 늘 일관됐던 거 같습니다. 사람을 위한 노래로 기쁨과 위안을 주고자 가수를 꿈꿨고, 지금은 안전하고 정의로운 공동체를 위한 여정에 있습니다. 목소리의 모양만 바뀌었을 뿐 그 안엔 늘 사람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 NGO가 비영리단체로 알고 있는데, 경제학도로서 배웠던 것과 대조되는 부분이 있진 않나요? NGO는 말 그대로 이윤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공익을 추구합니다. 겉으로는 경제학의 이윤 극대화와 대조되는 듯 보이지만, 저는 두 영역이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하는 데 경제학적 사고는 NGO 활동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도구가 되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의 고전에서도 이런 맥락을 찾을 수 있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흔히 『국부론』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만 알려졌지만, 사실 『도덕 감정론』에서는 인간의 공감 능력과 공동체적 배려를 강조했습니다. NGO의 역할은 바로 그 지점에 있습니다. 경제학이 이윤 극대화를 말한다면 NGO는 사회적 가치 극대화를 지향합니다. 공공선, 인권, 인도주의 같은 가치는 숫자로 환산하기 어렵지만 공동체를 지속시키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NGO 활동이 경제학의 합리성과 효율성, 그리고 스미스가 말한 도덕 감정을 결합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NGO 사무국장이 되신 과정도 궁금합니다. 무작정 패기 하나로 들이댔습니다. 저는 한국에 계신 단체 대표님을 찾아가 제가 이 단체를 위해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상세히 설명해 드렸습니다. 단체를 재정비하여 다시금 국제사회에 각인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저에게 확실한 권한을 주시면 그 비전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원래도 도전 정신이 충만한 편이지만, 저 때는 다시 생각해도 정말 대담했던 거 같습니다. 회의가 끝날 즈음 대표님께서 마침 사무국장직이 비었다고 자리 제안을 해주셨을 때 두 귀를 의심했습니다. 사무국장이라는 직함에서 오는 중압감이 바위처럼 크게 다가왔지만, 인생 일대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제의를 수락했습니다. 요즘도 간혹 대표님과 그때 이야기를 하는데, 도대체 저의 어떤 점을 보고 그런 중책을 맡기셨는지 여쭤보면 “눈은 거짓말하지 않아. 난 너의 눈을 믿었어”라고 하십니다. 저의 가능성과 제가 만들어낼 ILEF의 변화를 믿어주신 대표님께는 항상 감사할 뿐입니다. | 현재 NGO의 주요 활동은 무엇이 있나요? 최근 저희 단체에 기념비적인 일이 있었습니다. 저희 단체가 지난 8월 12일, 유엔 제네바 사무소 Palais des Nations에서 설립 이래 최초로 고위급 국제 컨퍼런스를 단독 주최했습니다. 한국인을 중심으로 조직된 NGO가 유엔 제네바에서 단독으로 주최한 첫 국제회의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회의는 「민간인 보호와 지역 안정: 중동에서의 인도주의 법, 위기 대응, 그리고 전략적 협력」을 주제로 여섯 개 세션이 진행됐습니다. ▲ ILEF 컨퍼런스 포스터 이 회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 2주년을 앞두고 심화하는 가자 지구 인도주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됐습니다. 인도적 지원을 책임지는 NGO와 유엔 구호 기구들의 피해 또한 막심해지는 상황에서 저희가 직접 유엔에서 전문가들을 모아 실효적 해법을 모색하고자 했고, 그 과감하고 실험적인 도전이 결실을 본 자리였습니다. | 사무국장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것 같아요. 비슷한 진로를 희망하는 재학생분들께 조언 부탁드립니다. NGO는 증진하고 싶은 가치와 꺼지지 않는 사명감이 있어야 뿌리내릴 수 있는 분야입니다. 못지않게 중요한 건 인내심과 긍정의 자세입니다. NGO는 말 그대로 비정부 영역에 있는 만큼 즉각적인 성과를 내기 쉽지 않습니다. 국제 담론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형 NGO들도 있으나, 이는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자신들의 목소리가 현실에 유의미하게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NGO 활동은 세상을 단번에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국가·지역·공동체에서 가능한 작은 목표부터 꾸준히 쌓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전 세계에 유엔 협의 지위를 가진 NGO가 무려 6,657개입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죠. 저희가 알고 있는 보편적 가치는 결국 각 단체가 자신들의 목표와 역할에 충실할 때 지탱된다고 생각합니다. | 사무국장으로서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체의 역할과 영향력을 더 키워가는 것이 저와 ILEF의 장기적 목표입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ILEF가 기존 국제 규범 담론의 참여자를 넘어 공론장의 구축자로 발돋움하고, NGO 특유의 유연성을 살려 각계 전문가들을 연결하는 교량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 ILEF 콘퍼런스를 정례화하여 하나의 브랜드로 정착시키고, 실질적 정책 해법을 도출하는 싱크 탱크로서 국제사회의 대응력 제고에 이바지하고자 합니다. 사무국장으로서 또 기대되는 여정은 미국 대학원 진학입니다. 내년 가을 미국 유수 대학원의 공공정책 석사과정 입학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꼭 합격해서 단체의 비전을 정교화해 줄 방법론적 도구들을 획득하고 글로벌 네트워크를 쌓아 ILEF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을 다지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불과 지난달에 졸업한, 아직 졸업장이 따끈따끈한 선배로서 굳이 전하고픈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자신만의 서사를 쌓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서사는 곧 정체성이며, 경험의 집적을 통해 생기는 후천적 지문입니다. 자신만의 서사를 보유한 사람은 어디를 가도 고유의 색채를 뽐내며 두각을 나타냅니다. 최대한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내공을 쌓으시길 강력히 권해드립니다. 저는 본래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그리 내켜 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로 1년간 영국 교환학생 생활을 하게 되었고, 현지 학생들과 치열하게 토론했던 당시의 경험이 해외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설령 당장의 성과와 무관해 보이더라도 가성비가 아닌 경험 그 자체를 추구하신다면, 그 모든 경험이 종국엔 대체 불가한 본인만의 서사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성균관 학우들이 써 내려갈 아름다운 서사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합니다.
인생은 ‘나’라는 사람을 하염없이 알아가는 여정이다.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 대표이사이자 성균관대 영상학과 겸임교수인 이우진 교수는 고등학생 시절에는 만화가를 꿈꿨다. 대학에 문을 두드릴 때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3년 후 운명처럼 개설된 영상학과에서 비로소 자신이 진정으로 몸담고 싶은 세상을 만난 순간부터 그의 인생은 새로운 막을 열었다. 그는 2002년 학부 졸업 후 아이코닉스의 콘텐츠개발팀장으로 15년간 근무하며 애니메이션 <태극천자문>,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시리즈를 기획하고, <플라워링 하트>의 총감독으로 활약했다. 2020년에는 새로운 애니메이션 제작사 ‘비욘드에이’를 창업하여 <꼬마버스 타요>의 새로운 시리즈와 함께 SNS 중심 캐릭터 콘텐츠 <똥깡아지 메주>와 여아용 애니메이션 <트윙클! 매직 루나펫>, 청소년 대상 판타지 소설 <요괴탐정 강하나> 등을 제작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 같은 이우진 교수의 삶 속으로 들어가 보자. ▲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 <똥깡아지 메주>, <요괴탐정 강하나> 애니메이션 회사 ‘비욘드에이’ 대표 이우진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성균관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영상학과에서 공부했고, 지금은 학교에서 애니메이션 기획을 가르치고 있어요. |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 졸업을 하셨어요. 산업 현장에 계시다가, 어떤 계기로 모교 영상학과 교수로 돌아오게 되셨나요? 지금 제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면, 주변 사람들 반응이 한결같은데요. “말도 안 된다” 해요. 저는 30년 전인 1995년에 노어노문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처음에는 영어, 일어 같은 어학과 책 읽고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해서 어문 계열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입학하고 나니 너무 어려운데, 배움에 흥미가 생기지 않아 많은 고민과 방황이 따랐습니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도 학교에 영상학과가 새로 생긴 거예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일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게 된 순간이었죠. 그렇게 2002년에 영상학과의 첫 졸업생이 된 이후로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에만 매진해 왔습니다.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저를 가르쳐 주셨던 안상혁 교수님께서 기회를 함께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10년이 되었네요. 10년 동안 다양한 학생을 만나면서 계속해서 제가 배운 것들을 나누는 동시에, 여전히 애니메이션 제작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학교에서 가르친 친구들에게 방학을 이용해 현장실습 기회도 꾸준히 제공해 왔는데 그 친구들인 지금은 직원이 되어 함께 일하는 일도 생기고 있네요. | 성균관대 영상학과 졸업생으로서, 처음 강단에 서셨을 때 감회가 어떠셨나요? 학생으로서 바라본 학교와, 교수로서 다시 바라본 학교는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합니다. 굉장히 많이 다른데요. 학생이었을 때는 아직은 아는 것보다 배워야 할 것이 많은 20대니까, 모르는 것투성이고 제가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확인하기도 어려워서 항상 불안했어요. 또 제가 되고 싶었던 ‘애니메이션 기획자’가 당시에는 흔하지 않고 시작하기 어려운 분야다 보니 가르침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서 당황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영상학과에서 공부하면서 비슷한 꿈과 취향을 지닌 친구들을 만나 동고동락할 수 있었던 게 저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교수님들께 배우는 것도 물론 많았지만, 같은 꿈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여러 작업을 함께하면서 ‘더 잘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갔어요. 교수로서 학교에 다시 왔을 때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뒤였습니다. 그동안 외부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으며 제가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됐고, 그중에서 앞으로 어떤 것을 더 발전시켜야 할지도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제가 방황했던 학생 시절에 알았다면, 하는 생각과 지금의 학생들이 저처럼 헤매질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학생들이 스스로에 대해 탐구할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강단에 서서 학생들을 바라볼 때는 교수로서보다는 선배로서, 그 시절 저도 똑같이 고민했던 것들을 얼른 해소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주며 가깝게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 부전공으로 영상학을 택하시고 영상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셨습니다. 노어노문학과 영상학이라는 이색적인 전공 조합이 인상적인데, 교수님의 전공 여정을 들려주세요. 엄밀히 말하면 저에 대해서 잘 몰랐던 거죠. 사실 고등학생 때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이런 것들이 공부에 방해가 되는 사회악처럼 그려졌고, 부모님께서도 달가워하지 않으셨어요. 그래도 저는 수능을 치른 뒤 진로 상담 자리에서 당시 한국 만화 정점에 계시던 허영만 선생님 문하생으로 들어가겠다고, 대학에 안 가겠다고 했다가 선생님께서 부모님을 불러오라고 하셔서 어머니가 실제로 오셨어요. 어머니와 선생님이 제가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설득하실 때 저는 이분들을 결코 말릴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을 갈 테니 대신 이후의 선택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당시 사촌 누나가 성균관대 공대를 다니고 있어서 제가 가본 유일한 대학이 성균관대였어요. 제 눈에는 성대가 제일 멋진 대학이었고 그만큼 좋아했죠. 어학에도 관심이 있었고, 마침 그때가 러시아 문학이 개방되던 시기라 노어노문학과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니다 보니 공부가 어렵고 흥미가 잘 생기지 않더라고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가 좋아했던 건 어학이 아니라 결국 그 언어를 통로로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는 콘텐츠들이었던 것 같아요. 뒤늦게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깨닫고 복수전공을 선택하기 전까지 제 학점은 0.3이었어요. 3학기를 다녔는데 학사경고를 2번 받고 이수 학점이 12학점에 불과할 정도로 수업에 오지 않는 열등생 중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드라마틱하게도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집이 목동이었는데 그때는 1시간 조금 넘게 걸리는 그 통학 시간도 아까워서 학교 앞에서 자취하며 수선관 4층 작업실과 도서관을 오갈 정도로 학업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학생들을 만날 때 꼭 얘기하는 게 스스로에 대해서 탐구하고 공부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저도 잘 못했기 때문에 그 여정이 이렇게 길고 지난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그만큼 지금의 소중함을 알고 더 열중하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 2002년 학부 졸업 후 바로 애니메이션 제작의 길에 뛰어드셨습니다. 영상학 전공자가 선택할 수 있는 진로의 길목에서, ‘애니메이션’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애니메이션을 제일 좋아했어요. 10대, 20대 때 누구나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들을 저도 많이 즐기다 보니까 급기야 ‘언젠가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만든다면 이렇게 만들 텐데’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됐어요. 그런 방법들을 잘 몰랐을 때는 정말 막연했는데, 학교에서 관련된 공부를 하고 같은 길을 바라보는 친구들이랑 교류하면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해 갈 수 있었습니다.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했지만, 성대 영상학과에서 애니메이션을 직접 만들 수 있는 기술이나 기획을 배우고 나서부터는 움직이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었고,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되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는데, 제가 당시 그것들을 보고 느꼈던 감정적 변화를 제가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고, 그런 마음이 간절했던지 어느덧 20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교수님께서 좋아하시는 애니메이션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좋아했던 작품들은 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에요. 우선 제가 어렸을 때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워낙 센세이셔널했어요. 또 <H2>라는 청춘 학원물 작품도 좋아했습니다. 아직은 설익은 청춘의 남녀들이 풋풋한 사랑도 하고 열혈 스포츠를 펼치는 이야기입니다. 제게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 하는 생각을 하게 해준 작품 중에는 영화 <E.T.>도 있어요. 어렸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봤던 영화였는데 정말 눈물을 펑펑 흘렸어요. 저는 대중적이고 여러 사람이 즐기면서 볼 수 있는 상업적인 작품을 좋아했고, 지금은 제가 그런 작품들에서 받은 즐거움이나 감동을 제가 만든 작품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 © khara, <H2>(1992) © Mitsuru Adachi / Shogakukan · TMS Entertainment, <E.T. the Extra-Terrestrial> (1982) © Universal City Studios LLC & Amblin Entertainment, Inc | 애니메이션 제작사 ‘아이코닉스’에서 <뽀롱뽀롱 뽀로로>, <꼬마버스 타요>, <플라워링 하트> 등 많은 작품을 제작하셨어요. 현재는 <똥깡아지 메주>라는 작품을 제작하고 계신데, ‘메주’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제가 어떤 작품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먼저 그사이에 일어난 환경의 변화를 이야기해야 해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는 플랫폼이 굉장히 적었기 때문에 소수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는 환경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누구나 만들어서 어디든 올릴 수 있는, 다양한 작은 취향들을 나누어서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에 예전과는 기획 자체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한 가지 목표를 두고 어떤 과녁을 맞추기 위한 기획이 아니라, 사람들이 ‘지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흐름을 발 빠르게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 <똥깡아지 메주>(2025), 공식 인스타그램: @mejoo_ddgg *<똥깡아지 메주>는 숭늉처럼 밍숭하게 생긴 얼굴과 두툼하고 복실한 주둥이를 가진, 오래 보아야 귀여운 아가 똥깡아지 메주를 중심으로 시골에서 일어나는 우엉리 깻잎마을 주민들의 일상을 그린 만화다. 그래서 <똥깡아지 메주>*는 예전의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메주’는 소수의 사람이 되게 작게 기획해서, 점차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데요. 그래서 커다란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기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때그때 보여주려고 해요. <꼬마버스 타요>나 <뽀롱뽀롱 뽀로로>는 크게 기획한 하나의 영역 안에 있었다고 한다면 지금 <똥깡아지 메주>는 그런 영역 자체가 정해져 있지 않고요. 그냥 정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그때그때 사람들의 마음이 가는 곳을 찾아서 그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보여주려고 해요. ▲ SNS에서 유행하는 밈을 소화하는 메주 ▲ 11월 9일까지 광장시장에서 열린 메주 팝업스토어 <메주네 집앞 농장> | 타 인터뷰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작품 내에서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장면을 내보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오랜 시간 애니메이션을 제작해 오신 만큼, 이처럼 교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아동 애니메이션 제작 철학이 궁금합니다. <뽀롱뽀롱 뽀로로>라는 걸출한 작품이 회사에서 이제 막 성공했을 때, 곁에서 지켜보며 많이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은 것은 아이들도 다 똑같다는 거예요. 어른들이 재미없으면, 아이들도 재미없습니다. 사람들이 종종 우습게 보고 착각을 해요. ‘애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이 정도면 애들 웃겠지’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이제 수업할 때 아동 타겟을 이해하는 세 가지 원칙을 얘기합니다. 첫째는 우리가 느끼는 희로애락을 그들도 똑같이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훨씬 겸손한 자세로, 자신이 봤을 때도 재미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다음으로는 아이들이 우리보다는 아직은 매사에 좀 서툴러요. 그래서 우리는 친절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상 장면이면, 뭉게뭉게 구름 같은 회상 효과를 정확하게 표시해 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시간 순서로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굉장히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이 현실인지, 상상인지, 과거인지, 미래인지 이해를 잘 못해요. 그래서 플롯을 너무 복잡하게 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는 보고 나면 뭔가를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 재미보다 앞서지는 않아요. 대단하게 근의 공식이나 철학을 배우는 게 아니고 ‘친구와 싸웠을 때는 이렇게 화해하면 되겠구나’처럼 작은 삶의 지혜를 배우는 정도입니다. 이 세 가지 정도만 지켜진다고 하면, 제가 만든 작품들보다 앞으로 훨씬 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 겸임교수로서 수업 설계에서 현업성을 어떻게 확보하시나요? 저는 다른 교수님들처럼 애니메이션을 학문으로써 연구해 온 사람은 아니기에, 어쭙잖게 제가 학생들한테 학술적 영역으로 접근해서 이야기하게 된다면 그것은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는 분명히 아닙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좀 실효성이 있는 수업이 되도록 제가 잘할 수 있는 나만의 차별화 포인트가 무엇일지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가 실제로 진행하고 있는 ‘캐릭터애니메이션’ 수업은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실제 신입 PD로 뽑혔을 때 처음 맡게 되는 일과 만약 그 일을 잘했을 때 기회를 얻어 맡게 되는 일, 이렇게 단계별로 구성해요. 수업 초반에는 ‘타요’라는 프로젝트의 스토리텔링을 이해하고, 이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과정을 통해서 최종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이 되는지를 배웁니다. 실제로 20페이지 분량의 시나리오를 작성해 보는 경험을 중간 과제로 진행하기도 하고요. 기말 과제로는 신입 PD가 기본 업무를 잘 수행했을 때, 정말 희소하게 주어지는 기회가 있어요. 한번 본인이 만들어보고 싶었던 대중적인 작품을 한번 기획해 보는 거예요. 기획서를 쓰고 발표까지 해보는 과정을 기말 과제로 제시하는데, 모든 과정에서 학생들의 과제물들에 대해 현업 PD들에게 하듯 제가 전부 리뷰를 합니다. 이 과정이 다 실제 현업에서 PD들이 겪게 되는 일인데요. 그래서 현장과 가장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 애니메이션 제작자로서,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2002년에 학교를 졸업한 후 쭉 같은 일을 해 왔으니, 올해로 제가 애니메이션 기획을 한 지 어느덧 23년이 되었더라고요. 앞서 일하신 선배님들이 보시기에는 짧은 시간일 수도 있겠지만, 저의 인생만 놓고 본다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쏟아 온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감사하게도 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래도 제가 만든 작품으로 큰 사랑도 받아보고, 그렇게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전할 기회도 누렸으니까요. 제가 지금 ‘비욘드에이’를 설립한 지 5년 정도 되었습니다. 현재 회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작품들이 내년, 내후년 속속 나오기 시작할 건데, 이 작업들은 제가 예전처럼 혼자 기획하고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 심지어는 한때 제자였지만 지금은 동료인 이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은 기간 제 목표라고 한다면, 제가 만들고 싶은 작품보다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꼭 바람대로 성공하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당연히 회사도 좋은 성과를 얻게 되어 더 나은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친구들이 많이 합류해 함께 일할 수 있겠죠. 그렇게 성공한 친구들은 또 새로운 후배들에게 저보다 더 큰 베풂이나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래서 제 꿈은 ‘비욘드에이’가 뛰어난 기획자들이 각자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마음껏 실현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거예요.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영상학도들에게 응원의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생 시절부터 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는 지금까지도 학교에 늘 빚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빚을 꼭 갚고 싶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겸임교수로서 사실 회사 일만 해도 벅차지만, 그래도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나서 하나라도 좀 도움이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살고 있는데요. 작지만 제게는 그 빚을 갚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요즘은 오히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교수인 제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학교에 가면 지금 시대의 학생들이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배운 것들은 <똥깡아지 메주> 같은 20대를 대상으로 한 작품 제작에 모티브가 되기도 하고요. 이렇게 또 빚을 지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우리 학생들이 더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데요. 아직은 작은 회사이지만 저도 회사를 열심히 성장시켜, 앞으로는 학생들과 학교에서뿐만 아니라 실제 필드에서도 함께 일하며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더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지금 여러분들이 영상학과에서 배우고 있는 것들은 사회에 나가서 한 가지도 버릴 게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들이에요. 그리고 지금 만난 친구들,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료들도 지금은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들 각기 다른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성장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지금 옆에 있는 친구에게 항상 다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의 말씀이나 주시는 배움의 기회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알차게 쓰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곳에 있더라도 분명히 자기만의 색을 갖고 반짝반짝 빛나는 존재가 될 거예요. 항상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새로운 별이 떠올랐다. 미국과 중국에서 34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이우근 교수다. 이 교수는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반도체 설계 분야의 세계적 연구자로,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논문 180편 이상을 발표했으며 24건의 미국 특허를 보유한 저명한 석학이다. 현재 IEEE 펠로우(석학회원)이자 매년 전 세계에서 50명을 임명하는 펠로우 선출위원회 위원직을 맡고 있으며, 한국 국적으로는 최초로 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석사, 일리노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2006년부터 중국 칭화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교육에 매진해 왔다. 이 외에도 한인 과학자 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절감해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KSEACH) 창립에 기여한 공로로 과학기술정통부 장관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상을 받으며 학계와 사회 전반에서 깊고 넓은 활동을 이어왔다. 오랜 해외 생활을 끝맺고 우리 대학에 선물처럼 찾아온 그를 만나, 한국으로 돌아온 소회와 앞으로 성균과 함께 그려갈 미래를 물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지난 8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부임한 이우근입니다. 한국에서 학부와 병역을 마친 뒤 미국으로 떠나 유학 및 회사 생활로 15년을 보냈습니다. 이후에는 중국 칭화대학교에서 19년을 보내고, 다소 벅찬 마음으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 | 34년간 해외에서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시다가, 올해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한국 학계에 돌아오셨습니다. 긴 시간을 건너 한국 학생들을 만나게 되신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이전에 서울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한 학기 동안 강의한 경험이 있었어요. 하지만 학부생은 처음 만나는지라 어떻게 잘 교감할 수 있을까 긴장도 되었습니다. 동시에 밝고 예의 바른 한국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도 컸습니다. | 아울러, 한국으로 돌아오시면서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와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성균관대학교 반도체 분야에 제가 아는 선후배 교수님들이 많이 계시기도 하고, 시스템반도체와 관련한 성균관대학교의 향후 비전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귀국을 신중하게 고려하던 중 성균관대학교에서 초청 세미나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신생학과인 반도체융합공학과에 관해서 알게 되었고 제가 시니어 교수로서 이 분야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합류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하시고 두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과의 첫 만남은 어떠셨나요? 얼마 전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이 첫 체육대회를 했습니다. 그때 저도 저희 과 교수님들과 함께 잠깐 참가했었는데 제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학생들의 순수하고 활기찬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또 대학원 진학 면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갖고 있는 장래에 대한 비전과 생각들이 제가 학생일 때와 비교해서 더 성숙하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일부 대학원생들과는 국제학회 논문 준비에 도움을 주면서 미팅도 하고 점심도 함께했는데,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대화하면서 기술적인 논의를 나누니 감회가 새롭고 교감이 한층 더 깊어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 중국 수능 ‘가오카오’의 장원이 입학하는 명문대인 칭화대학교에서 집적회로학원 교수로 계셨어요. 2006년, 중국으로 향하셨던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15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을 고려하던 중, 급격히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3년 정도 직접 경험해 보면서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칭화대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부교수급에서는 천인계획과 같은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고, 방문 교수 자리밖에 없던 상황이라 제가 지원했을 때 칭화대 측에서도 많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에는 장기적으로 중국 전문가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현지에서 한중 학술 교류와 자문 활동, 재중한인과학기술자협회 창립 활동 등 연구 외적인 일에서도 여러 가지 역할을 맡으면서 19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 칭화대학교 재직 당시 얻으신 학문적 인사이트나, 쭉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경험이나 추억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임팩트 있는 논문 한 편은 본인의 커리어에 평생 도움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특히 제1 저자로 그런 논문을 내는 것은 박사과정 또는 박사 후 과정에 있을 때 기회가 많습니다. 저는 일리노이대학에 3년 반 있다가 떠난 뒤 회사에서 정규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논문으로 디자인한 칩 테스팅 결과가 안 좋아서 학위를 거의 포기할 뻔했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회사에서 제 논문 내용으로 제품까지 개발되고 그 성과를 저널과 유명 학회에 발표하게 되면서 7년 반 만에 학위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었지만, 회사에서 4년간 제품 개발부터 양산까지의 경험은 저에게 소중한 커리어 자산이 되었고 제가 IEEE 펠로우가 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연구 개발은 직진보다 여러 길로 돌아가는 것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그 후 학교에서도 단기 논문 성과보다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연구 방향을 크게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대학에서는 유학생도 pre-defense 후에는 더 이상 학교에 등록하지 않고 회사에 풀타임으로 바로 취직하면서 박사 논문을 준비할 수 있었다. | 한국 국적자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전기전자공학회(IEEE) 고체회로협회 저널 편집장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관련해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IEEE 내에 수많은 협회가 있고, 그중 고체회로협회(SSCS)의 정규 저널로는 JSSC(Journal of Solid-State Circuits)와 OJ-SSCS(Open Journal of the Solid-State Circuits Society)가 있습니다. 현재 저는 이 중 OJ-SSCS 편집장을 맡고 있습니다. 창간 때부터 부편집장을 맡았고, 다른 저널의 부편집장 경험도 있어서 해당 저널 편집장으로 선임된 것 같습니다. 현재 미국, 유럽, 아시아권에서 고르게 구성된 20명의 부편집장과 함께 저널 심사 및 스페셜 섹션 구성 등을 주로 담당하고 있으며, 저널의 영향력 지수를 더 높이기 위하여 노력 중입니다. ▶ OJ-SSCS Editorial Board - IEEE Solid-State Circuits Society ◀ | 교수님께서 연구해 오신 반도체 집적회로(IC)와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를 소개해 주세요. 인간의 두뇌에 비유한다면, 메모리 기능 외에 사고, 대화, 시각, 청각, 촉각 등 모든 기능을 담당하는 반도체입니다. 제가 연구한 분야는 주로 무선 통신과 유선 통신 송수신기 시스템에 필요한 저전력 회로들을 설계하거나 저전력 송수신기의 아키텍처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칭화대에서 중국 회사들과 일할 기회는 없었고 대부분 한국 대기업과 산학협력을 했습니다. 주로 차세대 무선 통신 송수신기에 들어가는 회로들을 연구했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24개의 미국 특허도 집적회로 설계에 관한 것이고, 이전 미국 회사 재직 시 출원했거나 아니면 칭화대 재직 시 삼성전자와 같이 출원한 특허들입니다. |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적이지만,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시스템 반도체, 즉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도전 과제가 많습니다. 이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떤 역량을 닦아야 할까요? 국내 대기업 취업뿐만 아니라, 창업도 하고 해외 기업에서 일하는 등 다양한 방면에서의 인재 양성이 필요합니다. 해외 글로벌 기업에서 3~5년 일한 후에 한국에 돌아오면 크게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10~20년 뒤 돌아온다면 더 많은 공헌을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현재 중국은 그러한 인재들이 활약하며 반도체 산업을 이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교단에서 20년 가까이 학생들을 지도하셨습니다. 바다 건너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향하시는 교육 철학을 들어보고 싶어요. 저는 학부생들에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많은 시도와 도전을 하라고 강조하고, 석사생들에게는 실질적인 경험을 중시하고, 박사생들에게는 회로 설계 한 번의 실수로도 연구 결과가 1년이 지연될 수도 있기 때문에 실패를 두려워할 줄 아는 전문가적 자질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핵심은 동기부여입니다. 연구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학생이 학점이 높은 학생보다 훨씬 더 좋은 연구 성과를 내는 것은 세계 어느 대학이든 같다고 봅니다. 박사생들의 경우 기술적 논의를 수년간 함께 하다 보면 졸업할 무렵에는 오히려 제가 학생에게 배우게 되고 그때 큰 보람을 느낍니다. | 앞으로, 교수님과 반도체융합공학과 학생들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여러 분야의 교수님들이 같이 있는 반도체융합공학과의 특성상, 회로 설계/소자/장비 등 반도체 관련 여러 과목이 개설되어 있어서 다양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분야인 회로 설계에서 글로벌 협업 과목들도 개설해서 학생들이 글로벌 성균인으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소중한 시간을 함께할 성균관대학교 공학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국과 중국에서 직장을 세 번 옮겼는데, 항상 직장 생활이 힘들 때가 아니라 편하고 윤택할 때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했습니다. 성균관대 공학도들도 담대한 도전 정신으로 본인만의 훌륭한 커리어를 디자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임페리얼칼리지 런던(Imperial College London) 기계공학과 김장아 교수 - 2007년 기계공학과 입학 - 2017년 SAINT(성균나노과학기술원) 박사학위 취득 - 2017~2023년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박사후연구원 - 2023년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조교수 부임 ▲ 2018년 Great Exhibition Road Festival에서 연구실 투어를 진행하는 모습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영국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기계공학과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장아입니다. 햄린센터(The Hamlyn Centre for Robotic Surgery)에 소속되어, 빛과 마이크로·나노기술을 활용한 센싱과 미세로봇공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07학번으로 성균관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해, 2017년 SAINT(성균나노과학기술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10년을 성대에서 보냈습니다. 그 시간은 제 학문적 뿌리가 되었고, 이후 런던으로 건너가 박사후 연구를 이어가며 의공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임페리얼 칼리지에서 mini lab (micro-nano innovation lab)을 운영하며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성대에서 보낸 10년은 제 청춘 전부였고, 지금의 저를 만든 시기였습니다. 무엇보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우선, 연구실에서 전례가 없던 그래핀 연구를 혼자 시작하면서,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풀어가는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박사 과정 중에는 고등학생과 학부생 팀을 지도할 기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제 연구주제에서 파생된 주제보다는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주제를 직접 찾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화장품 자외선 차단제 연구라든지, 시각적으로 재미있는 구조색(structural colouration) 연구 같은 프로젝트였죠. 이런 경험들이 지금 제가 새로운 주제를 발굴하고 협력 연구를 이끌어가는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오랫동안 연구실 랩장을 하면서 운영을 책임지기도 했습니다. 연구실 관리, 행사 준비, 교수님과 동료 간의 소통을 맡으면서 관리체계와 사람을 이끌고 조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지금 연구실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도 그때 경험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학부시절 교양수업에서의 배움도 지금까지 제게 남아 있습니다. 특히, 성대만의 개성이자 강점인 ‘유학사상’ 수업에서는 처음 철학을 접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수 있었습니다. 서양음악사, 대중예술, 미술철학 같은 수업에서는 전공 밖의 시야를 넓히며 연구자이자 개인으로서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습니다. 지금도 중요한 순간마다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찾아보고, 음악이나 예술에서 생각할 거리를 얻곤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대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 다양성 덕분에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 인생의 동반자(남편)도 성대에서 만났습니다. 학문과 인생을 모두 준 곳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겁니다. ▲ (왼쪽) 2010년 학부 마지막 학기, 도서관 카페에서 ‘가스터빈’ 시험공부를 하던 때 (오른쪽) 2015년 연구실 책상에서 연구중인 모습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에 임용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성균관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대학원에서는 당시 가장 핫한 주제였던 그래핀 연구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를 좇아야 하는 주제는 제 성향과 잘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차분히 원리를 깊이 탐구하고, 연구의 사회적 효과가 뚜렷하게 보이거나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몰입하는 편이거든요. 그러다 박사과정 말미에 아산병원과의 협력 프로젝트에서 의료용 카테터 센서를 개발하면서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연구가 실제로 사람들의 건강 문제 해결에 연결되는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의공학의 매력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박사 후 연구도 이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첫 포닥을 시작한 곳은 임페리얼 칼리지의 햄린센터로, 의료용 로봇과 의료기기 개발에 주력하는 연구소였습니다. 3년 계약으로 대형 연구프로그램에 참여해, 감염 진단용 광섬유 센서를 개발하는 과제를 맡았습니다. 한국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3D 나노프린팅 기술로 광섬유 끝단에 나노구조체를 형성해 원격·실시간 바이오마커 감지가 가능한 센서를 제작했고, 이 연구는 학술지 표지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표지 그림이 저의 만 30세 생일에 실린 호(issue)에 나와, 특별한 생일선물이 된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연구실이 장기간 닫혔습니다. 실험 연구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 시기에 현미경 이미지 분석과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로 논문을 낼 수 있었고, 이후 2년 계약을 연장해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추가 계약이 마무리될 무렵, 재료과·생명공학과의 스티븐스 그룹에서 질병 진단용 나노센서 개발 연구 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그룹은 기능성 소재와 의공학적 응용 연구를 활발하게 이끌며, 규모도 커서 다양한 기회와 협력이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저변을 넓힐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지원했고, 운 좋게 합격했습니다. 그렇게 두 번째 포닥 생활을 시작하면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한 단계, 어쩌면 몇 단계는 폭풍 성장하는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 시기에 영주권도 취득하게 되어 생활적으로도 안정감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연구를 이어가던 중, 과거 함께 협업했던 교수님의 소개로 기계공학과에 교수 공고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임페리얼을?’이라는 자기의심이 들었지만 곧 ‘밑져야 본전. 지원서 쓰는 연습이라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서류 심사를 통과했고, 이틀에 걸친 인터뷰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임용을 위해 특별히 초점을 맞춘 부분과 임용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저는 사실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도 교수가 될 거라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제게는 실험하고 배우며 평생 연구자로 살아가는 모습이 더 자연스럽게 그려졌거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쌓이면서 연구자가 배운 것을 후학과 나누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것도 자기실현의 한 형태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래서 기회가 찾아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인터뷰를 준비할 때는 불안하고 긴장이 컸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남들과 비교하려 하지 말고 그냥 네 자신을 보여줘라(Be yourself). 그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단순한 조언이었지만 제 머리를 크게 울렸습니다. 인터뷰에서 그 마음가짐으로 임했고, 제가 가진 것을 솔직하게 보여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교수 임용 면접은 처음이었고, 미숙하고 많이 떨었던 탓에 결국 첫 시도에서는 오퍼를 받지 못했습니다. 몇 달 뒤 예상치 못하게 다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최종 합격자가 다른 길을 선택하면서 지원자들을 다시 검토하게 되었고, 뜻밖에 저에게도 기회가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미 한 번 떨어진 경험 덕분에 오히려 편한 마음이었고, ‘안 되면 원래대로 내 길을 가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덕분에 힘을 빼고 당당하게 제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었고, 이번에는 좋은 평가로 이어져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준비된 스펙이나 공식적인 전략보다는 그 순간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게 결과적으로 잘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박사 졸업 이후에는 연구 독립을 위해 지도교수님과는 더 이상 공동 논문을 쓰지 않았고, 포닥 시절에도 제가 직접 발굴하거나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연구들이 많았는데요. 그 결과 연구 실적이 일시적으로 더뎌 보일 수는 있었지만, 독립 연구자로서의 역량을 증명하는 데는 확실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실제 인터뷰에서도 제가 이 연구들을 직접 이끌었다는 점을 강조할 수 있었고, 그 부분이 심사위원들에게 긍정적으로 전달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포닥 시절에 경험했던 다양한 활동들, 예를 들어 과학축제 자원봉사, 학생지도, 안전관리와 장비 관리, 연구실 운영 행정 참여 같은 일들 또한 학과가 교수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조직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저는 빛과 물질의 상호작용을 활용해 의료용 마이크로·나노 센서와 로봇을 연구합니다. 초기에는 광섬유 기반 생체분자 및 박테리아 감지 같은 주제들을 다뤘고, 최근에는 플라즈모닉 효과를 이용한 박테리아 미세 조작 및 치료 응용으로 연구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박사후연구원 시절, 저는 표면증강 라만 분광법(surface-enhanced Raman spectroscopy, SERS)을 이용한 박테리아 실시간 감지 센서를 개발하면서 신기한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센서 주변으로 박테리아들이 모여드는 것이었죠. 당시 연구 목표는 센서 개발이었기에 처음에는 단순한 ‘노이즈’라고 생각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이 현상은 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러던 중 팬데믹으로 연구실 접근이 막히자, 예전에 기록해둔 현미경 이미지 데이터를 다시 꺼내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관련 문헌을 찾아보고 독학으로 비디오 데이터 분석 기법을 익히면서 락다운 기간에 논문을 작성했고, 이후 석사 학생과 함께 후속 연구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논문들은 화려한 저널에 실린 건 아니지만, 위기를 기회로 바꿔 제 스스로 배움을 이어갈 수 있었던 자랑스러운 기록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논문들을 계기로 미국 Albert Einstein 의대의 장내 박테리아와 질병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그룹으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제서야 이 현상이 단순한 노이즈가 아니라, 질병 메커니즘 이해나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이 지금의 연구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박테리아의 행동을 이해하고 제어함으로써 감염 제어, 미세침습치료, 나아가 새로운 면역치료 전략 개발에 기여하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 International Women in Engineering Day를 기념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실험 중인 모습이 담긴 사진 Ⓒ Dave Guttridge, Imperial College London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연구를 하다 보면 누구나 좌절을 겪습니다. 기똥찬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던 것도 찾아보면 이미 누군가 해놓은 경우가 많지요.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금세 시니컬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수록 호기심과 비판적 시각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호기심을 잃지 않아야 연구가 재미있고, 건강한 비판적 시각을 가져야 비로소 나만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 더 나아가 연구란 것은 끝이 없는 과정이기 때문에 이 균형을 지켜가는 태도가 결국 지치지 않고 오래 연구를 이어가는 힘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균형을 유지하는 데 혼자만의 시간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산책을 하거나, 잡생각을 정리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환기하는 순간들이 저에게 연구와의 거리를 두게 해 주었고, 다시 호기심을 붙잡을 여유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잠시 물러나 숨 고르기를 할 수 있었기에 연구의 좌절이 곧 회의로 이어지지 않았고,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문제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각자 방식은 다르겠지만, 자신이 호기심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대학원 생활을 건강히 이어가려면 연구에서 오는 좌절과 스트레스를 버틸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그게 생활 속의 작은 습관들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는 매년 10 km 달리기를 했고, 지금은 출퇴근길에 한시간 이상씩 걷거나 자전거를 타며 자연스럽게 체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 소소히 식물을 키우던 것이 어느새 저희 집 발코니와 거실의 작은 정글로 확장되었는데, 그런 사소한 즐거움이 마음을 단단하게 해주기도 했습니다. ▲ (왼쪽) 성대 연구실 책상 옆에 두었던 화분들. 교내 화원은 심심할 때마다 들르던 참새 방앗간같은 장소였다. (오른쪽) 현재 런던 집 한 켠의 '미니 정글' 또 하나 중요한 건, 연구와 전혀 상관없이 스위치를 완전히 끌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학부 시절 동아리(르풋)에서 만난 친구, 선, 후배님들과 10년 넘게 꾸준히 만나면서 연구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잡담과 웃음, 그리고 노래방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는데, 이런 관계들이야말로 긴 대학원 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관리’하려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체력 유지와 멘탈 회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무언가 거창한 관리법을 찾기보다는, 자신이 소소히 즐길 수 있는 활동과 편히 쉴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 김장아 교수가 이끌고 있는 연구실 mini lab 학생들과 ------------------------------------------------------------------------------------------------------------------------------------------------------------------------------------------------ ■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전기전자공학과, 신소재공학과 채상훈 교수 - 2010년 반도체시스템공학과 졸업 - 2014년 에너지과학과 박사학위 취득 - 2016 ~ 2021년 컬럼비아 대학교 박사후연구원 - 2021년 난양공과대학교 조교수(Nanyang Assistant Professor)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싱가포르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 NTU) 전기전자공학과와 신소재공학과에 공동 임용되어 조교수(Nanyang Assistant Professor)로 재직 중인 채상훈입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2010년에 학사(반도체시스템공학), 2014년에 박사 학위(에너지과학)를 취득한 후, 2016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거쳤습니다. 제 연구는 주로 광학 신재료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광전자 특성을 규명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광전자 소자를 개발하며, 나아가 집적 광포토닉스(integrated photonics)와 결합해 새로운 정보처리 방식을 탐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히 광학 상호연결(Optical interconnect), 광학 컴퓨팅(Optical computing), 인공지능 프로세서(AI processor), 양자 처리(Quantum processing)와 같은 차세대 정보처리 플랫폼을 구현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 1기로,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학사 과정을 밟으며 반도체 공학, 전자공학, 시스템 분야의 기초를 충실히 다졌습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삼성전자와 계약학과이기 때문에 산업에 쓰일 수 있는 공학 지식을 바로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모교에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박사 과정을 거치며 물리학, 응용물리, 재료공학을 심도 있게 연구하고 기초과학적 시각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는 공학과 이학, 반도체와 비반도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공정과 측정, 전자와 광자 등을 모두 아우르는 넓은 연구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특히 성균관대는 연구 트렌드를 빠르게 포착하고 새로운 학과를 신설, 다양한 전문 교수진을 구성하는 등 변화를 선도했기에 더욱 폭넓은 학습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학부 시절 전공이었던 반도체시스템공학과도 제가 1기였고, 박사 과정을 밟은 에너지과학과 역시 신설된 학과였네요. 다양한 학문적 토대는 현재 제가 진행하는 융합 연구의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고, 공학적 응용 능력과 기초과학적 탐구심이 결합해 지금의 집적 광포토닉스 연구를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왼쪽) 성균관대 대학원 (오른쪽) 박사 졸업식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난양공과대학교에 임용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서 학부 과정을 밟았습니다. 반도체시스템공학과는 삼성전자와 성균관대가 함께 설립한 계약학과로, 반도체 산업의 최전선에서 활약할 인재를 양성하는 매우 특별하고 야심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3학년 무렵 반도체 설계나 시스템 구조보다는 반도체 소자, 공정 같은 하드웨어 분야에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고, 나아가 기초과학 연구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기초과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물론 학부 4년 동안은 반도체시스템공학과에서 제공하는 커리큘럼을 최대한 충실히 이수했고, 이러한 경험은 훗날 대학원 연구와 실험을 수행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는 이영희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으며 물리학 연구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박사 과정 중에 이영희 교수님께서 IBS 단장으로 부임하시면서 연구실은 순식간에 대규모 연구센터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세계적인 연구 분위기와 수준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죠. 학위를 마친 뒤인 2014년부터 2016년까지는 성균관대학교 나노구조연구센터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갔고, 대체복무가 끝나는 시점에 맞추어 해외 박사후연구원 과정을 준비했습니다. 제가 가장 강하게 끌렸던 곳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James Hone 교수님의 연구실이었습니다. Hone 교수님의 독창적이고 임팩트 있는 논문들에 깊이 매료되어, 미리 연락을 드리고 한국과 미국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했습니다. 끈기 있는 지원 끝에 다행스럽게도 컬럼비아대학 연구실에 합류할 수 있었고, 특히 성균관대학교의 해외 박사후연구원 지원 프로그램 덕분에 첫 1년간은 체류비를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며 국제적인 연구 경험과 네트워크를 쌓았습니다. 성균관대에서 습득한 모든 기술을 새로운 과학적 시도와 접목하며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던 즐거웠던 시기였고, 동시에 와이프와 함께 뉴욕에서 신혼생활을 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낸 특별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밤낮으로 함께 연구했던 동료 연구자들을 통해 싱가포르 대학들의 뛰어난 연구 환경에 대해 알게 됐고, 싱가포르 출신 동료의 적극적인 소개를 계기로 난양공과대학교(NTU)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2020년부터 교수 임용을 준비해 지원했고, 면접을 거쳐 싱가포르 난양공대 Nanyang Assistant Professor (NAP) 조교수직을 제안받았습니다. 단순한 일반 조교수 트랙이 아니라 대학 차원에서 확신을 갖고 경쟁력 있는 연구자를 지원하는 NAP 트랙이라 특별했어요. NAP 교수에게는 임용과 동시에 약 150만 싱가포르 달러(한화 약 16억 원)의 초기 연구비, 박사과정생 장학금, 박사후연구원 고용 지원, 소속 학과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독립적인 연구실을 설립하고 도전적인 연구를 본격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었습니다. ▲ (왼쪽) NTU 세미나 (오른쪽) 양자 포토닉스 연구실(Quantum Photonics Lab) | 세계적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임용을 위해 특별히 초점을 맞춘 부분과 임용 과정에서의 에피소드가 궁금합니다. 난양공대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교수 임용 과정에서도 후보자의 연구 역량을 가장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따라서 저는 임용을 준비할 때 대담하면서도 야망 있는 연구 주제를 제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단순히 지금까지의 연구 성과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5년, 10년 뒤에 실현할 수 있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비전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과거나 현재보다는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용 면접 당시 심사위원장을 맡으셨던 분이 노벨 화학상 심사위원이셨는데, 제가 제안한 도전적인 연구 계획을 두고 “교수직을 시작한 후에도 이 연구의 주제 범위를 줄이거나 목표를 낮추지 않고 끝까지 추진해서 글로벌 리더가 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질문은 저의 연구 제안이 단순히 임용 과정에서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한 아이디어에 그치지 않고, 교수를 하는 내내 높은 수준의 동기부여와 지속가능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난양공대가 원하는 인재상이 세계적 연구 리더로 성장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죠. 저의 미래지향적인 의지와 장기적인 전략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그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성균관대 대학원 시절에 쓴 제 첫 논문은 늘어나고 투명한 트렌지스터에 관한 연구(Nature Materials 12(5), 403-409, 2013)로, 추억이 많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노 신소재와 기존 세라믹 물질을 함께 구조적으로 변화시켜 20% 이상 늘어나면서도 투명성을 유지하는 전자 소자를 구현한 연구로, 당시 과분할 만큼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 박사후 과정부터는 제 연구의 주요 분야가 집적 광포토닉스(integrated photonics)와 2차원 물질(2D materials)의 융합으로 확장됐습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포토닉스 소자를 개발하는 데 집중해 왔으며, 최근에는 매스컴에서 ‘광반도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로는, (1) 2차원 물질을 집적 광포토닉스에 통합하여 광손실이 거의 없는 광학 변조기를 개발한 연구 (Nature Photonics 14(4), 256–262, 2020), (2) 쌍곡선 분산(hyperbolic dispersion)과 광전자 특성을 프로그램 가능하게 제어한 연구 (Science 371(6529), 617–620, 2021), (3) 나노재료의 내재적 및 외재적 무질서(disorder)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을 제시한 연구 (Nature Materials 18(6), 541, 2019)가 있습니다. 현재 난양공대에서도 재료와 광포토닉스를 통합하는 차세대 정보처리 플랫폼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광학 상호연결(Optical interconnect), 광학 컴퓨팅(Optical computing), 인공지능 프로세서(AI processor), 양자 처리(Quantum processing)와 같은 차세대 정보처리 장치 개발을 추진 중입니다. 앞으로도 이 분야의 연구 성과들이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출판될 예정입니다. 광포토닉스 분야는 이미 학계와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핵심적인 연구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저는 이 분야에서 산학 간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적인 반도체 제조 기업들과 더불어 싱가포르 교육부, 국방부에서도 제 연구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연구비 지원을 받아 의미 있는 성과들을 도출해 나가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부터는 난양공대의 전체 반도체 공정(클린룸) 시설을 총괄하는 Director라는 중책을 맡게 됐는데요. 제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반도체 연구와 교육의 최전선에서 활동하게 되어 큰 책임감과 동시에 벅찬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 컬럼비아대학교 박사후연구원 시절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기를 수 있을지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현시점에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역량은 지식의 다양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연구는 특정 한 분야의 지식만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융합적 시각이 핵심이죠. 흔히 “연구자는 한 우물만 계속 파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제는 가치가 있는 우물을 선택하고, 그 우물을 파는 데 다양한 도구와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즉, 자신이 속한 전공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들되, 다른 학문과 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우고 접목할 수 있는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연구하는 집적 포토닉스를 잘하기 위해서는 물리, 화학, 광학, 재료, 반도체 공정, 반도체 소자, 전자공학, 컴퓨터공학까지 모두 이해해야 합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도 이 분야를 종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연구자가 많지 않은 이유 또한 바로 종합적인 전문성이 요구되는 데 있습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는 동시에 융합 전문가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대학원생 여러분들은 자신이 속한 한 분야에만 머무르지 말고, 적극적으로 다른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연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분야를 탐구한다면 그것이 자신만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학부 시절에는 전기전자 및 공학에 집중했고, 석·박사 과정에서는 물리 원리에 기반한 연구에 몰두하면서 기초공학과 이학 분야를 폭넓게 수학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 제가 융합 연구를 추진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저는 난관 극복에 있어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연구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무리해서라도 될 때까지 부딪쳐 보는 성격이었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돌파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항상 맞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난관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마주하는 용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생인 여러분들은 현재 리더로 성장하고 있는 중입니다.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싶다면 문제를 직시하세요. 스트레스를 관리하기 위해서 저는 운동도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했습니다. 학부 시절부터 대학원까지 검도, 축구, 헬스를 꾸준히 했는데요. 이를 통해 길러진 체력과 지구력은 긴 연구 여정을 버틸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 되어주었습니다. 특히 개인 운동과 단체 운동을 모두 경험하면서 각각의 다이나믹을 연구생활에도 빠르게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 이영희 교수님과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도교수님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도교수님이셨던 이영희 교수님과 매일 조금이라도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단순히 연구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교수님의 사고방식과 연구 철학을 이해하며 큰 방향에 공감하려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제 연구와 논문 활동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 교수님과 나누었던 대화들은 지금 제가 제자들과 소통하는 데에도 큰 자산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 덕분에, 지금 오히려 그때보다 지도교수님을 한층 더 깊이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캠퍼스 생활의 소소한 즐거움도 꼭 누리시기 바랍니다. 저의 최애 장소는 학부 1학년 때부터 10년 동안 단골이었던 ‘먹거리 고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소소하게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을 쌓았던 공간인데, 기회가 된다면 꼭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모님께 제 이야기를 전하시면, 아마도 서비스로 고갈비가 나올지도 모릅니다.
#Tux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 검색창에 위의 키워드를 입력하면 서른 편이 넘는 글이 나온다. 2019년에 첫 글을 올린 이후 지금껏 후배들의 진로 선택에 밀도를 더해온 펭귄 프로필의 닉네임 Tux는 바로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 동문이다. 후배들이 따라 걸어올 수 있도록 발자국을 글로 새기며 일명 ‘활자’국을 남기고 있는 그녀는 진로 고민 속에서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는 성균관대의 고마운 펭귄이다. 2025년 6월 24일, 성균관대학교 자연과학캠퍼스 자유게시판에 ‘구글 합격 후기’라는 제목의 글 하나가 올라왔다. 성균관대 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에브리타임 게시판에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학부연구생 Tip’, ‘미국 CS 대학원 박사과정 합격 후기’, ‘메타 출근 한 달차’ 등 대학원, 유학, 해외 취업과 관련된 궁금증을 친근하게 풀어주고, 유학 상담이나 서류 첨삭도 도와주며 후배들의 곁을 지켜온 Tux가 구글 입사 소식을 전한 것이다. 후배들의 무수한 축하와 감사 인사를 받으며, 이제는 구글 엔지니어로 활약할 그녀를 인터뷰했다. |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소프트웨어학과 14학번 박수진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에서는 닉네임 Tux로 활동했습니다. 2019년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Institute of Technology) 대학원에서 Computer Science 박사과정으로 공부하다가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졸업 후에는 올해부터 구글 Cloud Infrastructure 팀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근무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제 얘기를 나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에 작성한 구글 최종 합격 후기 글이 큰 반응을 불러왔어요.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리크루터로부터 합격 전화를 받던 순간의 소감을 들어보고 싶어요. 모든 인터뷰가 1대 1로 진행되었다 보니, 사실 인터뷰 과정에서 인터뷰어의 반응이나 티키타카를 통해 제가 잘하고 있는지를 이미 어느 정도 짐작할 수가 있었어요. 다행히 대부분의 인터뷰가 긍정적으로 흘러갔던 편이라 내심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오퍼로 연결되었다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였던 것 같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터뷰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기쁨은 그다음이었고요. 그 후에는 이후 예정되어 있는 다른 회사들과의 인터뷰 일정이나, 연봉 협상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지금까지는 줄곧 학교에만 있었던 터라 연봉 협상을 해 볼 일이 없었고, 노련한 리크루터와 영어로 협상하려니 또 공부할 게 많더라고요.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 자과캠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구글 합격 후기’ | ‘Tux’라는 이름으로 작성한 글이 어느덧 30편을 넘겼어요. 후기 글을 꾸준히 쓰게 된 계기와, 글을 쓸 때 담으시는 마음이 궁금해요. 성균관대에 입학한 뒤, 학과의 지원으로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새로운 세상을 접할 때마다, 또 졸업 후 멋진 커리어를 시작한 선배들을 볼 때마다 제 목표가 매번 업데이트되었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만큼, 조금이나마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고등학생 때는 내신이나 모의고사 등급처럼 눈에 보이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고, 그냥 주어진 기준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됐어요.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단순히 학점을 잘 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성공이라는 게 어디쯤 있는 건지 종종 막막하게 느껴졌습니다. 열심히 해 봤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할 수 없겠지만, 그런 길이 있다는 것조차 몰라서 노력도 못 해보고 기회를 놓칠까 봐 두려웠습니다. 저 또한 저학년 때는 해외 유학은 저와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3학년이 되어서야 이런 진로도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거든요. 소프트웨어학과가 2011년에 생겼고, 제가 4기이다 보니 미국 박사과정을 준비한 사람은 제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련 정보도, 진학한 선배도 없어서, 내가 과연 현실적인 목표를 향해 도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괜히 헛바람이 들어 불가능한 꿈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건지조차 명확하지 못해서 불안했습니다. 그럴 때, 한 명의 선배라도 선례를 만들어 주면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준비할 수 있어서 심리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후배들에게 이런 방향의 진로도 있다는 것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 글을 읽고 '이런 길도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음 목표나 꿈을 그려 나가는 후배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러 글을 작성했습니다. | 2019년 2월에 ‘학부연구생 시작 Tip’이라는 글을 올려 처음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을 전했어요. 동문님의 학부 시절도 궁금합니다. 처음 학부연구생(대학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학부연구생을 처음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오히려 취업 쪽으로 좀 더 기울어져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당시 소프트웨어학과에서는 3학년이 되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학부연구생을 시작하던 분위기였기 때문에, 저 역시 큰 고민 없이 다들 하니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변에서는 3학년쯤 되면 슬슬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아 진로를 정하라고들 했는데, 당시의 저는 정작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서 꽤 답답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어요. 아직 딱히 제대로 해본 것도 없는데,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좋아하는 걸 찾는 건 어려웠지만, 잘하는 걸 좋아하게 되는 건 쉬웠어요. 학부연구생을 시작한 후 연구실에서 매주 세미나에 참여하고, 논문 스터디를 하고, 국내 학회 논문도 작성하는 과정에서 박사과정 선배들께 칭찬을 많이 받았는데, 그러다 보니 연구가 점점 재밌어지고 좋아졌어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밤늦게 연구실에 남아 공부하는 날이 많아졌고, 자연히 ‘대학원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 학부 졸업 후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Georgia Tech) 대학원에 진학하셨어요. 결심 끝에 진학하신 CS 박사과정 중 “이 길을 선택하길 참 잘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나요? 안 그래도 힘든 박사과정인데, 아무런 연고도 없는 타국에서 모든 걸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한다는 현실은 처음 예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모질고 험난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대학원 유학이 이렇게 다사다난한 여정이라는 사실을 몰랐기에 오히려 용기 내어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역경들을 하나씩 이겨내며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이 길을 선택하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하게는, 유학을 나오기 전보다 영어가 한층 편해졌고, Meta, Microsoft 같은 여러 빅테크 기업에서도 연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고요. ▲미국 조지아 공과대학교 ▲ Meta, Microsoft 제 분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생기는 것이 좋았어요. 또 전 세계에서 모인 똑똑한 친구들이 가득한 환경에서, 서로 배우고 자극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네트워크 역시 유학을 통해 얻은 큰 자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모두가 낯선 타지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던 신입생들이었는데, 이제는 그 친구들이 전 세계 유수 대학의 교수가 되거나 주요 테크 기업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보면 새삼 신기합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선택한 덕분에 더 많은 기회와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다사다난한 여정이라고 언급했지만, 지나고 생각해 보면 그래도 그 덕분에 제 20대가 다채로운 경험으로 가득 찰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애틀랜타에서 시애틀까지 40시간이 넘는 거리를 무려 두 번이나 차로 직접 횡단하기도 했고, 열 곳이 넘는 미국 국립공원들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스위스에 있을 때는 여름이면 호수에서 수영하고, 겨울이면 알프스에서 눈썰매를 타고 산에 내려오며 주말을 보내기도 했고요. 학문적인 성장만큼이나, 삶 자체가 넓어지고 풍부해졌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여정이었습니다. | 세계 최고의 IT 기업 본사가 몰려 있는 기술 혁신의 중심지, 미국 실리콘 밸리(Silicon Valley)에서 메타(Meta) 방문 연구자로 일하셨어요. 많은 개발자가 한 번쯤 꿈꾸는 무대에서 실제로 살아 보고 일해 본 느낌이 궁금합니다. 저도 컴퓨터를 전공하고 있는 만큼, 실리콘밸리에 대한 로망이 늘 있었습니다. 마침 Menlo Park에 있는 Meta 본사에서 7개월간 방문연구원(Visiting Researcher)으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처음에는 졸업이 늦어질까 봐 조금 망설이기도 했어요. 그래도 ‘한 번쯤 꼭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훨씬 더 컸기 때문에, 결국 마음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게 됐습니다. 메타에 다니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건 의외로 ‘괴리감’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있을 때보다 업무 강도도 더 낮고, 밤새우는 일도 없고, 일과 삶의 균형도 지켜가며 더 여유롭게 일했는데, 제가 작은 것 하나만 완성해 가도 팀원들은 아낌없이 칭찬해 줬고, 월급은 2~3배를 줬거든요. 현실에서는 늘 시간도, 돈도 부족한 대학원생이었던 제가 갑자기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아도 되나 싶은 어리둥절함이 메타에서의 첫인상이었습니다. 근무 기간 동안 인상 깊었던 건, 회사가 개발자들에게 정말 많은 것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하루 세 끼 식사는 물론이고, 커피, 아이스크림, 베이커리 같은 간식도 무제한으로 제공되었고요. 업무에 필요한 장비들은 오피스 곳곳에 놓여있는 자판기에서 사원증을 찍기만 하면 바로 뽑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가는 비행기도 비즈니스석으로 끊어주고, 현지 정착을 도와주는 전담 매니저가 배정되어 집을 구하는 일부터 짐을 보내는 일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무 상담도 한국과 미국 각각 전문가를 붙여줬고요. 제가 일하던 2022년에는 출퇴근에 대한 제약도 전혀 없었고, 원한다면 100% 재택근무도 가능했습니다. 미팅 시간만 잘 지키면 언제, 어디서 일하든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들이 업무 외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도록, 회사가 환경과 시스템을 최대한 지원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든 것이 잘 갖춰진 환경 속에서 오히려 더 크게 느낀 건, ‘자유’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점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 개발자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만 출근한다더라, 오전 11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에 퇴근한다더라 하는 얘기들을 들으며 많은 분이 부러워하지만, 제가 체감한 절대적인 업무량은 오히려 한국에서 일할 때보다 더 많았습니다. 다만 정해진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성실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 줄 필요가 없을 뿐이죠. 한국에서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면서 성실한 태도를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만, 메타에서 재택근무를 할 때는 하루 종일 정말 열심히 일했더라도 그날따라 코드가 풀리지 않고 진전이 없으면 하루 종일 논 것과 다름없어지는 기분이었어요.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걸 체감했던 시기였습니다. | 첫 논문이 컴퓨터시스템 분야 최상위 학회인 OSDI(Operating Systems Design and Implementation)에 채택되었어요. 처음으로 작성한 논문이라 더욱 의미가 크실 텐데,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성과를 자랑해 주세요. 박사과정 3년 차에 작성한 논문으로, 고성능 컴퓨터에서 CPU 코어를 추가하면 성능이 더는 올라가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시스템 분야에서는 흔히 관측되는 현상인데요, 저는 이를 운영체제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기법을 제안하고 구현해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시스템 분야는 다른 컴퓨터공학 분야에 비해 논문이 나오는 주기가 다소 긴 편이라, 첫 결과를 만들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이 주제에 대한 애착도 깊었습니다. 특히 이 논문은 제게 있어 단순한 연구 성과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박사과정 1년 차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덮쳤고, 저를 포함한 많은 유학생이 2년 넘는 시간 동안 재택근무와 고립된 환경 속에서 연구를 이어가야 했습니다. 현실감 없는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졌고, 사재기로 텅 빈 마트 진열장을 마주하던 날들, 타국에서 가족도 없이 불안한 마음으로 긴 시간을 버텨야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시기를 유학생끼리 ‘잃어버린 2년’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버거운 시기였지만, 그 와중에 묵묵히 이어간 연구가 결국 논문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큽니다. 대학원을 입학하는 순간부터 저를 줄곧 따라다니며 괴롭히던 제 무능함에 대한 불안을 이때부터 떨쳐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연구는 예상보다 훨씬 오래 끌어서 한때는 ‘애증의 주제’가 되어버렸는데, 막상 OSDI에 채택되고 나니 다시 애정만 남더라고요. 처음으로 국제 학회 무대 위, 많은 사람 앞에서 발표했고, 거기에 실시간 데모 시연까지 준비했기 때문에 부담도 컸습니다. "라이브 데모를 한다"라는 말을 꺼낼 때마다, 학회장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Oh… Good Luck!”을 외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다행히 발표는 무사히 마쳤고, 논문에서만 보던 유명한 연구자들과 직접 제 연구를 두고 대화를 나누고 질문을 주고받는 경험은 기대 이상으로 훨씬 짜릿했습니다. 3년간 크고 작은 슬럼프를 겪고, 외롭고 답답하게 보냈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한순간에 롤러코스터처럼 치솟는 기분이었어요. ‘다들 이 맛에 연구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자랑하자면, 지난달에 열린 OSDI 2025에서도 1 저자로 또 한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돌아왔습니다. ▲ OSDI 2022 ▲ OSDI 2025 | 긴 고민 끝에 학계가 아닌 인더스트리를 선택하셨어요. 구글 합격 수기에서 결정 이유를 자세히 다루기엔 내용이 방대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여기에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저는 진로를 결정할 때 늘 제 앞을 몇 년 먼저 걸어간 선배들을 많이 관찰해 왔어요. 특히, 똑똑하고 멋지다고 느낀 분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유심히 보고 따라가려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진학한 뒤에는, 논문 실적도 많고 연구 성과가 좋은 선배들이 대부분 교수가 되는 걸 보면서 ‘교수가 좋은 길인가 보다’라고 막연히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그게 왜 좋은 건지에 대해서는 늘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고, 마치 정답만 아는 채 풀이 과정은 모르는 느낌이 계속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로 일하고 있는 선배들에게 ‘왜 교수가 되었는지’를 하나하나 물어보기도 했고, 박사과정 5년 내내 그 이유를 납득하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끝내 저 자신을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어요. 혹시 내가 인더스트리에 막연한 로망을 갖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세계를 직접 경험해 보려고 했습니다. 한국 인더스트리, 미국 인더스트리, 유럽 학계, 미국 학계까지 정말 다양한 환경에서 인턴십을 해봤는데, 이렇게 ‘종류별로’ 다 겪어본 박사과정 학생은 흔치 않을 거예요. 그런데 경험해 보니 의외로, 인더스트리가 제게 훨씬 더 잘 맞더라고요. 예를 들어, 몇 년을 바쳐 작성한 논문이 최상위 콘퍼런스에 채택되더라도 실제로 세상에서 사용되지 않는 경우를 너무 자주 봤어요. 제 학회 발표 영상도 조회수가 1,000회도 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회사에서는, 제가 단 몇 달 동안 기여한 코드가 실제 대규모 서버에 배포되고, 수많은 사용자 환경에 영향을 주는 경험이 정말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시스템 성능과 효율을 높이는 연구를 주로 해왔기 때문에, 인더스트리에서 접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자원과 스케일, 그리고 실질적인 임팩트가 특히 더 크게 느껴졌어요.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회사에서는 박사들이나 경력 많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일하게 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교수가 되면 이제 막 학부를 졸업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함께 연구해야 하잖아요. 지금은 뛰어난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시간들이 좀 더 기대되기도 하고, 그 환경 자체가 큰 동기부여가 됩니다. 물론 이 선택이 100% 옳았는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고, 사실 지금도 고민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몇 년 뒤에 또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기대한 것과 달리 실망하고 후회할 수도 있겠죠. 다만, 지난 몇 년간 정말 밀도 있게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인 만큼, 지금은 제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마주해 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 구글에 붙기까지 스크리닝, 온사이트 인터뷰부터 팀 매칭 인터뷰까지 거의 10차례에 달하는 과정을 거치셨어요. 긴 여정을 견디신 마음가짐이 궁금합니다. 박사까지 마치면 더는 코딩 테스트를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구글 인터뷰에서도 여전히 그래프 탐색, 트리 순회 같은 알고리즘 문제를 풀어야 했고, 학부 저학년 때 배웠던 개념들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복습하고 연습해야 했습니다. ‘내가 이걸 또 해야 하나’ 싶은 마음에 솔직히 처음에는 현실을 자각하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로 많은 박사과정 학생들이 인터뷰 준비에 생각보다 충분한 시간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꼈어요. 논문에는 1년 이상을 투자하면서도, 정작 졸업 후의 진로를 결정짓는 취업 인터뷰에는 일주일도 채 못 쓰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저는 그게 너무 아쉬울 것 같았어요. 떨어지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인터뷰 준비에도 최선을 다해서 제 실력을 온전히 보여주고 평가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논문 제출, 졸업 준비만큼이나 취업 준비에도 시간을 의식적으로 배분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현실적으로 박사과정 중에 인터뷰 준비에만 집중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몇 달에 걸쳐 메인 업무 외에 주말이나 밤 시간을 투자하면서 꾸준히 준비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스크리닝부터 온사이트, 팀 매칭까지 반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인터뷰 프로세스를 거치며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한 만큼 제 역량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었던 점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이후 6년간 100명이 넘는 성대 후배들에게 상담, 첨삭 등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기억에 남는 후배 등 소중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대학원 합격 후기를 쓴 게 2019년인데, 그 글을 읽고 지금까지도 꾸준히 연락을 주시는 후배님들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고 신기해요. 시기마다 차이는 있지만 한 달에 3~5명 정도는 꾸준히 연락을 주셔서, 지금까지 대화한 분들이 사실 100명도 훌쩍 넘을 거예요. 장문으로 한두 번의 대화가 Q&A처럼 오가는 경우도 있고, 1~2년에 걸쳐 유학 준비 전반을 도와드리며 오랫동안 연락을 이어간 경우도 있어요. 그중에는 처음엔 후배로 상담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한국에 갈 때마다 꼭 만나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 각 주마다 제 멘티들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도 새삼 재미있게 느껴지곤 해요. 상담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인데, 유학 가기엔 늦었을까요?’인데, 정말 해외로 나오실 생각이라면 사실 나이는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서로서로 나이를 궁금해하지도 않고, 각자의 배경이 다 천차만별이라 나이로는 경쟁이나 비교가 잘 안되거든요. 기억에 남는 후배는 정말 많은데, 한 분만 고르자니 어렵고, 모두 다 언급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몇 년 전의 제 모습이 떠오르는 분들과의 상담이 특히 더 마음이 가는 것 같아요. 꿈은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한 마음에, 답장이 올지 안 올지도 모르면서도 조심스럽게 장문의 쪽지를 보내는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저도 너무 잘 알거든요. 그래서 그런 연락을 받을 때마다 더더욱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고 싶고, 같이 고민하고 길을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유학 상담은 사실 업체를 통해 받으면 꽤 큰 비용이 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저는 대신 상담비로 에브리타임에 본인의 합격 후기를 남겨달라고 부탁드리고 있습니다. 일종의 다단계랄까요. 6년 전에 쓴 제 후기보다, 이제 막 따끈따끈하게 합격하신 분들의 후기가 훨씬 더 도움이 될 테니까요. 그리고 사실, 학계 대신 인더스트리를 선택하면서 마지막까지 가장 아쉬웠던 부분도 이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누군가의 성장을 함께 보고, 응원하고, 필요한 조언을 나누는 일 자체가 참 좋더라고요. 비록 연구실을 떠나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지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멘토링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이후 공적인 매체에서 다시 인사를 드리는 건 처음이시죠. 동문님을 롤모델로 삼아 해외로 나아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박수진 학우는 2021년, 정교한 필기체를 가진 성균관대학교 인간프린터로 스브스뉴스에 출연했다. ▲ 스브스뉴스 출연 영상(이미지 클릭) 스브스뉴스에는 연구나 진로와는 전혀 무관한 주제로 출연해서 사실 조금 민망했는데, 이렇게 다시 조금은 더 진지한 이야기로 인사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2019년에 유학을 온 이후, 타지에서 적적할 때마다 에브리타임에 사는 얘기를 공유해 드렸는데, 이렇게 학교 웹진에도 소개되다니 성공적으로 대학원을 잘 마무리하는 것 같아 새삼 감회가 새롭습니다. 해외 진학이나 취업을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라면, 분명 쉽지 않은 순간들도 마주하시겠지만, 그만큼 다채로운 경험과 깊은 성장을 얻게 되는 여정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여러분도 대학원… 꼭 오세요!
“호텔과 리조트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시대” 호텔신라의 비즈니스호텔 브랜드 신라스테이(Shilla Stay)와 어퍼 업스케일급 브랜드 신라모노그램(Shilla Monogram)을 운영하며, 한국 호텔업계와 긴 걸음을 함께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신라HM의 초대 대표이사 박상오 동문(경영학과 82)이다. 호텔신라가 2014년 신라스테이 본부를 자회사 신라스테이(현 신라HM)로 분사하면서 초대 대표에 선임된 박 대표는 이후 10년째 신라HM의 수장을 맡고 있다. 신라HM은 브랜드 파워와 호텔신라 그룹의 견고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창궐한 2020년에도 큰 타격 없이 위기를 극복했다. 이어 1년 만인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으며, 2022년에는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며 호텔신라 그룹의 핵심 사업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한 해 동안 100만 개 이상의 객실을 판매하며 호텔업계의 미답지를 개척하기도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운영전문회사’라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그는 현재도 도전의 포석을 다져가며 호텔업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자랑스러운 성균인이자 경영인 박상오 동문을 만나 그가 선사하는 경영의 정수를 들어 보자. |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1982년에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1989년 졸업 후, 삼성그룹(호텔신라)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습니다. 입사 이후 줄곧 경영관리부서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임원으로 승진했으며, 2013년에 호텔신라가 사업 확장을 위해 새롭게 출시한 브랜드 신라스테이(Shilla Stay)를 운영하기 위해 설립된 신라HM(Hospitality Management)의 초대 대표이사를 맡아 현재까지 재직 중입니다. 현재 신라HM은 신라스테이뿐 아니라 상위 브랜드인 신라모노그램(Shilla Monogram) 또한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에 소재한 신라스테이 삼성 ▲신라모노그램 강릉 | 신라스테이(현 신라HM)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래 10년간 브랜드를 이끌어 오셨습니다. 호텔업계에서 오랜 기간 최고경영자로서 계신 가운데, 대표이사로서의 첫 시작점이 궁금합니다. 삼성그룹(호텔신라)에 입사하여 임원이 되기까지의 20여 년은, ‘호텔의 성장은 철저하게 룸 KEY(객실 수 혹은 프라퍼티 수)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굳혀 가는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서울과 제주 두 곳의 호텔만을 운영 중이었던 상황에서는 기업으로서의 성장은 물론, 직원들 개개인의 꿈을 펼치는 데에도 너무나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호텔업이라는 것이 초기에 막대한 투자가 수반되고 그 회임 기간도 길어, 직접 투자를 통한 신규 진출에는 큰 위험이 따르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임원으로 승진한 후 2011년쯤, 금융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엔고 현상으로 일본 관광객의 입국이 증가하는 등 호텔의 사업 여건이 급격히 개선되는 상황이 전개되어, 이는 외부 자본을 활용해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신규 브랜드 진출에 대한 치열한 내부 토의를 거친 후, 2012년에 4성급 비즈니스호텔 신라스테이를 선보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에 신규 브랜드 진출을 지지한 임원 중 한 사람으로서 제가 신라스테이 본부를 맡아 신규 프라퍼티의 입지 선정, 설계, 시공, 오픈 준비, 운영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도맡게 되었습니다. 2014년에 들어서는 신라스테이를 운영하는 회사를 별도로 만드는 것이 효율성 측면에서 유리하겠다는 판단에 따라 호텔신라의 자회사로 별도 법인을 설립하였고, 제가 초대 대표이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후 신라스테이의 상위 브랜드인 신라모노그램을 론칭하고 이를 함께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16개의 신라스테이 브랜드와 1개의 신라모노그램 등 총 17개의 호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해 평균 1.4개 수준의 신규 프라퍼티를 오픈해 왔고, 12년이 지난 현재는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내실을 다짐으로써, 적어도 국내에서는 호텔 운영사로서의 확고한 입지를 구축했다고 자부합니다. | ‘신라스테이’는 다른 비즈니스호텔과 어떤 점에서 차별화된다고 생각하시나요? 호텔 운영의 3대 요소를 브랜드력, 탑라인(Top Line)* 확보력, 원가경쟁력이라고 봅니다. 브랜드력은 모회사인 호텔신라의 후광을 입은 측면이 매우 크고, 이를 바탕으로 원가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타 경쟁사와의 큰 차별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원가경쟁력은 결국 프로세스 경쟁력에서 비롯됩니다. 경쟁력이란 프로세스의 혁신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업무 체계의 정립까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탑라인(Top Line): 기업의 손익계산서에서 가장 위에 나오는 숫자. 즉 총매출(Gross Sales)을 뜻한다. | ‘신라스테이’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KMAC)이 주관한 ‘2024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비즈니스호텔 부문에서 5년 연속 1위를 수상했다고 들었습니다. 꾸준한 성과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호텔 산업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 업의 지속 가능성은 브랜드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호텔의 경쟁 요소 중 브랜드력과 탑라인 확보력, 원가경쟁력은 상호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 시너지의 영역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탄탄한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탑라인을 개선하고, 극대화된 탑라인과 원가경쟁력은 곧 브랜드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이루게 됩니다. 특히 재무나 환경 측면으로 어려울 때도 이 부분에 대한 투자는 지속해 온 결과를 고객님들께서 높이 평가해 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 대표님만의 경영 철학이 궁금합니다. 우연이나 환경에서 얻은 좋은 성과보다는 체계적인 프로세스 하에서의 실패가 더욱 의미 있다는 것입니다. 우호적인 환경요인에서 기인한 성과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나 기계화할 수 없는 호텔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체계화된 프로세스의 중요성은 더 크다고 봅니다. 긴 호흡으로 차근히 근본을 정립하는 것은 일시적으로 성과를 볼 수 없을지는 모르나, 종국에는 성공의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 대표이사라는 자리를 오랜 시간 지켜오신 입장에서, 그 자리에 필요한 자질과 감당해야 할 무게는 어떤 것이었나요? 어떤 조직의 장에 있어서 핵심 경쟁력은 그 업의 본질과 관련된 전문성과 실행력, 그리고 조직을 회사의 전략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통솔력이 좌우합니다. 업의 본질에 대한 부단한 연구를 해 나가는 동시에 이를 실무에서 적용하고 잇따른 결과에 대한 인과관계를 지속적으로 분석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리더십입니다. 그 리더십은 누구보다 우위에 있는 지식으로 ‘나를 따르라’ 하는 영역이 있고, 한편으로는 큰 방향의 한 틀 속에 있다면 ‘뜻대로 다하라’ 하는 분야가 있을 수 있습니다. 두 영역은 적절한 조화의 문제를 넘어, 철저하게 계산된 가운데 실행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 성균관대학교 재학 시절, 경영학도 박상오 학우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1학년 때는 경영 계열로 입학하였으며, 2학년이 되어서 경영학과와 회계학과로 나뉘었는데 돌아보면 1학년 때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제대로 원 없이 놀아 본 것도 아니고, 아무 의미 없이 흘려보냈던 시기였습니다. 1년 내내 무의미한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아무래도 이래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려운 집안 형편에 동생이 또 대학에 들어오게 되어서 1학년을 마치고 입대를 했습니다. 제대 후 복학하니 친구들은 대부분 군에 있어서 85학번 후배들과 대학 생활의 나머지 3년을 함께했습니다. 졸업 연도가 되어 그동안 준비했던 다른 진로에 실패하면서, 기업을 간다면 다양한 길이 열려 있는 대기업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대학 생활은 입학부터 생각했던 진로까지 결국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당시에 대학생이면 누구나 다 하는 담배, 당구, 커피, 포커조차 배워보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실패로 점철된 학창 시절이지만 그럼에도 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또래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이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않고 4남 3녀의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서 나서, 위의 형님 두 분은 대학에 보내지 않으셨음에도 저를 대학에 보내 주신 것만으로도 고마운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원 등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상황이었으니 이 부분이 경영학과를 선택한 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영학이라는 게 그렇듯이 (최고)경영자를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지요. 그러나 저의 노력과 꿈보다는, 부모님과 저를 위해 희생하신 형제자매, 지금의 가족,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여러 인연의 도움이 현재의 저를 있게 한 근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 앞으로 대표님과 신라HM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까요? 앞서 말씀드렸듯, 신라HM은 호텔신라의 브랜드 중 신라모노그램(5성급), 신라스테이(3, 4성급)를 운영하고 있고, 향후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게 되면 이 또한 신라HM에서 운영하게 될 것입니다. 즉, 신라HM은 호텔의 소유가 아닌 운영전문회사로 성장해 갈 것입니다. 현재 국내에 신라스테이 브랜드 16개와 해외(베트남 다낭)에 신라모노그램 브랜드 1개를 포함한 총 17개가 운영 중이며, 올해 중으로 신라모노그램이 강릉과 중국 시안 두 곳에 더 오픈하게 됩니다. 이외에도 다수의 신라스테이, 신라모노그램 브랜드의 호텔이 국내외에서 계약을 추진 중입니다. 늘 제게는 ‘다른 산업에서는 한국 기업이 세계적으로 선두를 점하곤 하는데, 호텔산업은 왜 그렇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신라HM의 목표는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호텔운영전문회사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는 먼 훗날의 구호만 있는 희망 사항이 아니라 현재 실질적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습니다. 저는 초대 대표이사로서 그 초석을 깔아가고 있을 뿐, 그 확산과 완성은 우리 후배들의 몫이 되겠지요. | 최고경영자로서, 경영학도 후배들에게 따뜻한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업에 있어서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 중의 하나인 시대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든, 어떤 영역이든 하나의 요소로 성공을 결정할 수만은 없습니다. 회사를 운영함에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과 혁신적인 사고, 통찰력을 손에 쥐고 여러 구성 요소를 분석해야 합니다. 계획을 수립하고, 그 실행을 관리하고, 문제점을 파악하여 개선하고, 또한 그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의 역량을 그것에 맞게 일직선상에 놓는 일련의 과정이 기업 경영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기업에서의 필요 역량을 배양하는 역할로서는 경영학이 최적화된 학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다닐 때보다 훨씬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와 주어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선배가 힘이 납니다.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되기 위해 늘 긴장을 주는 후배들이 고맙고 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인간관계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을 것이다. 특히 연애로 발전하기 전 단계인 썸은 우리를 설레게 하는 동시에 헷갈리고, 골치 아프게 만든다. 어쩌면 모호하기 때문에 혼란스럽고 떨리는 상태가 썸의 가장 큰 매력이자 맹점일지 모른다. 우리 대학의 이정규 교수는 이러한 썸의 모호함을 철학적으로 정의 내린다. 순식간에 지나온 2025년의 상반기와 지나온 인연들을 회상하며 썸이라는 철학을 함께 알아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의 이정규입니다. 저는 언어철학과 존재론/형이상학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고, 특히 우리 언어가 세계의 다양한 대상들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종류의 대상들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부에서는 분석철학사, 존재론/형이상학, 양상 논리학 등의 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 썸에 관해 쓰신 논문이 유명한데, 신조어 '썸'으로 논문을 작성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저의 주전공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음에도 썸에 대한 논문을 쓰게 된 계기는 박사과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 썸이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는데, 친구와 이 용어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중 문득 이 개념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떠올린 분석을 가볍게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그 글을 본 한 선배님이 "소셜미디어에서 재능 낭비하지 말고, 발전시켜서 투고해 보라"는 요지의 댓글을 남기셨어요. 박사과정 동안은 연구에 바빠 그 글을 잊고 지내다가, 몇 년이 지나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그 아이디어를 다듬어 논문으로 발전시켜 투고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국내 분석철학 분야에서 가장 손꼽히는 학술지인 『철학적 분석』에 해당 논문(「썸을 탄다는 것은 무엇인가: 신조어 '썸타다'의 적용조건 분석 」)이 게재되었습니다. | 논문을 바탕으로 썸의 조건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철학에서 자주 쓰이는 한 가지 방법론이 개념 분석입니다. 개념 분석의 목표는 문제시되는 개념을 분석하여 그에 대한 선험적이고 필연적인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의 목표는 <썸>의 개념 분석을 통해서 두 사람이 썸을 타는 상황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즉 분석이 올바르다면, 두 사람은 그 조건을 만족하는 오직 그 경우에만 썸을 타는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조건이 상대방의 호감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에 근거한다고 제안합니다. 논문에서 나타나는 완결된 분석은 다소 복잡하기에 직접 읽어보시기를 추천해 드리지만, 그 핵심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고, 서로는 상대방이 자신에게 이성적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 증거가 호감을 확실하게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오직 그 경우 두 사람은 썸을 탄다. 더하여 호감을 보장해 주는 명확한 증거가 아닌 이러한 불확실성이 상대방이 호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적 불확실성을 기반한다는 전제하에 위 조건을 충족하는 불확실성만이 두 사람의 관계를 썸으로 정의한다는 것입니다. | 썸의 분석에 대한 반례 찾기를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과제가 있으실까요? 2018~2019년 <논리학> 강의에서, 필요충분조건과 반례 개념을 설명하며, 학생들에게 반례 찾기 과제를 내주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반례는 제 분석이 어장 관리를 썸에서 제외하지 못한다는, 즉 충분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반례입니다. 이러한 반례에 대해 논문에서 ‘썸이 아닌 어장 관리’와 ‘썸으로 볼 수 있는 어장 관리’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반박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논문에 등장하는 주요 비판점들 가운데 상당수는 각주에 이름이 언급된 당시 수강 학생들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교수님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 본 경험이 있으실까요? 만약 썸과 관련한 제 개념 분석이 맞는다면,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라는 것은 개념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모든 썸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이 됩니다. 저는 썸을 타본 경험이 있으므로, 이로부터 제가 인식적 불확실성에 기반한 썸을 타본 경험이 있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따라 나옵니다. 물론 인식적 불확실성이 결여된 썸이 가능하다는 올바른 반례가 제시된다면, 제 분석은 틀린 것으로 판명될 수 있습니다. 최성호 교수님의 「썸타기와 어장관리에 대한 철학적 고찰」, 오희철 교수님의 「'썸타다'에 대한 새로운 개념 분석: 믿음적 불확실성 관점」과 같은 논문을 읽어보시면, 그러한 시도를 찾아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수님의 주전공에 관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관심을 갖고 계신 연구 주제는 무엇인가요? 단어나 문장이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일견 그것이 지시하거나 나타내는 대상 혹은 사태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스파이더맨은 영웅이다'와 같은 문장이 스파이더맨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에 저는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스파이더맨'과 같은 허구적 이름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또한 허구적 대상의 본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이는 현재 분석 철학계에서 매우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로, 저는 관련된 연구 결과물들을 꾸준히 해외 유수의 학술지에 게재하며 연구를 이어가고 있으며, 그중 하나는 한국 분석 철학계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모하분석철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 밖에도 '대한민국'과 같은 국가의 이름을 통해 우리가 정확히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 그리고 보다 일반적인 철학적 주제로서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물질적 구성의 문제나 철학적 방법론이 과학적 방법론과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재학생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분석철학은 우리의 삶과 세계에 내재하는 근본적인 문제들을 치밀한 논리를 통해 분석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입니다. 재학생 여러분들이 관련 수업을 들어 보신다면 논리적 사고력을 한층 더 키우실 수 있고, 이는 철학 전공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또한 근 몇 년 동안에는 철학과 관련된 주제들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트롤리 문제(윤리학), 통속의 뇌(인식론), 테세우스의 배(형이상학) 등은 이제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본 주제가 되었습니다. 5억 년을 무의 세계에서 사는 대신 천만 원 받기와 그냥 살기 중 선택하는 문제 역시 한때 밸런스 게임처럼 유행했었는데, 이 또한 철학에서 다루는 인격 동일성 논의 등과 밀접하게 연관된 주제입니다. 철학은 이처럼 대중의 흥미를 끄는 주제들도 진지하고 심도 있게 다룹니다. 물론 대부분, 철학이 관련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철학을 배우면 왜 그러한 철학적 문제들에 답을 제시하기가 논리적으로 간단한 일이 아닌지, 각 입장에 어떠한 문제들이 있는지, 또한 철학적 주제들에 대해 본인이 지금까지 간과했거나 무지했던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더 명확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모두 철학의 매력에 빠지셔서 깊은 논의를 나눠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철학은 하나의 합의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는 삶과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철학의 특징일 것이다. 철학을 이해한다는 것은 정답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모호함을 탐색하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다. 썸과 같이 정답 없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신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호한 삶의 궤도를 걸어갈 때 자신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감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삶을 더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 사회과학대학 소비자학과 남수정 교수 - 1992년 생활과학대학 입학 - 2002년 박사학위 취득 - 2022년 소비자학과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 남수정입니다. 1992년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해 1996년 2월 학부를 졸업한 뒤, 약 10개월간 투자은행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1996년 동 대학원 석사과정에 진학했습니다. 2002년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타 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며 연구 활동을 이어갔고, 2007년부터는 전북 지역의 한 대학에서 15년간 교육과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부임해 현재까지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지속가능한 소비, 소비자 역량, 기후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주제를 중심으로 학제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 (왼쪽) 1993년 관악부 연주회 새내기맞이 신춘 음악회 기념, (오른쪽) 1998년 대학원 MT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성균관대학교에서의 학문적 경험은 제가 소비자학을 전공하고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게 된 출발점이었습니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소비자학의 다학제적 특성을 반영한 커리큘럼을 통해 양적·질적 연구방법, 소비자정책, 지속가능한 소비 등 다양한 주제를 학습하며 실증적 탐구 역량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연구 주제 설정, 설계, 분석, 논문화까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면서 연구의 기초를 다졌고, 동료들과의 공동연구와 토론을 통해 다양한 시각을 접하며 학문적 사고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부임하면서 모교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학생 시절 공부했던 익숙한 공간에서 후배들과 함께 연구하며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생긴 주인의식은 연구에 대한 몰입도와 책임감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실제 연구 성과와 교육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학부와 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연구 과제를 수행하고, 연구 방법을 공유하며 후배 연구자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돕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 제 연구 역량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1996년 2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부를 졸업한 후, 외국계 투자은행에서 약 10개월간 근무하며 금융 실무를 경험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소비자 행동과 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지만, 학부 시절부터 관심을 가져왔던 소비자학의 전문성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이 따랐습니다. 결국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해 성균관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소비자학 이론과 함께 통계 분석, 조사 설계 등 다양한 연구 방법을 익히며 연구 역량을 키워 나갔습니다. 교수님들의 지도와 동료들과의 학문적 교류 속에서 점차 연구자로서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고, 2002년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인하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소비자 행동과 정책 관련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해 실질적인 경험과 성과를 쌓았습니다. 2007년에는 전북 지역의 한 대학교에 전임교원으로 임용되어 15년간 교육과 연구를 병행했습니다. 현장에서는 단순한 이론 전달을 넘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지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 역시 교육자로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9월, 성균관대학교 소비자학과에 교수로 부임하게 되면서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는 이 자리가 제게는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한 기회입니다. 동시에 더 큰 책임감을 느끼며, 앞으로도 학과와 학교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성실히 노력하고자 합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소비자 역량(empowerment)을 중심으로, 기후불평등(climate inequality)과 기후정의(climate justice) 실현을 주요 연구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지속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ption)와 소비자 불평등 이슈를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미래기술과 기후위기가 소비자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실증적으로 탐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실천 가능한 정책적·실천적 개입 방안을 도출하고자 합니다. 최근 출판한 논문인 “Reducing Food Waste Behavior for Sustainable Consumption: The Effect of Food Consumption Values on Food Waste” (Journal of Consumer Affairs, 2025)은 한국 소비자의 음식물 쓰레기 감축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 소비가치를 중심으로 진행된 연구입니다. 이 논문에서는 한국의 소비자 행동을 유럽, 미국 등의 사례와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특성과 우수성을 조명했으며, 음식물 쓰레기 감축이라는 실천적 주제를 소비자 개인의 가치와 연결해 설명했습니다. 특히 개인차에 따른 행동 변화의 요인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에 따른 차별화된 개입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 주요한 의의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학부생들과 함께 진행한 URP (Undergraduate Research Program)를 통해 기후 리터러시(Climate Literacy) 척도를 개발하고, 기후동행카드와 같은 정책 도구에 대한 소비자 수용 가능성을 분석하는 연구도 수행했습니다. 이는 소비자의 기후 정보 해석 능력과 실천력 간의 연결 고리를 실증적으로 탐색한 연구로, 향후 실천 기반 정책 개발에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후위기는 단지 자연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를 초래한 집단과 그 피해를 받는 집단 간의 책임과 피해의 불균형이라는 측면에서 사회적 정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후위기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이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이며, 이로 인해 기후위기는 곧 소비자문제라는 인식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향후 연구에서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소비자 차원의 대응전략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후소비자 역량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 개발, 리빙랩(Living Lab) 기반의 지역사회 참여형 연구, 기후정보 및 실천 행동에 대한 디지털 기반 커뮤니케이션 전략, 그리고 국제 공동연구를 통한 소비자 불평등 완화 방안 등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연구들을 통해 사회 전반의 기후 대응력과 회복력을 높이고, 보다 포용적인 지속가능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대학원생들이 교육을 통해 쌓은 지식을 연구로 전환해 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역량은 주도성 있는 태도와 책임감 있는 소통 역량입니다. 연구는 단순히 주어진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연구의 주체는 학생 자신이어야 하며, 모든 연구 과정에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동적으로 지시만 기다리거나, 실험과 분석을 단순 업무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는 지식의 축적을 방해할 뿐 아니라, 창의적인 연구 발전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공동연구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현재의 연구 환경에서, 책임감 있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연구자로서의 기본 소양입니다. 일정이나 의견 조율 과정에서 응답이 지연되거나 소통이 단절되면 연구 전체의 흐름이 끊기고, 공동연구자에게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신중함 때문일 수도, 정보 부족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간단히라도 정확하게 공유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00시까지 검토 후 답변 드리겠습니다” 같은 간단한 메시지라도 공동연구 파트너에 대한 존중과 책임감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동입니다. 결국, 연구자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도 태도와 자세, 그리고 연구 공동체 내에서의 기본적 윤리와 소양을 갖추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대학원 시기는 단순한 ‘학습자’의 위치를 넘어서 ‘연구자’로 전환되는 중요한 시기이며, 스스로 생각하고,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함께 연구하는 사람들과 책임 있게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그 시작점입니다. 이러한 역량은 단기간에 형성되기 어렵지만, 지도교수나 공동연구자와의 소통 경험, 팀 프로젝트, 학회 발표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점진적으로 길러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타인의 의견에 귀 기울이며, 실수를 통해 배우는 과정 자체가 바로 교육적 지식이 살아 있는 연구로 전환되는 실제적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 2025년 소비자학과 Pre-school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연구자의 삶은 대부분 책상 앞에서 오랜 시간 집중하는 일로 채워집니다. 저 역시 대학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런 생활을 이어오면서,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해왔습니다. 특히 저에게는 2002년 8월 26일이라는 날이 기억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은 박사학위를 받은 날이자, 제 딸이 태어난 날이기도 합니다. 박사논문을 쓰는 동안 임신과 출산을 함께 겪으며, 연구를 이어간다는 것이 단지 지식이나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과 생활의 균형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임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학원생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조언은, 연구만큼 건강도 중요하게 생각해 달라는 것입니다. 좋은 연구를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체력과 정신적인 여유가 함께 필요합니다. 저도 성균관대학교에 부임한 첫 학기에는 동료 교수님들과 함께 필라테스 강사를 초청해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연구에 집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자신에게 맞는 운동 루틴을 만들어 꾸준히 실천하는 것, 그것이 연구자로서 긴 여정을 건강하게 이어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실행할 수 없으니까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돌보는 것, 그것도 연구의 한 부분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 동아시아학술원 손성준 교수 - 1997년 어문학부 입학(영어영문학 전공) - 2012년 박사학위 취득 - 2023년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성준입니다. 저는 2023년 8월 25일에 본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학부에서는 영문학과 중문학을 함께 전공했고 대학원 동아시아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연구 분야는 한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비교문학입니다. 강의는 주로 동아시아학술원에서 주관하는 한국학연계전공(학부), 동아시아학과(대학원)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학부시절 1전공은 영어영문학이었습니다. 즉, 앞에서 언급한 지금의 제 연구 분야와는 거리가 먼 셈입니다. 학업의 방향을 재정립한 계기는 본교 대학원 동아시아학과 진학이었습니다. 애초에 중국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중문학을 복수전공 했고, 3학년을 마친 후에는 1년간 베이징사범대학교의 어학연수 프로그램에도 참가한 바 있습니다. 대학원을 동아시아학과로 지원한 것 역시 그 연장선입니다. 대학원생이 된 이후로는 은사이신 한기형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한국 근대문학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비교문학 공부에 뜻을 두게 됐습니다. 관심 분야가 중국학에서 한국학 중심으로 이동한 것이죠. 특히 비교문학이라는 영역은 제가 학부에서 전공했던 영문학과 중문학 모두 자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에 설립된 동아시아학과는 새로운 학문을 위한 후속세대 양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석박사 과정 동안 전액 장학금을 지원받았고, 중국‧일본‧불가리아 등에서 개최된 국제학술회의에서 꾸준히 발표 기회를 얻었습니다. 2008년에는 베이징대학교 역사학과의 중국전문가 과정, 2011년에는 일본 니혼대학교에서 BK21 장기연수 프로그램에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또한 대학원 시절 동아시아학술원의 다양한 연구 사업에 보조원으로 참여하며 학계 최고의 연구자들과 많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모든 부분이 성장에 큰 원동력이 됐고, 지금도 변함없이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 (왼쪽) 학부시절 중국 연수, (오른쪽) 석사시절 지도교수님과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12년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 첫 경력을 시작한 곳은 칭다오에 있는 중국해양대학교 한국학과였습니다. 귀국 후에는 부산대학교 점필재연구소,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의 연구교수로 일하며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강의 경력은 성균관대학교, 서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세 군데서 쌓아나갔습니다. 그러던 중 2022년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공채에 합격해 처음으로 전임교원이 됐습니다. 해양대에서 1년 반 재직 후 상시채용 제도를 통해 모교에 임용되었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연구 중인 주제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드리면 동아시아적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 일본어와 중국어를 거치며 굴절되어 들어온 한국 최초의 서구영웅전들, 근대 문인들이 수행했던 번역과 창작의 상관관계, 식민지 검열체제와 문인들의 대응 양상 등이 있습니다. 저는 주로 근대 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번역'의 문제를 고찰해왔습니다. 대표 연구 성과는 『근대문학의 역학들 –번역 주체 ‧ 동아시아 ‧ 식민지 제도』(소명출판, 2019), 『중역(重譯)한 영웅 –근대전환기 한국의 서구영웅전 수용』(소명출판, 2023) 등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낸 연구서 중에는 최근에 책임 편집을 맡아 출간한 『한국근현대번역문학사론 –세계문학 ‧ 동아시아 ‧ 중역』(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25)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번역과 한국 근현대문학의 관계’에 대한 거의 모든 테마를 망라한 역작으로, 이 분야 전문가 20명이 힘을 합쳤기에 가능한 기획이었습니다. 향후 중점적으로 연구할 주제는 ‘동아시아 번역장’의 시좌(視座)로 ‘대한제국기 잡지의 애국 담론’을 재해석하는 데 있습니다. 이 계획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는 장기 프로젝트이기도 한데요. 총 10년의 연구기간 중 현재 3년 차 연구를 수행 중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동아시아 내부의 장벽인 내셔널리즘을 해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성찰을 제공하게 되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차이를 만드는 역량’입니다. 모든 연구 분야가 마찬가지겠지만 완전히 새로운 연구란 지극히 드뭅니다. 대부분의 논문은 선행연구와의 고투를 거쳐 연구 대상에 대한 차별화된 주장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구성됩니다. 작은 자료 하나를 대할 때도 거기에서 독자적인 시각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무리 대가(大家)의 연구 업적이라도 과감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훈련을 거듭한다면 그 사람은 언젠가 ‘차이를 만드는 역량’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대학원 수업에서 이루어지는 발제와 토론, 학술회의나 세미나에서의 발표 등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공부의 형식들 하나하나가 이 역량을 갖추기 위한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제 경우 박사학위를 받은 후 첫 전임교수가 되기까지 약 10년이 걸렸습니다. 인문학 분야의 특성상 여러 선배나 동료들을 봐도 5년 이상은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을 고려해 두 가지 Tip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지치지 말고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나가시라는 것입니다. 학계는 생각보다 좁고 소문이 빠릅니다. 좋은 연구자는 논문과 저서를 통해 금방 알려지고 인정받기 마련입니다. 이때 독자적인 영역,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사람이 탁월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둘째,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맡든지 그곳을 빛내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몸도 마음도 고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고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테면 새로운 동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한 팀에서 자신이 담당한 역할 이상을 성심껏 감당하다 보면 반드시 주변의 좋은 분들이 그걸 알아주고, 그렇게 형성된 관계는 평생을 가게 될 것입니다. ▲ 학생들과 함께 ■ 유학대학 유학·동양학과 안승우 교수 - 1999년 유학동양학부 입학 - 2017년 박사학위 취득 - 2023년 유학·동양학과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에서 유학 전공으로 학사, 석사, 박사를 졸업하고 지금은 모교인 성균관대 유학대학 조교수로 있는 안승우입니다. 수능을 보고 나서 갑자기 삶이 허무해져 ‘왜 살아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던 고3 겨울방학 때 유학에 관한 책을 읽었는데요. 이 공부를 해보고 싶어 우리 대학 유학동양학과를 선택해 지금까지 쭉 이곳에 있습니다. 삶, 인간, 세상에 대한 성찰을 얻고 싶어서 이 공부를 했는데,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학생들과 이야기 나누고 공부 이야기하는 걸 좋아해서 함께 얘기하고 싶은 것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학생들이나 사람들이 절 보면 맑고 밝다고 하더라고요. 나름 어두웠던 삶의 곡절들이 많았기에 내면은 우울하고 암울한 면도 있지만 이 공부를 한 덕분에 그래도 사람을 만날 때나 삶의 과제를 대할 때 솔직하고 진실하게 마주하는 편인 것 같아요. 2023년 3월에 모교 교수로 부임했고요. 유학의 이야기들을 우리 삶과 현실에 의미 있는 이야기로 푸는 걸 좋아하는 편이어서 타전공 학생분들도 제 수업에 많이 들어오는 편입니다.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서 기회가 된다면 다른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분들과도 많은 대화를 하고 싶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유학이라는 분야는 우리 학교가 국내외에서 가장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유학, 동양철학만을 가르치는 곳은 성균관대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성균관대 유학대학 출신으로 전국 대학 철학과, 윤리교육과, 한문교육과의 교수로 가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봤더니 학부 때부터 유학, 동양철학 관련 세부 전공 주제 과목을 다 들어서 제 전공이 아니어도 교육 현장에서 가르칠 수 있더라고요. 모교에 오기 전에 강릉원주대 철학과 조교수로 부임했었는데 그때 불교 빼고 모든 과목을 강의할 수 있는 제 자신이 신기했어요. 그래도 성대에서 배워서 이렇게 다 가르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뿐만 아니라 성균관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했던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우리 대학 교수님들이 열정적이셔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주해 학생들도 이를 경험할 수 있는데요. 조교, 연구보조원, 연구원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연구계획서 쓰는 법, 프로젝트 운용하는 법, 연구성과를 내는 법들을 익혔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박사학위를 받자마자 연구재단 과제도 여러 번 수주할 수 있었고, 그게 하나의 능력이 됐던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았던 건 저를 독려해 주는 좋은 교수님, 선배, 후배, 교직원 선생님들이 계셨다는 거예요. 연구와 교육실적이 어느 정도 쌓이면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오는데, 그때 마지막으로 중요한 요소가 사람이더라고요. 제대로 된 조언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누군가 저에 대해 물었을 때 긍정적인 평가를 해줄 수 있는 사람, 제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 그런 좋은 분들이 계신 곳이 성대였고 결정적으로 큰 도움이 됐습니다.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 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으로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때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하고 싶었던 것들을 마음껏 했어요. 예전부터 지금까지 성대는 늘 활발하고 생동감 넘치는 곳입니다.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대학로에서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고, 굳이 나가지 않더라도 성대 캠퍼스 분위기 자체가 도전과 시도를 긍정하는 곳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 시절의 엉뚱함, 발랄함, 무모함이 지금의 저에게는 연구적으로 큰 자산입니다. 남들과 다른 생각, 시도를 해보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학부 때 배웠습니다. 학부를 마친 후 석사, 박사를 다니면서 성대에 정말 감사한 건 충분히 공부할 수 있을 만큼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어릴 적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가정형편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어서 대학원을 다닐 때 공부할 수 있는 만큼 버텨보자는 마음이었는데 박사까지 마칠 수 있도록 등록금, 생활비까지 해결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곳이 바로 우리 학교입니다. 많은 지원과 함께 학교 일도 하면서 저와 같이 생계형인 사람이 박사까지 마칠 수 있었다는 건 정말 기적입니다. 또한 유학, 동양철학 분야에서 최고의 대학이면서 우리 학교 자체에 대내외 교류가 많다 보니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학술대회, 세미나, 교수님들의 친분을 통해 국내외 유명 학자분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국내외 모든 교육‧연구적 인프라가 모이는 곳에서 공부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나중에 다른 학교에 가서야 알았죠. 우리 대학의 학문적 특징은 해당 분야의 정통 연구와 함께 최신 트렌드를 익힐 수 있는 연구가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저는 해외에 나가서 공부하지 않았지만, 언어적인 측면 외에는 공부적으로 그렇게 갈증을 느끼진 않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국제경험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좋은 기회가 주어졌던 만큼 박사과정 때는 대만, 중국, 미국 등에 가서 발표 경험도 가질 수 있었어요. 석사를 마친 후에는 바로 박사로 들어오지 않고 중학교 도덕 교사, 시민단체 사무국장 등으로 5년여 동안 사회생활을 했어요. 늦기 전에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생활을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지금은 도움이 됩니다. 시대에 발맞춰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요즘같은 때 저의 추진력과 실행력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학교에서도 이러한 이력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셔서 감사했어요. ▲ (왼쪽) 학부시절 축제 당시 성균관 유생들의 연극인 유희(儒戲) 포스터를 찍기 위해 모인 모습, (오른쪽)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한국유경편찬센터에서 동양신화를 소재로한 교육용 보드게임 개발 당시 성균관대 동문인 보드게임 개발 기업 (주)젬블로컴퍼니 오준원 대표와 함께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 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의 전공분야는 유학, 그 중에서도 주역이에요. 주역은 유교경전 중 하나인데 특히 자연의 원리, 자연의 일부인 인간 삶의 원리를 담은 텍스트라고 여겨졌었기 때문에 과거 동아시아인들은 주역을 읽으면서 이 세상이 어떤 원리에 따라 흘러가는지, 삶과 죽음은 무엇인지, 여러 삶의 국면에서 닥쳐오는 위기와 고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생각했죠. 저는 주로 한국유학자들이 어떻게 주역을 이해했는지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철학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유학이 현대사회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연구하고 있어요. 근래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던 연구는 주역으로 자원순환철학을 재구성해보고 우리 시대에 제대로 된 애도, 추모의 마음가짐과 방식이 무엇인가를 유학을 통해 고민했던 연구였어요. 유학을 연구한다고 하면 분야가 좁고 고루할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살면서 궁금한 거, 요즘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 풀어보고 싶은 사회문제를 유학으로 풀어요. 유학은 늘 새로운 성찰을 가져다주죠. 유학 연구에서는 무엇이든 연구 주제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공부가 재밌습니다. 앞으로 제 전문 연구분야에서 한국근대주역사를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한국 근대 시기에 서양학문이 쏟아져 들어왔을 때 충격과 좌절을 시간을 겪다 유학자로서의 삶을 택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들이 유학 안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제 전공인 주역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또한 현대사회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학의 아젠다를 발굴해서 장기적인 사회운동, 문화운동을 해보고 싶어요. 물론 자원순환철학도 하나의 주제가 될 수 있겠죠. 정말 이거다, 이걸로 사회에 뭔가 해보고 싶다는 확신이 드는 게 생기면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하나의 사회운동이 될 수 있도록 실천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그게 그나마 박사까지 받고 교수까지 될 때까지 사회에서 받았던 혜택을 환원활 길이 아닐까 싶어요.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며, 어떻게 이러한 역량을 기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카데미 안에서 공부한다는 건 자신이 전공하는 전문 분야에서 축적한 지식 위에서, 해당 분야의 문법과 언어, 형식으로 대화하고 글 쓰고 평가받기를 배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문학, 특히 철학을 선택하는 많은 대학원생들의 경우, 자신만의 고집과 생각이 있기 때문에 이 길로 올 수 있죠. 하지만 전문연구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때로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하면서 수용적으로 전문 분야의 틀과 문법, 전문연구자들의 평가와 조언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건 기본이죠. 하지만 그 기본을 익히고 나면 개척자가 될 필요가 있어요. 특히 철학은 정답을 공부하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학문적 상식이라고 여겼던 것들에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질문들이 제가 연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원동력이었어요. 속이 후련해질 때까지 의문점을 파고 들어가고 그것을 학계의 문법에 맞게 글로 풀어가되 자신의 글쓰기 방식을 찾아가고. 끊임없이 학문적 틀을 익히고 여기에 익숙해지면서 다시 이걸 깨 가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워가고. 그런데 또 검증이 필요하니까 학계에 발표해 보고 또 깨지고 또 세우고. 그런 과정을 즐기고 두려워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문분야의 트레이닝에 열심히 임하면서도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후학들에게 우리 학계는 생각보다 매우 너그러워요. 오히려 이런 후학들을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 2024년 유학동양학과 학부 학생들과 경기도 화성 답사. 당시 학과장이셨던 유학동양학과 윤석민 교수님(왼쪽 하단)과 함께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과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팁 부탁드립니다. 나의 한계를 뛰어넘어 본 경험들이 쌓여 남다른 나를 만들어갑니다. 연구자의 길을 택한다는 건 평생 어제의 나를 뛰어넘고, 벅차게 여겨지는 연구주제들을 해결해 가는 여정을 살아가는 길이죠. 그만큼 난관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극복’한다고 생각하기보다 평생 닥쳐올 난관에 ‘익숙해진다’는 좀 더 가벼운 마음을 가지면 어느새 어떤 어려움이든 척척 해결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될거에요. 아울러 우리 곁에 고민을 상담하고 도움을 줄 사람들이 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