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꿈꿔왔던 일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수많은 경험과 도전이 필요하다. 불과 몇 년 전 Meta에서 인턴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최시열 동문은 이후 LG전자와 네이버를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 왔다. 그리고 지금, 그는 다시 Meta로 돌아와 이제는 정식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오랜 시간 동안 꿈꿔 왔던 미래를 직접 실현해 나가고 있다. 꿈꾸던 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가능성을 현실로 증명하기까지 그가 걸어온 여정, 그리고 앞으로 그리고 있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현재 Meta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최시열입니다. 2023년도에 성균관대학교 소프트웨어학과를 졸업하고 LG전자와 네이버클라우드 신입사원을 거쳐 지금 Meta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 LG전자와 네이버클라우드에서 인프라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경험을 쌓으신 뒤 Meta로 이직하셨는데요. 당시 여러 선택지 가운데 Meta를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Move Fast and Break Things”라는 문화가 가장 끌렸던 것 같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빠르게 실행에 옮겨보고,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들로 성장하는 다른 어디에도 없는 개발 문화가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학부 4학년 재학 당시 링크드인을 통해서 구한 Meta 인턴을 하게 되었는데요. 12주 간의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구현하고 40억 명의 유저가 사용하는 실제 환경에 배포해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는 프로젝트 전 과정을 거칠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진 개발 문화를 접한 경험이 메타 정직원으로 복귀하게 만든 주된 요인인 것 같아요. 회사 밥이 맛있고 인턴 때 구해준 숙소가 좋았던 것도 크게 한몫했던 것도 같네요! | 2023년 Meta에서 인턴십을 마치신 후 여러 기업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다시 Meta에 정직원으로 합류하셨는데요. 인턴으로 근무했을 때와 정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업무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역할에서 달라진 점이 있었나요? 정규직 전환과 두 번의 승진을 거쳐 현재는 시니어 개발자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결국 가장 큰 차이는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능력인 것 같습니다. 인턴과 신입으로서 일을 할 때에는 이미 정의된 문제를 요구사항에 맞게 착실히 구현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했지만, 직급이 올라갈수록 ‘어떻게’ 할지보다는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시스템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존재하는 문제 중 꼭 해결이 필요하고 ROI*가 가장 큰 문제를 정의하고, 구현 방식을 설계하고, 동료들과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지보수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좋은 시니어 개발자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ROI(Return on Investment): 투자 대비 수익률로, 투입한 비용이나 자원 대비 얻는 효과를 나타내는 지표. | AI 기반 온라인 학습 플랫폼 개발부터 LG전자와 네이버클라우드에서의 인프라 관련 업무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셨는데요. 여러 기술 분야 중에서도 특히 인프라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사실은 정말 우연한 계기였습니다. 졸업 요건을 채우기 위해 참여한 3학년 여름방학 웅진씽크빅과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에서 네트워크 인프라를 설계하는 부분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컴퓨터과학의 핵심 분야들을 자세히 다루는 분야이며 단순 코딩보다 시스템 설계와 엔지니어링 능력이 더 요구된다는 매력에 빠져 관련 커리어를 쫓게 되었습니다. AI가 쉽게 대체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해서, 이쪽 진로를 택하길 잘했다고 요즘 자주 생각하고 있습니다. | 현재는 Production Engineer로 근무하고 계시는데요.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 있는 직업일 듯합니다. 담당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광고 알고리즘에 사용되는 인공지능이 안정적으로 잘 작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Production Engineering (혹은 Site Reliability Engineering)이라는 개발자의 세부 직무 자체는 시스템 및 플랫폼 운영과 안정성에 초점을 맞춘 직무로, 10억 명 이상의 유저 환경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문제들을 풀어갑니다. 최근에는 대 AI시대를 맞아, AI Agent를 활용해서 업무를 자동화하는 프로젝트 리드를 맡아 조직의 AX (AI Transformation)를 이끌고 있습니다. | Meta처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용자가 이용하는 대규모 서비스를 담당하시면서, 실제 업무 중 ‘이 정도 규모의 사용자를 감당하는 시스템이구나’라고 실감했던 순간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담당하는 서비스에 일시적으로 장애가 발생한 적이 있는데, 초당 수십억 원의 손해가 나오며 피해 범위가 20억 명을 넘어가는 상황이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아찔한 경험이었지만, 체계화된 매뉴얼로 자동 복구되는 시스템, 그리고 패닉에 빠지지 않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엔지니어들과 함께 밤을 지새우며 장애 대응 방식을 배운 경험은 정말 소중했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하고 재발 방지 대책까지 다 같이 모색하는 사후 대응 과정까지 배웠던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버그가 보일 때마다 누군가는 지금 비상이 걸려서 밤을 새우고 있겠구나, 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되기도 했죠. | 성균관대학교 재학 당시 AI 기반 온라인 학습 플랫폼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당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단순히 기술을 구현하는 것과 실제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다고 느끼셨나요? 프로젝트 초반에는 많은 개발자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인 ‘기술적 진보’에만 초점을 맞춰 개발하다 보니 사용자 경험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어요. 실제 결과물을 사용할 웅진 씽크빅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사용자의 관점에서 정말 필요한 게 뭘까?”를 고민하게 되었고, 대대적으로 UI/UX를 중점으로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하여 실제 교육 현장에 사용될 만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코드를 어떻게 짜는지가 아닌, 문제를 파악하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능력이라는 걸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 지난 6월에는 우리 대학에서 “글로벌 IT 전문가와 킹고인의 만남” 강연을 진행하셨습니다. 강연을 통해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꼭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으셨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한창 진로에 대해 고민하느라 괴로웠던 3, 4학년 시기에 “누군가가 옆에서 알려줬더라면 덜 고생하고 고민했을 텐데” 하는 부분들을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게 과연 도움이 될까?” 싶었던 노력도 결국엔 돌고 돌아 나의 자산이 되고, 그게 쌓여 꿈을 이루는 것이란 걸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다양한 진로별 준비 방법을 소개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조/IT 서비스/플랫폼 기업마다 추구하는 인재상이 다르고, 그에 따른 대비 방법이 크게 갈리는데 관련 내용을 후배들에게 정리해 주고 싶었습니다. 위 내용들을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고, 모르고 준비하는 답답함과 불안함을 저도 겪어봤기 때문에 한 명이라도 1시간의 강연 덕분에 미래 목표를 설정하는 데에 도움받는다면 충분히 유익한 시간일 수 있겠다 싶어 많이 준비했던 것 같아요. | 지금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커리어를 확장해 오셨는데요. 현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이루고 싶은 목표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최근에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공학 파트타임 석사를 시작했습니다. 현업에서는 기존에 이미 정립 되어있는 이론들을 구현하고 상용화하는 데에 집중하기에, 리서치 진영으로 진출해서 이론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를 연구하고 싶습니다. 좀 더 기술적인 관점에서는, 지금의 클라우드 기반 대규모 AI를 넘어 앞으로 각 개인에게 맞춰진 초지능 AI가 구현되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산업 현장과 학계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두 분야를 연결하고, 개인화된 AI가 실제로 구현되는 시점을 앞당기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막연히 빅테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약 6년 동안 수많은 좌절과 실패를 겪었습니다. 당장은 안 될 것 같은 목표도 절대 타협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계속 정진해보세요,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 성장한 미래의 자신이 끝내 이뤄줄 거니까요! 여러분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AI로 글도 쓰고, 예술 작품도 그리고, 음악도 작곡하는 시대. 단순히 언어를 넘어 맥락과 문화의 차이에서 생겨나는 미묘한 뉘앙스까지 전달해야 하는 통역은 여전히 사람의 분야다. 그중에서도 국제회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동시통역하는 국제회의통역사는 언어능력은 물론, 배경지식과 순간적인 판단력이 요구되는 전문직이다. 그리고 여기 큰 노력으로 쌓아온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통역을 구사해내는 통역사가 있다. 이번 인물포커스 593호에서는 국제회의통역사이자 대학 강사, 그리고 블로거로 활발히 활동 중인 송민재 동문을 만났다. 현장에 몸 담은 현직자만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을 듣고 싶다면, 이번 인물포커스를 읽어보자.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 11학번 송민재입니다. 현재 국제회의통역사 겸 국제행사 사회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2020년도부터는 중앙대학교에서 대학강사로 임용되어 통번역사 후학을 양성하고 있어요.” ▲ 국회의사당에서 진행된 UN 산하 한국지부 행사 동시통역 스탠바이 모습 | 학부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하셨지만, 이후 국제회의 통역사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통역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각종 글쓰기, 논술 상을 받곤 했습니다. 중학생 때에는 아버지의 직장을 사유로 잠깐 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요. 미국인 친구들과 너무도 값진 학교생활 추억을 쌓던 과정에서 ‘영어를 사용하며 대한민국을 알리는 직업을 갖고 싶다’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도 언어 영역(국어)과 외국어 영역(영어) 모의고사 백분위가 가장 이변 없이 우수했고, 장래 희망이 외교관, 국제변호사, 기자, 통역사 등이었을 정도로 언어를 사용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결국 크게 봤을 때는 청소년기에 염원했던 길을 걷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국제통상학, 그리고 대학원 과정인 전문 통번역학과에서의 배움이 현재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제 원전공이 행정학이라는 것이 통역사라는 직군과 무관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로스쿨과 마찬가지로, 통번역대학원에는 정말로 다양한 학부 전공 출신분들이 진학하게 됩니다. ‘영어영문학 전공을 해야 통번역대학원 진학에 유리한 것 아니냐’라는 발상은 마치 ‘국어국문학 전공을 해야 로스쿨 진학에 유리한 것 아니냐’라는 발상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법조문을 해석하고 판례 공부를 하는 것이 ‘한국어’로 이루어진다고 해서 국어국문학 전공이 필수인 것이 아닌 것처럼요. 통역을 하려면 단순히 한국어와 영어를 잘하는 것을 떠나서 ‘세상의 모든 지식과 학문’을 자연스럽게 옮길 역량을 길러야 하며, 또 그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학부 전공은 통번역 업계에서 ‘본인만의 필살기’ 역할을 해주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간호학과를 졸업해 간호사 면허가 있는 채로 통번역대학원에 진학해 의료 업계 통역을 휩쓴다거나 하는 사례도 실제로 존재합니다. 저는 현업에 있어서는 국제통상학 복수전공 이력이 오히려 원전공보다 더욱 큰 도움이 되고 있기는 한데요. 기업 재무제표 번역, 기업공시 번역, 국내 상장사-외국인 기관 투자자와의 비공개회의 등에서는 상경계 배경지식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출강 중인 중앙대학교에서도 매년 2학기 때 개설되는 제 전담 과목인 ‘글로벌 비즈니스 번역’ 수강생들을 상대로 국제유가, 원자재, 무역, IR 보고서, 기업공시 등을 다룰 때 학부 시절의 배경이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다만 원전공 행정학 또한 통역과 무관하다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행정학은 학제적인 사회과학 학문임과 동시에 조직이론, 인사행정론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경영학 전공과도 상당한 유사점을 지닙니다. 차이점은 경영학은 사익을 추구, 행정학은 공익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덕분에 정치/사회/문화 통역을 하는 데는 행정학도로서의 배경지식이 중추적인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분들의 실무 회의 통역에 투입이 되었을 때는 행정학 배경지식이 정책 관련 통역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상당한 강점이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전문통번역학과에서의 경험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반적인 비즈니스/커뮤니티 통역사는 4년제 학사 학위만 있어도 활동에 지장이 없지만, 전문 통역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국제회의 통역사’ 타이틀을 따려면 반드시 통번역대학원 석사 학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대학원 진학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전문대학원으로서의 통번역대학원에서는 주 5~6일 전공수업을 학기당 약 7~9 과목씩 들으면서 동시통역, 순차 통역, 릴레이 통역, 위스퍼링 통역, 수행 통역, 전문 번역 등 다양한 통번역 스킬을 훈련합니다. 이와 더불어 공강 시간마다 추가적인 통역 스터디를 하며 소위 ‘통역하는 인간병기’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아침 1교시부터 저녁까지 매일매일 전공수업을 듣고, 저녁부터 심야까지는 번역 과제와 시역 훈련(sight translation: 영어 신문을 눈으로 읽으면서 입으로는 한국어를 술술 내뱉고, 한국어 신문을 눈으로 읽으면서 입으로는 영어를 술술 내뱉는 ‘눈으로 통역하는 훈련’) 및 추가 통역 스터디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고, 2년 간의 전문대학원 생활 끝에 엄격한 졸업시험에 통과하면 비로소 국제회의통역사 타이틀을 취득하게 됩니다. | 국제회의 통역사로서 지금까지 통역하셨던 회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현장을 소개해 주세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이유도 함께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방송국 생방송 동시통역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부터 이재명 대통령까지 3대 연속으로 대통령 해외순방 때 국내 방송국에서 생방송을 맡게 된 것이 현재 저의 대표적인 통역 이력이기도 하고요. 스포츠에 빗대자면 월드컵 시즌 때 방송국마다 캐스터/해설자를 각각 섭외하는 것처럼, 대통령 해외순방 생방송 또한 국내 방송국 별로 국제회의 통역사를 2인씩 섭외합니다. ▲ 송민재 통역사가 통역한 회의들 일반적인 국제회의 행사는 몇 주 전에 미리 섭외가 진행되곤 하지만, 대통령급 해외 일정 생방송 통역은 VIP의 동선 및 일정 보안 차원에서 방송국 통역 섭외가 매우 촉박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일반적인 국제행사 통역 대비 배경지식이나 전문용어를 미리 공부할 시간이 매우 부족하고, 국내 방송국 방송실에 앉아 모니터링하는 해외 현지 중계 화면에서 어떤 변수가 일어날지 모르기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섭외가 확정되면 생방송 시작 직전까지 국내외 언론사 최신 보도자료를 다 섭렵하며 벼락치기를 합니다. 또한 국내와 해외 간 시차가 존재하기에, 생체리듬 차원에서도 체력 소모가 큽니다. 통역이 끝나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뇌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실 통역 시간은 1~2시간 남짓이지만 앞뒤 시간을 포함해 36시간 동안 깨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온 국민이 집중하는 바로 그 순간. 내가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TV 생중계로 송출된다는 심적 압박, 그리고 화면에 함께 송출되는 수화 통역사의 손동작 하나하나가 내 통역에 의해 결정된다는 부담감. 방송실에서 느껴지는 이 감정은 그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습니다. 방송국 뉴스 앵커가 오프닝 멘트를 한 뒤, ‘지금부터 OOO 대통령의 현장 발언을 들어보겠습니다!’라는 대사와 함께 TV 화면에 우리나라 대통령, 미국 대통령, 혹은 UN 사무총장의 원샷이 잡히고 내가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할 때. 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제 심장이 박지성의 심장이요, 손흥민의 심장이었습니다. 약 6년 전에 진행했던 도쿄올림픽 내규 번역, 그중에서도 패럴림픽 국가대표 참가 동의서 약관 번역도 기억에 남습니다. 국제 스포츠 행사는 공식 언어가 영어인 만큼, 일본 조직위원회에서 본인들의 일본어 원문을 공식 언어인 영어로 번역해 각국 국가올림픽위원회(NOC) 및 국가패럴림픽위원회(NPC)에 배포했습니다. 이를 각국 위원회가 다시 각자 현지어로 번역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도쿄패럴림픽 국가대표 참가 동의서 약관을 번역할 때 특히나 책임감을 느꼈는데요. 대한민국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수들이 제가 번역한 약관 한글본을 읽고, 그 문서 하단에 서명한 뒤 대회에 출전할 예정이라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도핑테스트 규정, 경기 결과 불복 시 소청 절차, 스포츠 재판 절차, 법적 행위능력이 있는 태극전사뿐 아니라 미성년자/행위무능력자의 부모/후견인 위임대리 서명란 등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대한민국 패럴림픽 국가대표분들이 해석의 오류로 억울한 상황을 겪지 않게끔 노력했습니다. 이후 모든 패럴림픽 태극전사가 제가 번역한 약관에 서명하고 나왔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웅장해졌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스포츠 규정집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쌓게 된 배경지식, 그리고 그 어떠한 신체적 불편함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해 낸 스포츠 정신에 대한 존경심을 느끼게 되었던 그날의 경험은 뒤에서 얘기할 시각장애인마라톤회(VMK) 가이드 러너로 참가하게 된 결정적인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 비전문가의 관점에서 긴 호흡의 회의 내용을 실시간으로 통역해 내는 모습이 매우 대단해 보이는데요. 자연스럽고 매끄러운 통역을 위해 특별히 노력하시거나, 가진 노하우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순차통역을 기준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전문 통역사들은 순차통역을 할 때 기억술 및 노트테이킹 기법을 사용합니다. 통번역대학원에서 순차통역은 최대 6분까지도 훈련을 해냅니다. 즉, 통역 대상인 화자가 6분 동안 끊임없이 발화를 하면, 그 발언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 통역사가 그때부터 6분에 걸쳐 통역을 해내는 것입니다. 단, 6분 동안 말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걸 순전히 암기력으로 외우는 것이 아니라 노트테이킹 기호술이라는 보조 수단을 사용합니다. 영화 ‘인셉션’에 빗대면 마치 통역사가 본인만의 팽이 토템을 여러 개 미리 만들어 두는 준비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통번역대학원 재학 시절 실제로 활용했던 ‘한국어 영어 노트테이킹’ 예시 *노트 해석: […기업, 노조, 사회 구성원들의 협심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전문가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 또한 중요하며, …] 다만 이 같은 기술적인 역량은 국제회의통역사가 갖추어야 할 극히 기본값일 뿐이며, 실제 통역 품질은 배경지식 공부가 더욱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통번역 업계에서는 ‘통역 실력은 30%고, 배경지식이 70%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통역 실력이 부족해도 과락, 배경지식이 부족해도 과락입니다. 사전 배경지식 공부를 철저히 해 내야지만 미리 해당 업계의 전문용어에 대한 기호를 만들고, 본인이 대학원에서 갈고 닦은 노트테이킹 실력을 ‘그저 보조 수단으로서’ 훌륭히 사용해 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 현재 네이버 어학 분야 인플루언서로 선정될 만큼 영향력 있는 블로그를 운영 중이세요.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계기와 2,000편에 가까운 글을 꾸준히 올리며 운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블로그 전성기 시절에 꾸준히 글을 연재할 수 있던 원동력은 순전히 개인적인 기록에 대한 만족감이었습니다. 수년간 별다른 대가나 성과를 바라지 않고 일기장처럼 기록해 오다 보니 결국 ‘무식한 정면 돌파’로 알고리즘이 쌓이고 쌓여 네이버 인플루언서로 선정이 되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요새는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기능이 존재하지만, 그 당시에는 ‘스토리’로 흘려보냈을 시시콜콜한 내용조차도 블로그 소재가 되었기에 2천 편이 넘는 게시물이 쌓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누적 방문객 800만 명 달성 순간 포착 블로그는 학부생 시절에 ‘예륜의 잡동사니’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단순히 추억 보관용으로 시작했습니다. 초중고 학창 시절 한창 즐겨 했던 ‘바람의 나라’ 게임 플레이 스크린샷들이 본가 컴퓨터에 그냥 쌓여 있는 게 아까워서 온라인 세상인 블로그에 기록하기 시작했더니, 알고리즘이 쌓이고 쌓여 점점 많은 네티즌들이 추억을 되새기려 제 블로그를 방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샷 소재가 떨어진 이후에는 영화 리뷰, 영자신문 리뷰, 맛집 탐방 등 주제의 제약 없이 정말 다양한 포스팅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유입량이 늘어났습니다. 통번역대학원 입시생 시절에는 수험 일기를 연재하면서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고, 입학시험 합격 후 통번역대학원생 시절에는 대학원 생활을 연재하면서 입시 수험생분들의 꾸준한 발걸음이 이어졌습니다. 이후에는 ‘영어 어학시험 도장 깨기 시리즈’를 시작해 토익 그랜드슬래머 마스터 인증서 취득(토익 990/990, 토익 스피킹 200/200, 토익 라이팅 200/200), OPI S 등급 취득(오픽 AL보다 3단계 높은 ACTFL 인증시험 최고 등급) 등을 인증하며 시험 공략법 및 후기를 연재하자 영어에 관심 있는 취준생/사회인 분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이같이 여러 어학시험 만점 인증 연재글 덕분에 2021년도에는 네이버 어학 인플루언서에 선정되었습니다. 요즘에는 유튜브, 인스타그램으로 유행이 옮겨가며 블로그는 트래픽이 많이 꺾이기도 했고, 현직자가 된 현재는 ‘통역사 예륜’이라고 블로그명을 변경하며 기존 카테고리들은 상당수 정리하면서 방문객 수는 더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때문에 5년 전에 선정되었던 네이버 인플루언서 타이틀은 ‘과거의 영광’이 되었긴 합니다만, 저에게 있어서는 여전히 학부생, 석사생, 초년생 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소중한 추억 보관소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 블로그 Q&A를 통해 통역사를 꿈꾸는 많은 분과 꾸준히 소통하고 계시는데요. 블로그 운영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이웃과의 일화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언젠가 통번역대학원 입시설명회가 끝나고 나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길에, 같은 엘리베이터에 타 있던 모 수험생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작은 목소리로 ‘블로그 글 잘 보고 있습니다’라고 인사를 주었던 때도 있고, 제가 출강 중인 중앙대학교 3월 신학기 수업 쉬는 시간 때 “통역대학원 입시생 때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라며 소위 ‘팬밍 아웃’을 하는 1학년 제자들이 있을 때마다 민망하면서도 깜짝깜짝 놀라곤 합니다. 혹은 학교 포털 과제 제출란을 통해 ‘제가 사실 입시생 때 고민 상담을 드렸던 닉네임 OOO 이었다’며 인사를 해주는 학생들도 가끔 존재합니다. ▲ 중앙대 1학년 신학기 때 종종 일어나는 해프닝 한편, 학부 모교인 SKKU 카테고리 게시글에 성대 동문님들이 댓글을 달아 주실 때에도 상당히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이를테면 2016년도에는 성균관대학교 수강신청 시스템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개편되며 수많은 학생들이 UI 이용 방법에 상당한 혼란을 겪었습니다. 저는 일종의 사명감을 느껴 신규 수강신청 시스템 공략 강의 영상을 촬영해 공유했습니다. 그 덕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성대생들에게 무수한 감사 인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블로그에 감사 인사를 주었던 수많은 성대 후배님들이 지금쯤은 모두 어엿한 사회인들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신기하면서도 감회가 새롭네요. ▲ FG 출신으로서 불특정 다수의 성대 신입생들에게 수강신청 상담을 해주던 모습 ▲ 수강신청 공략 동영상 게시물에 대한 성대 동문 후배들의 감사 인사 | 블로그에 SKKU 카테고리가 따로 분류되어 있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애정이 깊으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우수 졸업생에게 수여되는 총장상도 받으셨는데요. 학창 시절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후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추천해 주세요. 저는 학부생 시절을 정말 열정 가득하게 보냈는데요. 정말 다채로운 경험을 쌓은 덕분에 참으로 감사하게도 국제품 특품(영어 어학능력), 인성품 특품(봉사활동), 창의품 특품(전국구 공모전 및 국제 대회 수상)을 인정받아 총장 표창장인 ‘성균명품’을 수상했습니다. 2월 졸업식 날 수천 명의 졸업생 중 성균명품 6인(문과 3명, 이과 3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에 ‘대학 생활 참 열심히 했구나’ 하며 뿌듯했던 기억이 있으며, 20대 때의 열정이 30대인 지금까지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잘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FG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지원을 나가던 모습 교내에서는 프레시맨 가이드(FG), 행정학과 학생회, 행정학과 실전 행정 연구반 학회원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 다수의 인원 앞에서 퍼블릭 스피치, 아이디어 회의, 정책 찬반 토론 등을 꾸준히 진행한 경험이 훗날 언어 발화 및 논리력 훈련에 큰 양분이 되었습니다. 원전공과 복수 전공 둘 다를 최대한 국제어(영어) 수업으로 들으며 전공 발표 및 과제/보고서 작성을 모두 영어로 진행했던 경험 또한 대학 수업의 학술적인 내용을 구술 및 서술하는 연습에 큰 양분이 되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국제하계학기(ISS) 조교 활동 당시 단체 사진 국제하계학기(ISS) 조교(TA) 활동 역시 매우 추천하는 교내 활동입니다. 전 세계 유수 대학의 외국인 초빙교수 및 다국적 학생들이 여름 계절학기를 가르치러/들으러 오는데, 이 프로그램의 조교 역할을 하면 짧고 굵게 알찬 교환학생 느낌을 만끽하실 수 있습니다. 계절학기 수업 일과가 끝나고 나서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한 뒤풀이도 값진 추억입니다. 단순히 수다를 떠는 경우도 많았지만, 때로는 외국인 학생들의 각 출신국과 관련된 정치나 외교 이슈에 대해 진지한 토의를 하는 시간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여러 국가 출신 외국인들의 각양각색 억양에 익숙해지는 과정 또한 결과론적으로 훗날 통역사로 일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한국인들이 영어 하면 미국, 영국, 호주 정도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영어 통역사는 정말 다양한 억양을 잘 소화해 낼 줄 알아야 하니까요. 대학 생활 도중 교외 대외활동은 총 21개를 진행했는데요. 저는 20대 시절에 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던 청년임과 동시에 한번 맡은 바는 영혼을 갈아가면서 끝까지 책임지는 성격이었습니다. 당시 열정 과다로 대상포진까지 걸려 가면서 정말 다양한 대외활동을 했는데요. 이를 통해 훗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다’뿐 아니라, ‘어떤 직업은 상상했던 것과 현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 진로 선택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건 지극히 제 개인적인 견해인데, 만약 교내 동아리 활동 2개를 할 여력이 있으면 차라리 교내 동아리 활동 1개, 전국구 대외활동 1개를 하는 것도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시기 바랍니다. 전국구의 각 대학교에서 가장 PR, 마케팅, 스피치 역량이 우수한 학생들과 교류하며 성장해 나갈 수 있고, 교내 활동만 했던 게 우물 안 개구리였다고 느껴질 정도로 가치관이 확장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은 넓고 뛰어난 인재는 많다는 사실에 자연스레 겸손의 미덕을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국제회의 통역사로 활동하는 동시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학생들을 지도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 궁금해요. 통번역대학원 재학생들은 이미 영어 실력으로는 대한민국 최상위권인 분들이 약 1년 단위의 수험생활을 거쳐 입학하는 만큼, 그러한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당연히 쉽지 않습니다. 물론 통대 출강은 영어 수업이 아닌 통번역 수업(이미 한국어와 영어가 일정 수준 이상 완성되어 있음을 전제로 한 전문 통번역 훈련)이기에 단순 외국어 어학 교육과는 수업 방식도, 다루는 텍스트의 종류도 완전히 다르긴 하지만요. 그렇게 선발된 소수의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그 학생들이 한데 모이면 당연히 또다시 상대적으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있고,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을 얻어 가는 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중위권이던 학생이 피땀 어린 노력으로 한 학기 동안 폭풍 성장을 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입니다. 모 중하위권 학생이 학기 중 스스로도 아쉬움을 느꼈는지, 매주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실에 남아서 학습방향에 관련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의 장단점을 기준으로 학습 방향성을 제시해 주고, 대학원생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해 줬습니다. 당장 이번 학기 우수한 학점은 힘들다는 현실에도 전혀 좌절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도 노력해 보겠다고 한 학생이 훗날 2학년으로 올라간 뒤 성적 장학생으로 선발되고 상위권 실력으로 우뚝 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심 정말 뿌듯하고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강단에 서있는 송민재 통역사의 모습 | 국제회의 통역사, 교육자, 파워 블로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만큼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이루고 싶은 개인적인 목표나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으신가요? 대학생 시절에는 교육봉사, 사무봉사 등 지식을 쓰는 위주의 봉사활동을 주로 선호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몸을 쓰는 봉사활동을 선호하고, 또 이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업무적으로 전두엽을 계속해서 사용해야 하다 보니, 몸을 쓰는 봉사활동을 하면 업무 스트레스가 풀리고 정신이 맑아져 선순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올해 1월 첫 주말부터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회(VMK)에서 가이드 러너로서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빛나눔’ 가이드 러너는 시각장애인 러너분들과 가이드 끈인 ‘테더(tether)’로 서로의 손목을 연결한 채로 마라톤 대회를 함께 달리는 활동입니다. 26년도 상반기에는 시각장애인 러너분들과 수백 킬로미터를 함께 달렸고, 이번 하반기에도 빛나눔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 공식대회 가이드러닝 중인 모습 통역사, 국제행사 사회자, 그리고 대학강사로서 일하기 위해서는 ‘언어 발성’이 상당히 중요한데, 업무적으로 길러 둔 발성 역량이 시각장애인 분과의 동반주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가이드 러닝은 공식 대회에서 1시간 내외 혹은 그 이상을 달리면서 시각장애인 동반주자분에게 쉴 새 없이 음성 안내를 해주어야 해서, 함께 달리는 시각장애인 주자보다 심폐지구력과 달리기 역량이 압도적으로 우수해야 합니다. 남산 정기훈련, 트랙 정기훈련 등에서 처음 매칭되는 시각 주자 분마다 저에게 ‘민재 선생님은 목소리가 깔끔해서 들으면서 달리기 너무 편하다’라며 목소리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주실 때마다 너무도 뿌듯하고, 감사한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통역사 역할의 제1 원칙은 절대로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닌, 통역 서비스 대상자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고위급 인사의 발언이 외국인 분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게끔 하되, 통역사의 존재감이 절대로 고위급 인사의 존재감을 덮어서는 안 됩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각장애인 주자와 끈을 연결해 함께 달리며 시각 주자의 안전을 책임지되, 시각장애인 주자를 앞서 달려서도, 가이드 러너 본인의 기록 욕심에 그분들을 앞에서 끌어당겨서도 안 됩니다. 저는 주말마다 통역과 가이드 러닝의 공통점을 몸소 겪으며 다채로운 인생철학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태 수차례동안 10km 종목에 한정해 공식 대회 동반주를 해보았는데요. 올해 하반기 중으로 하프마라톤 공식대회 시각장애인 동반주라는 새로운 한계를 극복하게 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는 개인 하프마라톤 공식대회 기록증도 만들어 뒀습니다. 시각장애인 주자와 함께 10km의 두 배가 넘는 21.097km라는 거리를 함께 달리면 또 얼마나 세상이 넓어 보일지, 어떠한 인생 교훈을 얻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 마지막으로 통역사를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TV 프로그램 시청자들의 우스갯소리 중에서 "드라마는 작가의 지능을 넘을 수 없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통역 업계에서는 “본인이 구사하는 언어 2개 중에서 더 부족한 언어 실력이 본인 통역 실력의 상한선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영어 실력은 원어민이지만 한국어 실력이 매우 어눌한 재미교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우리는 그 재미교포가 한국어 사자성어를 유창하게 이해하고 영어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흔히 통역사라고 하면 외국어 실력만이 중요하다고 착각하기 쉬운데요, 외국어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한국어 실력입니다. 만약 성대 후배님들께서 진심으로 통역사가 되고 싶으시다면, 한국어 신문과 영어 신문을 편식하지 말고 최대한 다독하며 ‘느린 글’에 대한 독해력을 충분히 길러 두시기 바랍니다. 국제회의통역사는 통역 현장에서 두뇌 활용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려 장기 집중력과 순발력 모두를 잡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활자 신문을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 정독을 하는 습관은 통역사가 되기 위한 기초 체력 다지기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세상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편식하지 않고 쌓아두는 것 또한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통역사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이 세상에 무가치한 경험은 결코 없습니다. 하다못해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보는 경험은 훗날 게임회사 통역에 도움이 될지 모르고, 각종 드라마에 푹 빠져보는 경험은 팬미팅 통역 혹은 엔터테인먼트사 협상 통역에 도움이 될지 모릅니다. 통역사는 세상의 끝없는 변화에 바로바로 적응할 줄 알아야 하는 직업임과 동시에, 세상의 끝없는 변화에 따른 불안감을 이겨낼 줄 알아야 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내가 당장 지난달의 중요한 행사를 잘 통역해 냈다고 해서 이번 달의 중요한 행사를 똑같이 잘 통역해 내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통역사는 전성기 시절의 영광에 안주하지 않고 평생을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입니다. 따라서 저는 누군가가 그저 외국어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통역사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께서 변화하는 국제사회의 최전선에서 말을 통해 지구촌을 계속 굴러가게 하는 것이 사명이라 느끼고, 때로는 공공부문 종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때로는 민간부문 종사자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 환경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이를 즐길 수 있는 분들이라면 기회는 열려 있습니다. 혹여나 여러분께서 훗날 한국통번역사협회(KATI) 세미나 혹은 연례행사에 현직자 혹은 통번역대학원 재학생으로 참석해 제게 성대 학부 동문이라고 인사를 주신다면, 저 또한 너무도 반갑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통역사를 꿈꾸는 후배님들의 무운을 빕니다. 감사합니다. 취재: <성균웹진> 김은서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스마트폰부터 인공지능까지, 오늘날 우리의 일상을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인 반도체는 첨단 산업 발전의 중심에 서 있다. 오랜 시간 반도체 산업을 이끌어 온 실리콘 기반 소자가 한계에 직면한 지금, 차세대 반도체 기술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우리 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뒤, 미국 MIT에서 Research Scientist로 연구를 이어오던 김기석 교수는 올해 3월, 교수로서 또 한 번 성균관대학교를 찾게 되었다. 우리 대학에서 쌓은 귀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연구 현장에서 전문성을 키워 온 그의 발걸음, 그리고 이곳에서 이어갈 연구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3월부로 성균관대학교에 조교수로 부임하게 된 김기석입니다. 현재 저는 우리 대학에서 연구실을 이끌며, 플라즈마 나노 공정과 이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반도체 소자 개발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후학 양성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 우리 대학에서 석박사 및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지내신 후, MIT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 가셨는데요. 새로운 환경에서 연구를 이어가기까지 어떤 계기와 과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2년간 재직하면서 더 넓은 세계로 나가 글로벌 연구 역량을 키우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습니다. 해외 박사후 연구원직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심적 어려움과 고민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끈기 있게 준비한 끝에 MIT 박사후 연구원으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MIT에 도착하자마자 예상치 못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몇 달간 연구실이 전면 셧다운 되는 위기도 맞았어요.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던 타지 생활이었지만, 멈추지 않고 차분히 준비하며 묵묵히 정진한 덕분에 결국 가치 있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와 MIT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시면서 체감하신 해외와 국내 연구 환경의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궁금합니다. 해외 저명 기관에서의 연구는 세계적인 석학 및 연구 그룹들과 더 유기적이고 손쉽게 협력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인프라와 제반 연구 시설이 잘 구축되어 있어 새로운 아이디어에 관한 연구 접근성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성균관대학교의 연구 환경과 인프라 역시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에 버금갈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음을 느낍니다. 세계적인 수준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연구 인프라를 갖춘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 쌓은 연구 경험이 해외에서의 연구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성균관대학교 재학 시절, 플라즈마 공정 장비를 직접 다루며 쌓았던 다양한 반도체 공정 실무 경험이 MIT에서의 연구 활동에 있어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어 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MIT 김지환 교수님 연구팀과 협력할 뜻깊은 기회를 얻었고, 2차원 물질의 원자층 식각(ALE) 후 리모트 에피텍시(Remote Epitaxy)를 진행하는 고난도 연구에 영광스럽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구 성과를 시작으로 지속적인 MIT와의 공동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으며, 다양한 반도체 공정을 함께 탐구하여 우수한 결과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반도체 기술은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을 듯합니다. 교수님의 주 연구 분야인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기존 실리콘 기반 반도체 소자가 물리적 미세화의 한계에 다다르면서, 이를 극복할 차세대 2차원 반도체 재료가 세계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습니다. 우리 연구실에서는 이러한 2차원 반도체 재료를 원자층 식각*, 등방성 식각, 극저온 식각 등 첨단 반도체 공정 기술을 활용해 정교하게 제작된 3차원 구조체 위에 성장시키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차세대 3차원 반도체 소자를 개발하는 것이 핵심 목표입니다. *식각: 화학 약품이나 기체를 이용해 금속, 유리, 반도체 웨이퍼 등의 표면을 깎아내어 필요한 모양이나 회로 패턴을 만드는 공정 | 오랜 기간 한 분야를 연구하시면서도 꾸준히 새로운 연구에 도전해 오셨는데, 교수님께서 연구를 이어가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연구 철학이 있으신가요? 연구를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반도체 공정 및 소자가 직면한 난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과 한계를 객관적으로 인지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결과는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뤄낼 수 없어서 우리가 가진 한계는 다양한 기업 및 연구 그룹들과의 열린 협력을 통해 채워야 합니다.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과 시너지를 발휘하며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야말로 뛰어난 연구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지난 2024년에는 성균관대에서 차세대 반도체 연구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셨습니다. 당시 모교 학생들에게 MIT에서의 연구 경험을 공유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또 학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2024년 1월 미국에서 Zoom으로, 그리고 8월에는 성균관대학교를 직접 방문하여 두 차례 세미나를 진행했었습니다. 후배이자 대학원생분들에게 저를 소개하고 연구 성과를 발표할 수 있어 감회가 매우 새로웠습니다. 당시 연구 경험을 나누고자 했던 가장 큰 계기는 학생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진로의 선택 폭을 더 넓게 바라보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생이 국내 기업 취업을 최우선 목표로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 무대로 눈을 돌려 다양한 연구 환경을 경험한다면, 국내외 유수의 대학, 연구소, 글로벌 기업 등 훨씬 다양하고 넓은 기회가 열려 있음을 꼭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후배분들에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 오랜 시간 동안 연구 활동에 집중하시다가, 우리 대학에서 교육 활동 또한 시작하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을까요? 연구자로서의 성과도 중요하지만, 교육자로서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진심으로 배려하고 함께 성장하는 가치를 가장 높게 두고 있습니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학생들이 자신만의 학문적 지평을 넓히고 역량을 갖춘 인재로 자라날 수 있도록 든든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고 싶습니다. 저를 거쳐 간 학생들이 훗날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훌륭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제가 이루고 싶은 가장 큰 목표이자 보람입니다. | 교수님의 연구실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연구실을 꾸려 나가고자 하시나요? 저희 'Advanced Plasma Nano-processing Laboratory'는 다양한 차세대 반도체 재료를 활용하여 혁신적인 3차원 반도체 소자를 구현하는 연구 공간입니다. 이를 위해 플라즈마 기반의 식각, 증착, 도핑 공정 등 반도체 핵심 공정 기술을 깊이 있게 연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축적된 기술들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도전과 발전을 끌어내며, 연구원들이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열린 연구실 환경을 구축해 나갈 계획입니다. ▶ 김기석 교수의 APNL 홈페이지 바로가기 | 마지막으로, 연구자의 길을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우 및 원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끈기 있게 정진한다면 여러분이 꿈꾸는 분야에서 반드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믿고 담대하게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을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K-팝과 K-드라마가 세계를 사로잡은 오늘날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한국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묵묵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문종대 동문 역시 그중 한 명이다. 1973년 미국에 이민한 그는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정착해 30여 년간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무도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전파해 왔다. 현재는 클리블랜드 한인회장으로 활동하며 만국공원 내 한국 공원 조성 사업을 이끌고 있다. 비행기로도 꼬박 14시간이 걸리는 머나먼 클리블랜드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게 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만국공원에 세종대왕 석상과 팔각정 설립을 주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종대왕 석상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곳 클리블랜드 만국공원*에 대략 40개국이 각각 자기 나라를 대표하는 공원들을 조성하는 중인데요. 이미 30개국 이상은 공원을 조성하였으며, 한국은 아직 공원 조성 중입니다. 20여 년 전부터 한인회에서 진행하던 사업이었는데 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자금이 모이지 않아 진행이 지지부진하던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이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덕에 지금은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 시킨 상태입니다. 다가오는 10월 중에 세종대왕 석상이 한국에서 이곳 클리블랜드로 보내질 예정이에요. *클리블랜드 만국 공원 (Cleveland Cultural Gardens): 록펠러 공원 내에 위치하며, 약 2.4km에 이르는 공간에 38개 이상의 민족과 국가별 정원이 조성된 세계 최초의 국제 평화 정원이다. ▲ 각 나라의 위인을 기리는 동상, 기념비가 세워진 모습 (출처=Tripadvisor) | 이번 프로젝트는 세계인들이 자유와 평화를 함께 누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각 나라의 상징적인 공간을 조성하는 취지로 진행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자유와 평화, 그리고 세계 공동체의 가치 등에 관심이 많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피부로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서로 다른 피부, 다른 문화를 가진 상황에서 서로를 존중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깨달았죠. 이 만국 공원은 여러 국가의 상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다른 문화를 잘 보여줍니다. 나아가 서로 다른 문화라도 한 장소에 모이면 얼마나 잘 어울리며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잘 나타내죠. 그런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는 제 평소 가치관과도 매우 밀접한 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 인물과 문화적 상징이 있을 텐데, 특별히 세종대왕 석상과 팔각정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 공원은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조성되었습니다. 공원을 조성하는데 재단이 내세운 조건이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로는 각 나라의 전쟁 영웅은 세울 수 없다는 것이고, 두 번째 조건은 각국의 종교 지도자를 세울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전쟁 영웅이나 종교 지도자를 후보군에 포함한다 해도 한글을 창조하신 세종대왕만큼 훌륭한 분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인회 특별 위원회에 세종대왕 흉상을 설치하는 것을 제안했고, 위원회에서도 찬성하여 세종대왕 흉상을 석상으로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팔각정 설치는 한국만의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선정했으나, 아쉽게도 설치와 관련해 아직 구체적인 진행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록펠러 재단 (Rockefeller Foundation): 미국의 자선 단체이자, 민간 재단으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NGO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 재단 홈페이지 바로가기 ▲ 예상 구현 모습 (출처=KAAGC) ▶ 클리블랜드 한인회 홈페이지 속 한국문화정원 소개 보러 가기 |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이 절대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추진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취임하기 전부터 문제였던 자금 조성이 제일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제가 한인회장이 되고서 자금 조성을 위해서 여러 방법으로 모금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을 만한 금액이 많이 모였습니다. 다만, 프로젝트를 마치기까지는 아직도 자금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오랜 시간 동안 다양한 활동과 도전을 이어오고 계신 점이 정말 인상 깊습니다. 지금까지도 꾸준히 새로운 일에 도전하실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현역에서는 은퇴하였으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후 일에 대한 욕심이 가슴을 뛰게 합니다. 제가 들인 시간과 헌신이 한국을 세계에 조금이라도 더 잘 알릴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이러한 기쁨이 제 원동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이 프로젝트가 많이 진행될 수 있게 이바지한 것과 세종대왕 석상이 모셔진 한국 공원을 통해 한국을 좀 더 잘 알릴 수 있는 것이 기대됩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이루는 과정에서 힘들고 체력적으로 피로도 있었지만, 우리의 글과 얼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성실하고 바르게 끝없는 노력을 하면 각자 원하는 바를 이루고 만사형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력하고 성실하고 바르게 살라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대학 시절에 더 최선을 다해 살 걸'이란 후회가 남을 때도 있지만, 대학 때 만난 선후배와의 관계가 제 인생의 최고 값진 재산의 일부라는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김은서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영화는 타자의 이야기를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 선보여주는 매개체로 이해되곤 하지만, 때로는 타자의 이야기와 감정을 가림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적인 현실의 세계를 다시금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입 밖으로 쉬이 꺼내지지 않는 감정의 틈을 직접적으로 내보이기보다는, 관객이 쉽게 등장인물의 세계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는 연출을 통해 우리는 인물의 내면보다 그들이 놓인 세계 자체를 먼저 마주하게 된다. 진미송 감독(연기예술 16)의 칸 영화제 수상작 <SILENT VOICES(사일런트 보이시스)>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출발하며,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그들이 속한 세계의 결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전 세계 영화학교 학생들의 중·단편 영화를 선정하여 상영하는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 중 하나인 라 시네프 부문에서 진미송 동문은 최근 2등 상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사일런트 보이시스>라는 작품 속에 숨어 있는 그녀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그녀가 나아가고자 하는 삶 속 발자취를 함께 따라가 보자. 안녕하세요, 영화하는 사람 진미송입니다.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와 영어영문학과를 복수전공했고, 지금은 뉴욕에서 대학원 과정을 마무리하는 중입니다. | 칸영화제 라 시네프 부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작품이 칸 영화제에 초대된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사실 수상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심사 위원분들이 작품의 진실성을 봐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했고, 수상을 발표하기 전에 영화와 관련해서 짧게 코멘트를 남겨 주셨는데 제가 영화를 만들며 혼자 간직하고 있었던 의도들을 정확하게 간파하신 것 같아 신기했어요. 같은 라 시네프 부문의 젊은 감독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영화를 보면서도 새로운 에너지와 영감을 얻어 갔습니다. ▲ 진미송 동문(오른쪽에서 두 번째) | 동문님의 작품 ‘사일런트 보이시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제 대학원 졸업 작품인 17분 분량의 단편영화입니다. 뉴욕을 배경으로, 미국에 이민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인 가족 네 명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영화는 각 가족 구성원의 하루를 교차하며 보여주는데, 그 과정에서 일상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작은 무력감의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감성, 극적인 사건, 서사적 변화를 최대한 배제하고 일상에서 ‘타자’로서 살아가는 감각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 칸 영화제 홈페이지 소개 | <사일런트 보이시스>는 단순히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넘어,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담아낸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소속감, 혹은 집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소속감’이나 ‘집’은 명확히 정의될 수 있는 개념이라기보다, 개인의 의지로는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유동적인 상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변 영화인들을 보면 캐리어 한두 개만을 집으로 삼고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러한 직업적인 특성이 있다 보니 주변의 영화하는 친구들과도 자주 고민거리로 나오는 주제입니다. | 17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 네 가족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가장 공들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개개인에게 의미하는 바는 다르지만, 저에게 영화란 인간의 세밀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인간이 아무리 힘든 상황을 겪고 아무리 처참한 감정 속에 놓여 있어도 세상과 사회는 그것에 결코 반응하거나 보상해 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표현하는 데에 더 적합한 매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 작품에서는 사실 가족의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영화는 그들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그리고 그것이 관객에게 쉽게 전달되지 않도록 일부러 거리를 둡니다. 캐릭터들은 침묵으로 상황을 일관하거나, 덤덤하게 외부의 자극들을 받아들이곤 하죠. 이를 구현하기 위해 촬영감독과 함께 이미지 구상을 할 때도 관객이 가족의 주관적 세계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 대학 시절의 경험과 배움이 현재 작품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우리 대학 연기예술학과는 연극, 영화, 연기, 연출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폭넓은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동기 배우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작업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연기 연출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고,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도 특히 기억에 남는 수업들이 있습니다. 윤용아 교수님의 「연기연출」, 진빛남 교수님의 「시나리오 작법」, 그리고 고규흔 교수님의 「영화의 이해」입니다. 당시 미숙했던 저에게 그 수업들이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형성하는 데 좋은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 연기예술과 함께 영어영문학을 공부하셨어요. 인문학적 탐구가 동문님의 사람과 사회에 대한 시선, 그리고 예술을 만드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시에는 어학에 크게 관심이 없었고, 막연하게 영미 시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영어영문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영문학과에서 배웠던 시들은 운율과 형식이라는 견고한 규칙을 따르는 예술처럼 느껴졌어요. 그런데 위대한 시인들은 그 엄격한 제한 내에서도 상징이나 개인적인 감정 표현을 배제하고, 고심해서 선별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 당대 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던지고, 사회와 개인의 비극적인 관계를 표현합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한 시의 특성은 제가 존경하는 영화의 특성이기도 한 것 같아요. 형식적 제한 속에서 시대를 관통하는 간결한 초상을 담아낸 영화는 정말 흔치 않거든요. 또 아직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저 같은 학생으로서는 형식적 제한 속에서 오히려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가치관이 문학에서 가장 크게 얻은 배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는 기술적인 역량 못지않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또한 중요하게 여겨지곤 합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예술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영화는 결국 타인에게 닿으려는 시도, 즉 언어가 해내지 못하는 소통을 시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 바깥의 세상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인문학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영화처럼 공동체로 함께 작업하는 환경에 있다 보면 제 개인적인 역량이 소모되는 느낌이 커요. 혼자서 차분하게 인문학 관련 도서를 읽어보고, 읽은 것에 대해 글을 써보기 위해서는 결국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이 영화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연료가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 칸 영화제에서의 수상 이후 이어질 행보가 기대됩니다. 차기작으로 계획 중인 작품이 있나요? 한국에서 찍고 싶은 장편에 대한 구상을 천천히 시작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이제 막 30대가 되었지만,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한 채 평생 특권층의 보호 아래 살아온 한 여성이 서울 외곽에 있는 할아버지의 별장에 머물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게 될 것 같습니다. |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형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단편에서 장편으로 작업의 무대가 넓어지는 만큼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으신 것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단편경쟁 선정작을 발표하면서 심사 위원분들이 쓰신 심사평이 있는데,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고 개인적으로는 단편 영화에만 국한된 이야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관객이나 영화 관계자들의 취향을 의식하거나, 너무나도 익숙한 영화의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관습적인 사고와 사회가 만들어온 의미를 해체하고,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이미지들이 담긴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장편은 단편보다 더 많은 관객에게 도달할 수 있는 포맷인 만큼, 한국 영화에서 아직 충분히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형식의 영화를 만드는 데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심사평 바로가기 | 마지막으로, 영화감독을 꿈꾸는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수업에서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이 맞는 동료끼리 함께 여러 작품을 만들어 보고, 또 서로의 영화나 시나리오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면서 함께 천천히 성장하는 것이 큰 자산이 될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인간 본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예리한 시선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안에만 머무르기보다는 사회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태도, 타인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기억한다"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오는 6월 19일 개막하는 청소년극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가 우리에게 묻는 말이다. 이 공연은 재난과 참사 이후에도 기억과 애도를 이어가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특히 이번 작품의 원작 소설가를 비롯해 프로듀서, 배우, 디자이너 등에 성균관대학교 예술대학 출신 동문 5명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해 온 이들이 한 작품으로 다시 모여 만들어가는 기억의 이야기에 대해 김남현 프로듀서, 윤희지 배우, 임민재 디자이너를 만나 들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공연예술 분야에서 독립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김남현입니다.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연출전공을 졸업했고, 현재는 대학원에서 극장경영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청소년극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를 준비하며, 8월에 열리는 독립예술축제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에서도 일하고 있습니다. ▲ 김남현 프로듀서 *그는 과거 성균웹진 '문화읽기'에서 공연 기획에 대해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다. >과거 김남현 프로듀서 인터뷰 기사 보러 가기 | 청소년극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청소년극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17학번, 이로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참사 이후에도 기억과 애도를 이어가고자 하는 청소년 활동가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 이후, 우리는 “기억할게.”라는 말과 “이제 지겹다.”라는 말 사이에 놓여 있는 것 같습니다. ‘잊힐 수 없는 것들’마저 너무 빠르게 잊히는 사회라는 생각도 들고요. 이 작품은 단순히 기억하자는 선언에 머무르지 않으려 합니다. 세계를 맨 먼저, 빠르게 느끼는 청소년의 언어를 통해 재난과 참사의 시간을 통과해 온 청소년들,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살아온 우리가 모두 극장에 잠시 머무르고 기억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공연 소개- 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연서와 혜민, 호정은 끝을 알 수 없는 하수도 입구 앞에 선다. 망설임도 잠시, 셋은 잊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기 위해 끝없는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딘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속에서, 연서, 혜민, 호정은 지나온 시간과 잊고 있던 기억의 파편들을 마주한다. 함께 비를 피했던 우산, 기억을 약속하며 만들었던 추모 게시판, 추모제 준비단의 비밀이었던 미술실 열쇠, 사라지는 순간들을 붙잡으려 했던 캠코더, 세상을 똑바로 쏘아보던 그 아이가 들고 있던 서명 운동 종이 그리고, 새까만 어둠 아래에서 지상을 올려다보며,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무언가를 그리워하던 ‘그 아이’. 연서, 혜민, 호정은 ‘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해 내고, 함께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우리 비 오던 날 하천 다리 위에서 얘기했던 거 기억나...? 누구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상기시켜 주기로 했잖아. 우리가 처음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 ▲ 원작 소설(출처=문학동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컨셉 사진 | 공연단체 '크리에이티브 윤슬'은 주로 세상과의 갈등을 통한 청소년의 성장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청소년을 중심에 둔 이야기인데요. 많은 이야기 가운데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재난과 참사가 계속해서 반복되는데, 우리가 그것을 ‘소화’하는 속도는 너무 빨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를 비롯해 이번 작업에 참여하는 많은 창작진이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청소년이었습니다. 그 거대한 슬픔 안에는, 제가 그때까지 배워온 세상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분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마주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도 재난과 참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고, 우리를 비롯한 세계 사람들이 그것을 대하는 시간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억’과 ‘애도’는 단순히 말한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에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해요. 누군가에게는 평생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것을 말하는 것조차 식상하다거나 이제 그만하자고 이야기하는 사회 안에서,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기억과 애도에 대해 끊임없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또 하나 중요했던 점은 이 작품이 청소년 활동가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청소년기를 떠올려보아도, 또 지금의 청소년들을 바라보아도 청소년은 누구보다 먼저 세계를 감각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이해하고자 하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당시 많은 청소년이 무엇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몰랐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까지 기억과 애도의 자리를 어른들의 것으로만 여겨온 것은 아닐지 생각했어요. 청소년이 있어야 할 곳은 광장이 아니라 교실이라는 듯, 그 자리를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내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소년기를 다룬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합니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에는 계속해서 기억하고자 하는 청소년과,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 잊고자 하는 청소년이 함께 등장합니다. 그 지점이 이 작품을 다른 청소년 이야기들과 구별되게 만드는 특별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설과 연극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 다른 매체인 만큼, 원작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공연을 기획하며 원작의 정서와 메시지 가운데 특히 놓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반대로 무대라는 형식에 맞춰 새롭게 해석하거나 변화를 준 부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원작을 무대화하며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원작의 언어였습니다. 소설의 텍스트와 무대 위에서 발화되는 희곡의 텍스트는 분명 다르지만, 그 차이 속에서도 끝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작가 고유의 언어와 그 질감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대로 지키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각색 과정에서도 많은 고민이 있었어요. 다만 연극은 소설과 달리, 실재하는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매체입니다. 저는 연극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지점이 바로 그 특정한 시간 감각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튜브나 OTT를 통해 우리는 콘텐츠를 어떤 속도로, 어떤 방식으로 소비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모든 시간의 중심은 ‘나’에게 맞춰지기도 합니다. 반면 연극은 빨리 감을 수도, 다시 볼 수도 없습니다. 오늘의 공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죠. 그 불편함이야말로 연극의 중요한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시간을 관객이 자기 몸으로 함께 통과하는 경험은, 극장이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 직접 답사를 나가는 리서치 과정 ▲ 리서치 과정 크리에이티브 윤슬은 이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시간’을 만나고자 노력했어요. 참사가 발생한 지역에 가서 그 공간을 몸으로 받아들이는 시간, 활동가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알아가는 시간, 원작을 읽고 작가와 만나 소설 속 텍스트를 우리의 언어로 옮기고자 했던 시간, 그리고 연습실에서 계속 수다를 떨며 잠시라도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려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무대라는 형식에 맞추어 원작과 달라진 부분은 분명 많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이 모든 시간을 몸에 담은 배우들이 관객과 직접 만난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의 언어와 창작진들에게 쌓인 모든 시간이 배우의 몸을 통과하고, 관객과 같은 공간 안에 놓이는 것. 그것이 연극으로 옮겨지며 생겨난 가장 중요한 변화인 것 같아요. | 이번 작품에는 성균관대 예술대학 출신 창작자들이 여러 분야에서 참여하고 있는데요. 학교를 졸업한 뒤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던 여러 동문이 한 작품으로 다시 모이게 된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한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공통점이 작업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작업으로 다시 모일 수 있었던 바탕에는 결국 서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아 작가는 대학에 다닐 때 <김민수(학부졸업생)>라는 작품으로 등단했고, 저는 동기로서 계속 이로아 작가의 글을 읽어왔습니다. 마침, 제가 청소년극을 하는 단체와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오고 있었기 때문에,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를 크리에이티브 윤슬의 연출에게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재난과 참사를 경험한 ‘참사 세대’로서, 기억과 애도를 이어가고자 하는 청소년이 등장하는 이 소설이 극장에서 실재하는 몸으로 관객들과 만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공연되기 시작했습니다. 윤희지 배우는 대학 시절부터 연극을 정말 사랑하는 친구이자 배우였습니다. 지치지 않고 무대에 오를 때 누구보다 눈을 빛내는 사람이었어요. 졸업 이후에도 윤희지 배우의 연극을 계속 보고 있었고, 이번 작업에 함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크리에이티브 윤슬 연출과 함께 윤희지 배우의 공연을 보러 갔고, 공연이 끝난 뒤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을 거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임민재 디자이너와는 2022년에 예술대학 학생회를 함께 했어요. 저는 당시 연기예술학과 회장이었고, 임민재 디자이너는 예술대학 부회장이었어요. 대학 때부터 민재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사회 미학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었고, 언젠가 기획자로서 꼭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2024년에 처음 작업을 제안했고, 그 이후로는 제 공연 포스터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래픽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같이한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이제는 서로의 시선을 믿는 단계까지 온 것 같습니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것과 작업자로 만나는 것은 분명 다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배우가 필요해서 같은 학교 출신 배우와 함께하고, 그래픽디자인이 필요해서 동문 디자이너와 함께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중요한 것은 서로서로 계속 지켜보고 응원해 왔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쌓여온 시간이 함께 작업으로 만났을 때, 과정과 결과물에 분명히 반영되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 공연 제작과 기획 분야를 꿈꾸는 연기예술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조언이라기보다는, 제가 요즘 기획자로서 만나고 있는 놀라움들을 공유하고 싶어요. 저 또한 어떤 정해진 길이 있어서 그 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기획자에게는 각자가 온전히 몸을 던져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계속 기획자로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큰 동기 중 하나는 ‘궁금함’입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이야기와 세계를 궁금해하고, 말해지지 않은 존재와 세계를 발견하는 일이요.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언제나 타자를 상상하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획자는 자기 것만 기획하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세계를 연결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요즘이에요. 나만의 예술적 언어가 아니라, 다른 이의 예술적 언어와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응시하다 보면, 자신이 기꺼이 사랑할 수 있는 세계가 찾아올 것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 세계에 먼저 몸을 던진 사람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른 이가 이후에 들어올 길을 닦는 것이라기보다 제가 먼저 들어간 곳의 지도를 그리는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그려가는 지도가 서로 만났을 때, 우리의 예술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낯설지만 조금 더 새롭고 놀라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작년 11월에 APP Camp에 참여하기 위해 대만 가오슝과 오키나와에 다녀왔는데요. 아시아 프로듀서 플랫폼(Asian Producers’ Platform, APP)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연예술 프로듀서들이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는 우정 기반의 수평적 네트워크예요. 저는 그곳에서 여러 지역의 프로듀서들과 함께 리서치하고 대화하며, 각자의 작업과 지역적 맥락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경험했습니다. 그 시간은 기획자로서의 작업과 태도에 많은 변화를 불러왔어요. 서로 다른 지역과 맥락에서 온 프로듀서들이 만나고, 대만과 오키나와의 사회정치적·역사적 맥락이 문화예술 안에서 어떻게 반영되는지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었거든요. 캠프가 끝난 이후에도 그 관계가 각자의 현장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며, 기획이란 결국 하나의 공연을 만드는 일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를 연결하고 확장하는 일이라는 감각이 더 분명해졌어요. ▲ APP 단체 사진 > 2025 APP Camp Korea Fundraising 기록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낸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얽히게 되는 것 같아요. 당장 무언가를 함께 만들지 않더라도, 그 만남 이후 우리가 느끼는 세계는 이전과 분명히 달라져 버리니까요. 요즘은 바로 그 지점이 기획자라는 일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아닐지 생각하고 있어요. 이어서 공연에서 배우로서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윤희지(연기예술학과 21) 동문을 만나 보았다. | 배우님이 맡은 호정이란 인물은 어떤 인물이고, 배우님께서는 이 인물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치셨나요? 또한 호정을 연기하며 가장 공감했던 지점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호정은 참사의 기억을 기록하려는 강한 의지를 지닌 인물입니다. 또한 자기 주관을 끝까지 밀고 나가려는 고집도 있고요. 하지만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행동이 오히려 친구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변화를 겪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친구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고 관계를 회복하며 호정은 한 걸음 더 성장해 가는 인물입니다. 저는 그 지점이 가장 크게 공감됐던 것 같아요. 서툰 마음, 그리고 끝까지 기억하려는 의지요. 호정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제 청소년 시절도 떠올랐어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솔직함으로 친구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상처받기도 했던 순간들이요. 지금 돌아보면 웃으며 넘길 수 있는 기억들이지만, 그때는 누구보다 뜨겁게 울고, 싸우고, 또 화해했던 것 같아요.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 맡겨진 일을 씩씩하게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역시 호정을 통해 많이 공감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저는 이 청소년 시기만이 가진 힘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정직함, 계산하지 않고 온 마음으로 아파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서로에게 손을 내미는 행동력 같은 것들이요. 저는 그것이 청소년만이 가진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인물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 위해, 단순히 청소년의 말투나 행동을 재연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호정이 왜 그런 말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행동하는지, 그 내면의 동기를 더 선명하게 다듬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연습 과정에서 청소년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참 좁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실제로 주변의 청소년들을 만나보면 저보다 훨씬 성숙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아요. 그래서 연습 과정에서는 지금 이 상황에서 호정은 무엇을 원할까, 어떤 말을 하고 싶을까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고, 무엇보다 상대 인물의 말을 잘 듣고 진심으로 반응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좌) 호정 역 프로필 사진 / (우) 공연 중인 윤희지 배우 | 직접 무대에 오르는 배우의 입장에서,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요? 관객들이 꼭 주목해서 봐주었으면 하는 부분이나 대사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은 창작진과 배우들 사이의 궁합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 속 인물들은 쉽게 닿지 않을 것 같던 서로의 손을 맞잡고, 끝내 다정하게 서로를 마주 보게 됩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연기할 때마다 인물과 저의 경계 어딘가에 서 있는 기분이 들어요. 결국 진심이 담겨 있어야만 관객의 마음에도 닿을 수 있다고 믿거든요. 사실 꼭 주목해서 봐주셨으면 하는 장면이나 대사는 정말 많아요. 그래서 제가 특정 장면과 대사를 꼽기보다는, 극장에 와주신 관객분들께서 공연을 온전히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각자 마음에 오래 남는 장면이나 문장이 있다면, 공연이 끝난 뒤 함께 나눠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 공연 컨셉포토 | 배우를 꿈꾸는 연기예술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조언보다는 지금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를 준비하며 느끼는 점을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청소년 문학을 좋아했습니다. 제 감정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던 시기에, 이 장르가 제 마음을 대신 들여다봐 주는 것 같았거든요. 이처럼 청소년극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위로이자,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장이 되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재학 중에 위기철 작가님의 소설 <아홉살 인생>에서 기종 역할로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공연이 무산되면서, 관객을 만나지 못한 채 작업을 마쳐야 했어요. 그때 아쉬움이 정말 컸는데, 이렇게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연습하며 예전 청소년 시절의 저를 떠올리곤 하는데,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학교에서 보낸 시간으로부터 얻은 것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간이 언젠가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어줄 거라고 믿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작품 속 재선의 대사 중 "누구 한 사람이 지치면 다른 사람이 상기시켜 주기로 하자. 우리가 처음에 어떤 마음이었는지를."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앞으로 저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 되었습니다. 아직 채워가야 할 것이 많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앞으로도 더 많이 배워나가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시각적으로 풍성한 공연을 만들고 있는 임민재(디자인학과 17) 디자이너를 만났다.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그래픽디자이너 임민재입니다. 현재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에서 근무하며 브랜딩, 전시 비주얼 아이덴티티, 인쇄물 디자인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가고 있습니다. | 이번 작품의 포스터 디자인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으며, 작품의 메시지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담아내고자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포스터를 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작품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와 메시지를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터는 작품을 설명하는 역할도 있지만, 관객이 작품을 경험하기 전 처음 마주하는 인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소에는 강한 이미지를 주로 창작하는 데에 비해 이번에는 시각적으로 강한 표현을 만드는 것보다 작품이 가진 정서와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이미지와 타이포그래피, 색감 등을 통해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디자이너의 자아보다는 공연의 질감이 더 먼저 드러나기를 원했어요. ▲ 임민재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포스터 | 디자인학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디자이너는 새로운 것을 만들고 자신만의 시각을 제안하는 창작자이지만, 동시에 프로젝트의 목적과 맥락을 이해하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클라이언트의 이야기, 전시의 주제, 브랜드의 가치가 더 잘 보일 수 있도록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학생 때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분야와 사람들을 경험하며 상황에 맞게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함께 기를 수 있다면 너무 좋겠습니다. 청소년극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오는 6월 19일부터 25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평일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 3시·7시, 일요일 오후 3시에 공연된다. 기억과 애도의 의미를 청소년의 시선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은 관객들에게 서로의 시간을 돌아보고 함께 기억하는 경험을 선사할 예정이다. 기말고사를 마친 후 친구나 가족과 함께 공연장을 찾아 그 의미를 직접 느껴보길 권한다. 취재: <성균웹진> 김은서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생명의 실행자라고도 불리는 단백질의 구조를 이해하는 일은 곧 생명의 퍼즐을 푸는 과정과도 같다. 오랫동안 수많은 과학자의 실험과 연구 대상이 되어 왔던 이 문제는 이제 AI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인간의 언어를 학습하던 AI는 이제 단백질이라는 생명의 언어까지 해독하며 생명과학 연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밀롯 미르디타 교수가 서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아 2025 HCR (Highly Cited Researcher)로 선정된 그는 단백질 구조 예측 도구 ‘ColabFold’ 개발에 참여하며 생명의 작동 원리를 밝히는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지난 3월, 우리 대학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해 새로운 연구와 교육을 이어 나가고자 하는 그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의학과 교수로 부임하게 된 밀롯 미르디타 교수입니다. 현재 우리 대학에서 생물정보학과 머신러닝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 생물정보학뿐만 아니라 머신러닝과 컴퓨터과학 분야 또한 연구하셨는데요, 생물정보학을 연구하기로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 제 관심사는 프로그래밍 분야에 더 가까웠고, 생물학은 한동안 프로그래밍을 하기 위한 핑계 같은 존재였습니다. 물론 이제는 생물학 자체가 더 흥미로운 부분이 되긴 했지만요. 생물학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만든 소프트웨어가 실제로 사용되는 걸 보면서 점점 생물학이라는 분야 그 자체에 자연스러운 흥미가 생기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에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면, 이제는 ‘목적을 가지고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해졌고, 이제는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독일과 한국에서 모두 연구를 진행하셨는데요, 두 연구 환경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나 차이점이 있나요? 독일의 연구 환경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막스플랑크 연구소 같은 기관이나 오래된 대학들의 연구 환경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막스플랑크에서 큰 장점이라고 느꼈던 점은 바로 글로벌한 환경이었습니다. 다양한 문화권 출신의 학생들과 교수진을 계속 접할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한국의 연구 환경도 정말 좋아합니다. 굉장히 역동적이고, 좋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독일은 흔히 말하는 관료주의적인 면이 실제로 존재하거든요. 그런 점에서는 한국이 훨씬 앞서 있다고 느낍니다. 또 한국은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도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동안 이스라엘과 함께 1인당 R&D 투자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요. 그런 점들 때문에 한국은 연구하기에 매우 좋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수준이 정말 뛰어납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연구를 진행했을 당시에 제가 있었던 마틴 교수님의 연구실도 굉장히 훌륭한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저도 이제 비슷한 수준의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 계속해서 한국에서, 특히 우리 대학에서 연구를 이어 나가기로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한국의 연구 환경만이 갖고 있는 강점에서 큰 메리트를 느꼈습니다. 훌륭한 학생들도 정말 많고, 연구비 지원 시스템도 꽤 좋은 편이라고 여겨집니다. 비교적 관료적인 다른 나라들의 시스템과 비교하면 한국의 제도는 훨씬 효율적인 편이기도 하고, 전반적인 접근성 또한 뛰어납니다. 마침, 옆 연구실에 계신 김경규 교수님이 직접 연락을 주셔서 성균관대학교에서 연구를 이어 가게 되었습니다. 캠퍼스도 아름답고, 제 연구를 해 나가기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습니다. ▲ 스타이네거 연구실 재직 당시 모습 | 생물정보학이라는 분야는 비전공자들에게 다소 생소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듯한데요, 간단하게 교수님의 연구 분야에 관해 설명해 주세요. 제 연구의 핵심적인 관심사는 단백질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단백질 자체뿐만 아니라, 단백질의 기능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조작해서 인류 건강을 개선할 수 있는지도 연구합니다. 단백질 연구 분야는 인공지능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알고리즘을 이용해 단백질을 분석하고 비교하면 아주 먼 진화의 과거까지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타임머신 같은 거죠. 모든 생명체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단백질을 통해서 그 연결성을 아주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 년 전의 공통 조상까지도 단백질 구조나 서열에서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형태나 유전체는 훨씬 빨리 달라지지만, 단백질은 굉장히 오래된 흔적까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생물정보학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최근 2025 HCR (Highly Cited Researcher)*로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셨습니다. 교수님의 연구가 이렇게 널리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희 연구와 소프트웨어가 좋은 반응을 얻은 이유는 무엇보다 “사용하기 쉽게 만드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연구용 소프트웨어는 학생 한 명이 그것을 서버에 올려 둔 후, 그가 졸업하고 나면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다른 학생이 다시 그것을 실행하려고 몇 주간 씨름하다가 결국 실패하는 경우가 빈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와 마틴 교수님은 소프트웨어를 장기적으로 유지 및 관리하고 사람들의 문의에도 꾸준히 답변함으로써 사람들이 이 연구를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런 장기적인 노력이 이 연구의 영향력을 가능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 2025 HCR 주목받는 또 다른 연구로는 ColabFold*가 있는데요, 사실 ColabFold는 적절한 시기에 알맞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달성할 수 있었던 성과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이미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 기본 인프라를 어느 정도 구축해 둔 상태였는데, AlphaFold*가 이렇게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 한 연구자가 Google Colab 환경에서 AlphaFold를 실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리 팀이 기존에 갖고 있던 기술을 이와 연결하면 훨씬 더 유용한 도구를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며칠간 집중적으로 작업해 첫 버전을 공개했고, DeepMind가 일반 사용자용 코드를 정식 공개하기 직전에 ColabFold를 먼저 배포할 수 있었습니다. ▲ ColabFold 로고 이후 ColabFold는 빠르게 확산하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현재도 단백질 구조 예측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서열을 입력하고 실행 버튼만 누르면 몇 분 안에 구조 예측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지금도 하루에 약 6만~8만 건의 요청이 들어올 정도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이는 다른 주요 서버들과 비교해도 매우 큰 규모입니다. *HCR(Highly Cited Researcher): 클래리베이트(Clarivate)가 발표하는 세계 상위 피인용 연구자 선정으로, 각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연구 영향력을 인정받은 연구자에게 주어진다. *ColabFold: 구글의 클라우드 기반 코딩 환경인 Google Colab을 통해 단백질 3차원 구조 예측 AI인 '알파폴드(AlphaFold)'를 웹 브라우저에서 쉽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게 만든 플랫폼 *AlphaFold: 구글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모델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기술 | 교수님이 개발하신 ColabFold, FoldSeek 같은 도구들은 대부분 오픈소스 형태로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히 이러한 방식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저는 오픈소스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제 연구 대부분은 공공 자금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연구 결과 역시 다시 대중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오픈소스 도구는 무엇보다도 접근성이 뛰어납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 소프트웨어를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를 제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코드가 공개되면 다른 사람들이 도구의 유효성을 검증할 수 있고, 제 허락 없이도 자유롭게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게 됩니다. 제가 연구 방향을 통제하지 않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창조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 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소프트웨어가 가능한 한 널리 활용되길 바랍니다. | 이런 소프트웨어와 연구 도구의 개발을 통해 지향하고자 하시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개발한 도구들을 이용해 사람들이 멋진 연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를 돕는 연구를 하고, 새로운 치료제를 개발하고, 생명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생명공학적으로 가치 있는 효소가 발견되는 등 다양한 연구에 이바지할 수 있는 도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연구자들의 삶이 조금 더 편해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프로그램 설치에 관한 문제로 며칠씩 고생하지 않고, 바로 연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 생물정보학은 인공지능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학문 분야 중 하나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AI 도구들이 이후 단백질 구조 예측이나 학문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아무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학회에서나 주변 연구자들과 이 이야기를 많이 하곤 합니다. 원래 구조 생물정보학 분야는 그렇게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었어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 구조 연구 분야를 떠나 유전체학으로 가야 하나?”를 고민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단백질 언어 모델과 AlphaFold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단백질 구조 예측 자체가 하나의 가설이 되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훨씬 효율적으로 실험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도 가능했던 일이지만, 이제는 훨씬 더 야심 찬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죠. LLM은 더 복잡한 문제입니다. 코드를 작성하는 데는 굉장히 강력한 도구이지만, 여전히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앞으로 새로운 연구자들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코딩 프로젝트나 논문을 직접 읽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전문성이 길러졌는데, AI는 그 숙련의 과정을 어느 정도 없애 버립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깊은 숙련도를 쌓게 될지는 아직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AI는 분명 강력한 도구이고, 저 역시 학생들이 그것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자 합니다. | 지난 3월, 우리 학교 의학과 교수로 부임하셨습니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또는 연구자로서 이루고자 하시는 목표가 있으신가요? 우선은 좋은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자유롭게 연구하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또한, 계속해서 성공적인 연구를 이어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제 연구실에서 나오는 자원들이 널리 사용되고, 더 나아가 인류 전체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장기적으로는 단백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것이 인간이나 다른 생물체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를 밝혀서 실제 삶을 개선하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실은 어떤 공간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연구실을 끌어 나가실 계획인가요? 이제 막 연구실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참인데요, 현재 세 명의 학생과 함께 프로젝트를 천천히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주로 생물학적 분석을 위한 도구 및 방법론 개발에 관한 연구로 잘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제 연구실에서 비슷한 연구 방향을 이어갈 계획입니다. 또한 이제는 제가 의과대학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새로운 기회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직 막 시작한 단계이기는 하지만, 병원들과 협력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안에도 흥미로운 데이터가 정말 많고, 이러한 데이터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니까요. 현재는 바이러스 관련 신약 개발 프로젝트나, 시스템생물학과 구조생물학을 더 긴밀하게 연결하려는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입니다. 결국 제 목표는 연구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도움이 되며, 영향력 있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생물학과 의생명과학 연구를 더 빠르게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 미르디타 랩 홈페이지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I의 발전으로 우리는 지금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굉장히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어떤 분야에서든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취미가 되었든 연구가 되었든, 여러분이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결국 여러분을 더 나은 인간이자 연구자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대학 학생들이 계속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관심사를 따라가고, 연구자이자 좋은 인간으로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균형 잡힌 사람이라면 어떤 시대에서든 성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고, 자신의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추고 있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밝게 비추던 조명이 암전되고 무대의 막이 오르는 순간,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의 지평이 열린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노래, 그리고 배우들의 움직임은 관객들을 순식간에 그 세계 속으로 이끈다. 이처럼 현실과는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뮤지컬은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이야기로서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이야기 속 인물에게 숨결을 불어 넣는 뮤지컬 배우들이 서 있다. 백종민 동문은 우리 학교라는 무대에서의 커튼콜을 뒤로하고,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서 또 다른 막을 올리고 있다. 예술의 숨결과 맞닿아 있는 대학로에서 보냈던 그의 학교 생활, 그리고 이제는 무대 위에서 펼쳐 내는 이야기를 함께 따라가 보자. 안녕하세요. 이번에 성균관대학교 학사를 갓 수료하고, 현재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백종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 우리 대학 연기예술학과를 수료하고 이제는 뮤지컬 배우로서의 첫발을 내딛고 계시는데요. 뮤지컬 배우를 꿈꾸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저는 원래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문득 축제 무대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갑작스럽게 담임 선생님께 ‘노래 한 곡만 축제 때 해도 되겠냐’라고 여쭈어보아 무대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정말 신기하게도, 한 친구가 축제 무대를 보고서는 저에게 혹시 청소년 뮤지컬 극단에 같이 가 보지 않겠냐고 했던 기억이 나는데요. 극단에 들어가면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꿈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 뮤지컬 배우라는 꿈에 우리 대학 근처에 있는 대학로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궁금합니다. 동문님께 대학로란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인가요? 사실 막상 학교에 다닐 당시에는 대학로가 학교 근처에 있다는 것의 장점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몇 분만 걸어서 내려가면 바로 공연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이 나면 공연 몇 편 정도를 본 후 집에 가는 게 저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공연장이 이렇게 학교 근처에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었음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멀리서 공연장을 찾아 주시는 관객분들은 소중한 시간을 짬짬이 내서 와 주시는 거니까요. 결국 우리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많았다는 것이 뮤지컬 배우를 준비하던 저에게 큰 이점이 되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 학교 공식 홍보대사 에스엔젤로 활동하셨다고 들었는데, 에스엔젤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추억이나 일화가 있을까요? 군 복무를 끝낸 후에 에스엔젤에 입부하게 된 케이스여서 사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 대다수였습니다. 고맙게도 동생들이 저에게 먼저 다가와 준 덕분에 많이 친해질 수 있었는데요. 이렇게 삼삼오오 친해진 친구끼리 제주도나 가평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는 등의 좋은 추억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다 같이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을 때, 원래 4박 5일로 예정되어 있던 여행이 너무나 즐거워서 기간을 연장해 총 6박 7일 정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 에스엔젤뿐만 아니라, 축제 MC를 맡기도 하시는 등 다양한 교내 활동에 참여하셨어요. 이러한 활동들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원래 자존감이 높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활동들에 과감하게 지원해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러한 도전을 통해서 새로운 것들에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경험’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입니다. 무엇이든지 직접 경험해 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고, 그러한 경험이 이후 또 다른 도전에 나설 수 있는 발판이 되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축제 MC는 정말 많은 학우분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일이잖아요. 저도 사실 무대에 올라갈 당시에는 굉장히 떨렸었는데, 그런 경험이 오디션을 볼 때나, 공연을 할 때와 같이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할 때 더욱 자신감 있는 태도로 임할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 재학 당시의 경험 중에서 뮤지컬 배우로서의 활동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특이하게도 저는 에스엔젤 활동이 뮤지컬 배우라는 꿈으로 나아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나왔던 예술고등학교에서는 주변 친구들의 대다수가 연기 전공이었기 때문에 일상적인 대화 주제도 주로 연기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엔젤이라는 학생 단체에 들어와 보니 정말 다양한 전공의 친구들이 있었고, 그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어떤 공부를 하고 있고,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제 시야도 많이 넓어지면서, 뮤지컬 공연을 준비하며 새로운 캐릭터를 맡아 배역을 연구할 때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의 폭이 넓어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학교생활과 공연 활동을 병행하시면서 두 영역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대학로 근처에 학교가 있다는 점이 정말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뮤지컬 공연 자체도 대학로에서 진행되고, 공연 전 연습 또한 대학로 근처의 연습실에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연 측과 일정을 조율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고, 수업이 모두 끝나고 연습에 참여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 공연 또한 안정적으로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에서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대학로로 삶의 무대를 넓혀 가고 계십니다. 현재 출연 중이신 작품 ‘홍련’과 극 중에서 맡은 배역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뮤지컬 ‘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 장화홍련전을 모티브로 한 작품인데요. 억울하게 죽은 홍련의 원혼을 풀어내기 위한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극입니다. 홍련, 바리, 강림, 월직차사, 일직차사, 총 5명의 등장인물이 극을 이끌어 가는데요. 저는 그 안에서 월직차사 역을 맡고 있습니다. 홍련의 원혼을 보살펴 주고, 홍련의 죄가 씻김을 받을 수 있도록 홍련을 이끌어 주는 역할입니다. | 공연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자신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세요. 홍련이라는 극이 갖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총 5명의 배역 모두가 극이 진행되는 90분 내내 무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그 안에서 월직차사와 일직차사가 홍련을 재판하면서도 보살펴 주고, 홍련의 대사에 계속해서 반응해 주는 대사들을 보는 재미가 있는 극입니다. 그런 면에서 관객분들이 제가 맡은 배역, 그리고 저라는 배우의 매력을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현재 다양한 무대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자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다양한 배역을 맡아 넓은 폭의 연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저라는 배우가 관객분들의 기억에 남으려면 저만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계속 그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저는 ‘잔향이 좋고 오래 남는 배우가 되자’라는 배우로서의 신념을 갖고 있는데요. 잔향이 좋고 오래 남는 향수를 사람들이 많이 찾곤 하는 것처럼 저 또한 공연을 보고 난 후, 관객분들의 뇌리에 남아 계속 생각나고 더 찾아보고 싶은 배우가 되고자 합니다. |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대학생 때는 무엇이든지 도전해 봐도 좋은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언가를 도전해 보는 것에 망설임이 들곤 할 때, 일단 해 보고 싶은 것을 쫓아가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런 도전과 경험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주었던 것 같습니다. 많은 경험을 해 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나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성균관대학교 학우분들도 해 보고 싶은 것들에 도전해 보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스프링클러가 화재 현장에서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해 초기 화재를 진압하는 데에는 효과적이지만, 연기와 유독가스 제거에는 한계가 있다. 이번 585호 인물포커스는 기존 스프링클러의 단점을 보완하여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는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 개발한 김정규 대표를 소개하려 한다. 그는 1987년 성균관대학교 유학과에 입학 후 의료기기 회사에 근무하다가 관련 회사를 창업하고, 나아가 소방 회사인 SP&E를 설립한 기업가이다. 5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기존에 없던 개념의 스프링클러를 완성했고, 소방 회사의 전문성을 높이고자 교정으로 돌아와 올해 2월 성균관대학교에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의료기기 영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가, 어떻게 소방 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게 되었을까. 의료기기부터 소방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긍정적 영향력을 선사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생명을 구하는 기술을 연구하는 김정규 대표입니다. | 대표님의 회사에서 제연 스프링클러를 최초로 개발했다고 들었어요. 성균웹진 독자들에게 해당 제품을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불이 나면 대부분은 연기와 유독가스로 사망합니다. 그런데 기존 스프링클러는 물을 분사하여 화재를 진압하는 기능에 집중되어 있을 뿐, 효과적으로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제연 스프링클러는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저희 기술은 자연의 원리를 응용한 무동력, 무전원, 자흡식 구조입니다. 유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압력이 낮아지고, 압력은 높은 압력에서 낮은 압력으로 흐르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러한 간단한 과학 원리를 제품에 적용했습니다. 저희 스프링클러 헤드에는 실린더가 있어서 실린더 가운데로 소방수 물이 빠른 속도로 쏟아지면 실린더 안쪽은 소방수 물의 빠른 속도로 인해서 압력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높은 압력의 실린더 외부의 연기와 유독가스가 실린더 내부로 흡입되어 물과 함께 혼입되며 희석, 용해, 흡착되어 감소하는 기술입니다. 기존 스프링클러는 단순히 물을 분사하는 방법이지만, 저희 제품은 소방수 물 분사와 동시에 별도의 전원이나 추가 장치 없이, 연기와 유독가스를 흡입해 제거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 연기 유독가스를 훨씬 빠르게 제거할 수 있습니다. 물이 나가는 그 순간 연기 제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구조입니다. 원리는 단순했지만, 이 단순한 원리를 실제 제품으로 구현하는 데는 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 제연 스프링클러 헤드 최근 소방법 강화로 스프링클러 설치가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의 약 20%만이 스프링클러를 갖추고 있어, 화재 취약 시설에선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고층 건물의 증가와 도심 지하화의 가속, 전기자동차 보급, 노후 건축물의 확대로 인해 화재 위험은 커지고 있어요. 우리 기술은 단순한 화재 진압을 넘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 원래 의료기기 사업에 종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비교적 다른 분야인 스프링클러 개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료기기와 스프링클러가 궁극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료기기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저는 심혈관이 좁아졌을 때 삽입하는 스텐트를 제조하는 미국 회사에 다니다가 의료기기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그때 코로나가 터졌어요. 2주 동안 강제적으로 집에만 있으면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안 되겠다 싶어서 코로나 관련 제품을 판매해 보려고 했습니다. 무작정 마스크 공장이나 진단 키트 공장에 찾아다니며, 30만 장의 마스크를 미국으로 수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던 중 한 선배님이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개발한 분이 총판대리점을 찾고 있다며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병원에 실내 공기 살균 장치를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해 당연히 관심이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개발자를 만났는데, 실내 공기 살균 장치의 원천 기술이 스프링클러 기술과 같다며 예상치 못한 스프링클러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평생 의료기기만 해오던 저는 예의상 5분 정도만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지만, 기술이 워낙 흥미로워서 3시간이 넘게 해당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 정도로 해당 아이템이 너무 매력적이고 직관적으로 다가왔어요. 특허 양도를 요청하는 것이 결례라고 생각하면서도, 특허 양도가 가능한지 여쭤봤고 그렇게 해당 기술을 양도받게 되었습니다. 스프링클러 기술을 가져온 게 2020년 7월쯤이었는데, 의료기기 회사가 ‘왜 소방 사업을 하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이에 2021년 3월에 스프링클러 사업을 별도로 운영하기 위해 SP&E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세계 최고 소방대학인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WPI, 이하 우스터대학)과 업무 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성과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동탄 연구소에서 첫 실험을 성공한 2020년 9월 추석 연휴 동안 5년, 10년의 중장기 사업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때 저의 최종 목표는 글로벌 소방 클러스터 단지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제품을 모아놓은 단지가 아니라, 제품 연구개발, AI 등 융복합 기술을 통한 다양한 제품 양산, 국제 연구소, 글로벌 인증 센터, 교육기관, 정부 지원까지 아우르는 종합적인 클러스터를 구상했습니다. 이 계획을 부사장에게 공유하면서 소방 분야에서 가장 우수한 대학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어요. 부사장은 우스터대학을 포함한 여러 대학을 추천했지만, 제가 택한 우스터대학은 너무 최상위권 대학이라 회신이 안 올 것 같으니 차순위 대학을 컨택해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우리 기술이 최고라고 확신했고, 이에 “뉴욕 출장길에 당신 대학에 방문해서 연기 유독가스 제거 스프링클러 헤드로 논의를 해봤으면 하는데 어떠냐”라고 무작정 우스터대학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학장님으로부터 만나자는 답장을 직접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코로나가 성행하던 시기라 바로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메일로 비밀 유지 협약(NDA)과 MOU를 체결했고, 몇 개월 후 우스터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성과의 비결은 역시 기술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학장님이 저희 기술을 보자마자 굉장히 혁신적이고 글로벌 소방 시장을 선도할 기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국내 관공서나 건설사를 방문할 때 도움이 되도록 저희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긴 추천서를 보내주시기도 했어요. 이후 머니투데이 키 플랫폼 메인 행사장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그 발표장에 학장님을 초대하여 축사를 듣기도 했습니다. ▲ (왼쪽부터)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박사후 연구원, 우스터 폴리테크닉대학 학장, 김정규 대표 ▲ 머니투데이 글로벌 콘퍼런스 ‘2023 키 플랫폼’에서 강연 중인 김정규 대표 | 성균관대학교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에 진학해 올해 2월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실제 제품 개발에 도움을 준 수업 내용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특정 소방 기술만을 다루는 커리큘럼이라기보다, 화재를 포함한 재난을 바라보는 공학적 사고 체계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제품 설계 하나를 만들어주는 수업이기보다는, 제가 개발한 기술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언어와 방법을 갖추게 해준 과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체역학(CFD)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연구원들의 인프라와 지원은 국가 과제를 수행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연기 거동, 유동 변화 등을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고, 기술의 원리를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공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윤홍식 지도교수님의 소개로 만난 방재시험연구원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실증 기반의 연구 과정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는 기술의 신뢰성과 사업성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 교수님께서 건설사, 설계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직접 논의할 기회를 마련해 주신 점이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실제 설계, 적용이 가능한 수준까지 기술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방재안전공학협동과정은 단순한 학위 취득을 넘어, 저희 기술이 공학적 검증을 통해 소방산업 적용으로 나아가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 윤홍식 지도교수의 연구실 첫 방문 소방 관련 사업의 레퍼런스를 만들고자 뛰어든 공부였지만, 회사 일과 병행하려다 보니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박사과정을 거치며,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 올해 2월 박사 졸업식 |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일인 만큼 제품 개발 과정에서도 심혈을 기울이셨을 것 같아요. 제품 개발 과정에서 마주한 난관과 이를 해결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우리 회사의 기술은 글로벌 원천 기술입니다. 원천 기술이란 전 세계적으로 경쟁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의미하며, 이는 큰 자부심이기도 해요. 하지만, 모든 연구개발이 저희가 처음으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기에 전 세계 어디에도 제품의 표준이나 기준이 없었어요. 그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특허 기술을 가지고 제품을 개발해서 일반 시장에 상용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신제품인 만큼 기준이 없어 모든 과정을 오로지 저희가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자금, 인력, 네트워킹, 과학적 검증 등 모든 부분이 난관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대표이기에 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러나, 의식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겨내고 나면 힘듦이라는 건 없어지기 마련이니까요. 그런 셀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계속해 성과를 내고 있다는 게 참 뿌듯합니다. ▲ 각종 대회에서의 수상 모습 | 그러한 많은 난관을 딛고 만들어진 스프링클러가 경주 성동시장, 양양 종합 여객터미널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되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해 그때 운전하며 많이 울었습니다. 첫 설치 장소가 경주 성동시장이었거든요. 현장에 있던 직원이 첫 번째 헤드 설치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었는데, 지금도 이 사진만 보면 그간의 개발 과정이 떠올라 울컥합니다. 저는 신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기쁨은 찰나, 고난은 마라톤 같다”라고 표현합니다. 마라톤 경기를 보면 죽을 듯이 달리다가 잠깐 급수대를 지나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달려 나가게 되는데, 그 짧은 순간의 목축임이 이후 완주까지 큰 힘이 되는 것처럼요. 저 역시 그와 같은 순간적인 기쁨을 원동력 삼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결국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스프링클러 첫 설치 장면 | 학부와 박사 과정을 모두 성균관대학교에서 마치신 만큼 학교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 좌우명이 '후회하지 말자'라는 것입니다. 후회란 그 순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뜻이니까요. 후회가 많을수록 지난 시간을 허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그 좌우명대로 살아왔기에 남들보다 수배는 부지런히 움직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좌우명의 뿌리가 사실 제 전공인 유학에 있었습니다. 중용(中庸) 첫 장에 나오는 신독(愼獨) 즉, 누가 보지 않는 혼자만의 순간에도 자신을 삼간다는 가르침입니다. 후회 없는 삶이란 결국 남이 볼 때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학창 시절엔 그 의미를 깊이 새기지 못했지만, 사업을 하면서 어떤 경영서보다 그 한 단어가 먼저 떠오를 때가 많았습니다. 나태해 지려 할 때, 현실과 타협하려 할 때,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때마다 신독이 저를 붙들어 줬습니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 학업만큼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정작 그 좋은 가르침을 배우던 시절엔 공부보다 야구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으니까요. 입학과 동시에 가입한 킹고야구반이 제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당시엔 서클이라 불렸는데, 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이 절정일 때 그야말로 명실상부한 운동권이었죠. 선후배 간 기강도 엄격하고 분위기도 살벌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소중한 추억입니다. 야구에 진심으로 미친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고, 지금도 매년 두 차례 OB·YB 전으로 세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창립 50주년이라 하니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 킹고 야구반의 과거와 현재 학생 시절 공부를 소홀히 하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 그 격차가 크게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저는 사회에 나와서 학장 시절 부족했던 영어 실력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결과, 원하던 미국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남들보다 조금 늦게 공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지금 학교에 다니는 후배들에게 오늘 20대의 시간이 뼈저리게 소중하기에 알차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편, 학업적인 아쉬움과는 별개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선물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군 전역 후 복학하여 지금은 유학대학 학장이 된 절친한 친구 김동민 교수와 점심을 마치고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요. 점심시간이라 수많은 학생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분주히 오가는 그 순간, 갑자기 온 세상이 정지되더니 오직 한 학생만이 움직이며 계단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학생이 계단을 올라 제 앞으로 다가오던 그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렷합니다. "선배님, 안녕하세요!" 하고 제 친구에게 밝게 인사를 건네던 저희 과 후배였던 그 학생은, 이후 연애 시절까지 포함해 어느덧 32년을 함께한, 제 삶에서 가장 현명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바로 제 아내가 되었습니다. 공부를 딱히 열심히 했던 것도, 내세울 만한 활동이 있었던 것도 아닌 학창 시절이었지만, 그 벤치에서의 한순간만으로도 제 대학 생활은 충분히 빛나고 의미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같았던 그 만남이 제 인생이 되었네요. ▲ 김정규 대표와 아내의 과거, 현재 모습 | 제품의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실 만큼 큰 열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습니다. 이처럼 대표님께서 계속해서 도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는 그 원동력이 ‘의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더 이상 할 수 없겠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신기하게도 다시 나아갈 기회가 생깁니다. 누군가가 투자해 주거나, 발표도 하고 제품이 알려져서 인지도가 생기는 순간들처럼요. 그럴 때마다 마치 ‘야! 이 일은 네가 해야 해’라고 하늘에서 점지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생기면 항상 해결 방법부터 찾으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상황이라도, 그것을 또 다른 기회로 받아들이면 자신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성향이 제가 멈추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신입사원 중 임원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초기에는 대부분의 사람이 노력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느 순간 타협하고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인생에서 마주하는 모든 계단을 하나하나 끝까지 올라가 보려는 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본인이 원하는 곳까지 다다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연구실과 방재시험연구원에서 연구와 실화재 실험 중인 연구원 | 대표님의 꿈이 궁금합니다. 현재 준비 중인 또 다른 사업 아이템이나 분야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10년 전쯤 영업 관련 서적을 6권 정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간접 경험에 머무르다 보니 생생하게 와닿지 않는 아쉬움이 있었어요. 이러한 아쉬움을 해소하고자 현장에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틈나는 대로 집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지금도 계속 쓰고 있고요, 아마 훗날 사업적 성과까지 담은 책 한 권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짐작합니다. 또 다른 꿈은 사업적으로 성공을 이루고 그 수익을 의미 있는 곳에 사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조손 가정, 자립 준비 청년, 소방 유가족을 위해 재단도 설립하고 싶어요. 감명 깊게 본 드라마 제목을 빌려서 재단 이름도 ‘나의 아저씨’로 정했습니다. 다만, 사업적인 꿈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꿈을 물어보신 거라면 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항상 일에 집중하며 일에 대한 꿈은 많은데, 제 개인적 꿈에 대해서는 답변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동안 일이 우선이어서 그랬지 싶습니다. 앞으로 제 꿈을 찾아보는 시간도 가지고 싶어요. | 마지막으로 또 다른 도전의 기로에 서 있는 성균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후회 없이 사세요. 매 순간 자신에게 솔직하게 최선을 다했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후회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큼 최선을 다해 보세요. 세네카는 "우리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도 31년 비즈니스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불편한 일, 귀찮은 일, 재미없는 일을 이겨낼 때 결국 성과가 됩니다. 사람들이 나중에 가장 크게 후회하는 건 실패한 도전이 아니라,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것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오늘은 다시 오지 않습니다. 틀려도 되고, 돌아와도 됩니다. 다만 한 발을 내딛는 것만큼은 미루지 마세요. 넘어지는 것이 실패가 아니라, 일어서기를 포기하는 것이 실패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가능성에 진심을 쏟아주세요. 남이 알아주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이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흔들릴 때, 《중용》의 말을 떠올려 보시길 바랍니다.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숨겨진 곳일수록 더 잘 드러나고, 작은 것일수록 더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 있을 때를 삼간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순간이, 결국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냅니다. 혼자인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결국 멀리 갑니다. 머뭇거리는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흐릅니다. 사랑도, 공부도, 운동도 무엇이든 지금 바로 시작하세요. 취재: <성균웹진> 김은서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성균관대학교는 우수한 교육-연구(Research and Education, R&E) 체계를 바탕으로 학문적 연속성과 성장 가능성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성균웹진> 585호에서는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 과정을 모두 마치고 올해 3월, 우리 학교로 돌아온 신임 교원 김종욱, 남주현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들의 연구 여정을 통해 예비 대학원생, 교원 임용을 희망하는 대학원생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속적 학문 성장 사례와 조언을 제시한다. ■ 공과대학 화학공학부 김종욱 교수 - 2015년 화학공학부 학사 졸업 - 2022년 화학공학과 박사 졸업 - 2026년 화학공학부 조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올해 3월부터 성균관대학교 화학공학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종욱입니다. 반갑습니다. ‘삼성학술정보관’과 ‘기숙사 신관’이 처음 문을 연 2009년, 성균관대학교 공학계열에 입학해 화학공학부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모두 마치고 2022년 2월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약 3년 6개월간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반도체 소재 및 공정을 활용한 바이오 광전자 소자 개발과 시스템 확장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이렇게 성균관대학교에서 오랜 시간 배우고 공부한 후에 다시 모교로 돌아와 교수로서 후배 학생들과 함께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고 감회가 새롭습니다. 앞으로 학생들과 함께 화학공학 기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소재, 소자를 개발하여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현재 제가 수행하고 있는 연구는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공학 연구’입니다.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분야라도 깊이 들여다보고 연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새로운 연구 방향이 열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는 제가 화학공학부에서 소재, 반응, 열역학, 열 및 물질전달, 반도체 및 화학공정 등 다양한 학문을 접하며 융합적 사고를 기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성균관대의 학생 연구활동 지원사업(장학금, 펠로우십, 해외 방문연구 등), 우수한 연구장비 인프라, 높은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연구 환경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해 실제 연구로 확장하고 직접 검증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또한 예전 학부 수업에서 공학과 과학의 의미, 그리고 공학도로서 어떠한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글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요. 지금 돌아보면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엔지니어’로서의 마인드를 길러주고자 하셨던 것 같습니다. ▲ 2015년 일리노이주립대학교 로저스 교수 연구실 방문학생 당시 김종욱 교수(왼쪽에서 두 번째)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화학공학부 김태일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부연구생으로 처음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학위 과정 동안에는 미국 일리노이주립 대학교와 노스웨스턴 대학교, 중국 HUST, 독일 BASF 등 해외 대학과 기업을 방문해 연구 수행, 컨퍼런스 참석, 국제 인턴십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어요. 이러한 경험들은 제가 학문과 연구를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아카데미아(Academia)의 길을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또한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글로벌 박사 펠로우십’ 과제를 5년간 수행하면서 다양한 연구자들과 교류할 기회를 가졌고, 이러한 경험 역시 박사후 연구원을 지원하는 큰 동기와 자극이 되었습니다. 이후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연구를 이어가던 중 모교의 임용 공고를 접했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 2018년 석박통합과정 당시 김태일 교수의 다기능 유연소자 연구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는 반도체 공정을 기반으로 기능성 소재와 전자소자를 개발하고, 이를 에너지 변환 장치와 바이오전자소자 등에 활용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마이크로·나노 계층구조체 제작이 가능한 리소그래피 기술에 관한 연구로, Adv. Funct. Mater. (2017)에 게재되었습니다. 제 첫 연구 논문이기도 한 이 연구는 이후 반도체 공정 기술과의 통합을 통해 다양한 후속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심혈관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멀티센싱 소자에 관한 연구로, Nat. Biomed. Eng. (2023)에 게재되었습니다. 밀리미터 스케일의 소형화된 실리콘 박막 센서를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여 혈류, 혈압, 온도를 동시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했는데요. 이 과정에서 실리콘 마이크로/나노 박막을 다루는 반도체 공정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할 수 있었으며, 이는 포토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 다양한 실리콘 반도체 소자 개발에 필요한 기반 기술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희 연구실은 소재-공정-소자 개발 및 시스템 확장연구를 통해 에너지, 바이오, 환경 등 폭넓은 응용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 박사후 연구원 시절 성균관대학교 다기능 유연소자 연구실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역량을 기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실험 결과를 구체적으로 데이터화하고 이를 꾸준히 정리해 두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사진을 남기고, 실험 내용을 기록하고, PPT 등의 형태로 정리, 저장해두면 훗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이터의 축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시간을 절약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결과를 ‘이전 진행 내용–현재 결과–향후 계획’의 흐름으로 정리하면 교수님이나 연구실 동료들과 공유가 훨씬 수월해지고, 다음 단계에 대한 논의도 보다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Tip이 있다면요? 학기 시작 직전에는 한 학기 동안 이루고 싶은 목표들, 예를 들어 전화 영어 수강, 국제학회 참석, 논문 제출 등과 함께 일주일 정도의 휴가 계획도 미리 세웠던 것 같습니다. 실험실에 있다 보면 하루가 정말 짧게 느껴지고, 한 달, 두 달이 훌쩍 지나가곤 합니다. 따라서 충분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미리 세워둔 휴가 계획을 하나의 동기부여로 삼아 연구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내 세미나나 학회에 기회가 있다면 자주 참석해 다양한 연구 결과를 보고 듣고 참고하면서 이를 자신의 연구에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노스웨스턴대학교 박사후 연구원 당시 Bioelectronics lab module 수업 ■ 의과대학 의학과 남주현 교수 - 1997년 유전공학과 입학 - 2006년 의과대학 생리학전공 박사학위 취득 - 2026년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교수 부임 | 교수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 재직 중인 남주현입니다. 저는 1997년 성균관대학교 유전공학과에 입학하여 학부를 마친 뒤, 같은 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의무를 마쳤고,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2년간 연구조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 후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16년간(2010~2025) 학생들을 가르치며 연구를 이어갔고, 2022년부터 2023년까지는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하버드 의과대학 신경과에서 Research Associate로 활동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 부임해 이온통로 표적치료 연구실(Ion Channel Therapeutics Laboratory)을 이끌고 있습니다. 제 연구를 한 문장으로 설명하자면, ‘우리 몸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통로라는 단백질을 표적으로, 아토피·알레르기비염과 같은 알레르기 질환, 만성 통증·가려움증을 치료할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병이 생기는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이해하고 치료 후보물질을 발굴한 뒤, 동물실험을 거쳐 실제 임상시험 승인(IND)을 받기까지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에서의 수학 경험이 현재의 커리어에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성균관대에서의 시간은 크게 두 단계로 제 연구의 토대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먼저 유전공학과 학부 과정은 연구자로서의 뿌리가 된 시간이었습니다. 분자생물학, 생화학, 세포생물학 등 생명과학의 핵심 기초를 다지면서, 생명 현상을 분자 수준에서 바라보는 눈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의과대학 생리학교실 대학원 과정은 그 시야를 한층 넓혀준 시간이었습니다. 생리학은 세포 하나의 작동 원리를 넘어, 우리 몸 전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를 다루는 학문입니다. 덕분에 세포 수준의 미시적 관점과 인체 시스템 전체를 아우르는 거시적 관점을 함께 갖출 수 있었고, 지금도 연구할 때 가장 큰 강점이 되고 있습니다. ▲ 2002년 대학원 시절 또 한 가지 결정적인 경험은, 당시 지도 교수님께서 임상 교수님들과 공동연구를 활발히 진행하셨는데, 그 과정에서였습니다. 기초 연구자들은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면 흔히 '이 물질이 얼마나 강하게 타깃에 작용하는가(potency)'를 가장 중요하게 봅니다. 그런데 실제로 환자에게 쓰일 약이 되려면, 그보다 먼저 '부작용은 없는가(독성, toxicity)'와 '실제 치료 효과가 있는가(효능, efficacy)'를 따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경험은 기초 연구와 실제 신약개발 사이의 간극을 일찍부터 인식하게 해 주었고, 이후 제가 임상시험 승인까지 아우르는 전주기 연구를 지향하게 된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모교로 돌아온 지금, 그 시절의 경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 2008년, 박사후연구원 시절 이온통로연구회 포스터 발표 | 학부에서부터 박사 후 연구활동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모교의 교수로 임용이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 커리어 경로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기초에서 치료로(From Basic Science to Therapy)’입니다. 성균관대 유전공학과를 졸업한 후, 단과대학을 옮겨 의과대학 생리학교실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이온통로 전기생리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온통로란 세포막에 존재하는 단백질로, 세포 안팎의 이온 흐름을 조절하여 신경 신호 전달, 근육 수축, 면역 반응 등 우리 몸 전반에 걸쳐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흔히 심장이나 뇌의 전기적 활동을 조절하는 단백질로만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훨씬 광범위하게 작용합니다. 면역세포에서는 칼슘 채널을 통해 염증 반응을 조절하고, 췌장에서는 인슐린 분비를 제어하며, 종양세포의 증식과 전이에도 깊이 관여합니다. 이처럼 비슷한 일을 하는 작은 단백질들이 신경계 질환은 물론 당뇨병 같은 내분비 질환, 알레르기, 만성 통증 등 수많은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저를 이 분야로 이끌었습니다. 박사학위 취득 후 서울대·연세대 의과대학을 거쳐 동국대학교 의과대학에 임용되었고, 16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이온통로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 개발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ORAI1, ANO1 등 이온통로를 표적으로 하는 아토피피부염·알레르기비염 치료 후보물질에 대해 IND(임상시험계획) 승인을 다수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 2010년, 연세대학교 연구조교수 시절 연구를 이어가면서 한 가지 벽에 부딪혔습니다. 만성 통증이나 가려움증처럼 신경계가 깊이 관여하는 난치성 질환은, 기존 약물로는 근본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때 눈을 돌린 것이 유전자치료였습니다. 문제가 되는 신경의 유전자 발현 자체를 조절할 수 있다면, 약물로는 닿지 못했던 영역까지 치료 가능성을 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수로 재직 중이던 2022년, 연구휴직을 신청하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 MGH 신경과에서 Research Associate로 2년간 근무하며, AAV(아데노 연관 바이러스, Adeno-Associated Virus)를 이용해 이온통로를 타깃으로 하는 유전자치료 개발 연구를 배우고, 새로운 연구 기반을 닦았습니다. 16년간 교수로 지내다 전혀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연구자로서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습니다. 오랜 교수 생활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학생 시절의 막막함과 어려움을 잊게 되는데요. 다시 배우는 자리로 돌아가면서 박사 및 박사후 과정생들이 겪는 고충을 몸소 느꼈고, 학생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 부임했습니다. 학부생 시절 처음 배움을 시작했던 바로 이곳에서, 이제는 다음 세대 연구자들과 함께 연구를 이어간다는 사실이 매우 뜻깊습니다. | 교수님의 연구 분야와 대표논문,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희 연구실의 핵심 목표는 한마디로 ‘이온통로 타깃 신약 개발을 위한 전임상 플랫폼 구축’입니다. 알레르기 질환, 만성 통증, 피부노화, 종양까지, 얼핏 서로 달라 보이는 이 질환들의 공통점은 모두 이온통로의 기능 이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저희 연구실은 이 연결고리를 파고들어, 기초 연구에서 출발해 실제 임상시험 승인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신약 하나가 탄생하기까지는 여러 단계의 연구가 순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요. 먼저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분자 수준에서 밝히는 기전 연구를 수행하고, 그다음 어떤 이온통로가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지 타깃을 발굴해야 합니다. 표적이 정해지면 약물이 단백질의 어느 부위에 결합하는지 약물 결합부위를 규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후보물질을 빠르게 추려냅니다. 마지막으로 최종 선발된 후보물질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작용기전(MOA)을 분석하는 과정을 진행하게 되는데, 저희 연구실은 전 과정을 직접 수행하고 있습니다. 대표 성과로는 분자동역학을 활용한 이온통로 약물 결합부위 규명(PNAS, 2024), Cannabidiol의 통증 조절 기전 분석(Pain, 2024), 난청 관련 KCNQ4 유전자 변이 분석(Experimental & Molecular Medicine, 2023), 암세포의 칼륨 채널 의존성을 활용한 선택적 항암 기전 연구(Cancer Research, 2026)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습니다. 이러한 기초연구와 함께 동국대 재직 당시에는 임상 교수님과 공동으로 이온통로질환연구소를 설립, 실제 신약 개발로 이어지는 중개연구도 활발히 진행했습니다. 의과대학, 약학대학, 제약회사가 함께 협력한 이 연구들은 현재까지 임상 2상 IND 2건, 임상 1상 IND 1건 승인이라는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개발 과정에서 원료 제조부터 비임상시험까지 전임상의 모든 단계를 직접 경험한 박사과정 학생이 졸업 후 비임상시험 전문 기업 'CiPA Korea'를 창업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실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진 사례로서 연구가 사회에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가장 공을 들이고 싶은 분야는 AAV 유전자치료를 이용한 만성 통증·가려움증 치료입니다. 만성 통증과 가려움증은 감각신경이 관여하는 복잡한 증상입니다. 기존 약물은 전신에 작용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고, 오피오이드 같은 강한 진통제는 중독 위험까지 있습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MGH에서 새로운 접근법을 배웠는데, 바로 통증 부위에 AAV 벡터를 직접 주사해 통증을 전달하는 감각신경(통각수용체)에만 특정 이온통로 유전자를 선택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입니다. 이온통로가 발현되면 신경세포의 흥분성이 낮아지고, 그 결과 통증 신호가 억제됩니다. 전신 부작용 없이 통증 신경만 정밀하게 조절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현재 이 유전자치료 플랫폼을 통증뿐만 아니라 난치성 가려움증까지 확장하는 연구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AAV 벡터의 프로모터(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스위치)만 바꾸면 다양한 감각신경 질환에 적용할 수 있는 모듈형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마침,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에는 정밀의학교실이 있어 유전자치료 및 유전자편집 전문가들과 협력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갖춰져 있어요. 모교로 돌아온 것이 연구자로서도 더없이 좋은 선택이었다고 느낍니다. ▲ 하버드 의과대학 MGH 신경과 근무 당시 | 대학원생들이 교육적 지식을 연구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 무엇이고, 어떻게 이 역량을 기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자이기 이전에, 훌륭한 스토리텔러가 되어라.” 논문을 쓰는 일은 본질적으로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좋은 작가가 되려면 먼저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뛰어난 작가들이 세상을 어떻게 문장으로 옮겼는지를 체득해야, 내 안에서도 좋은 문장이 나올 토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연구도 자신의 분야에서 대가들의 논문을 꾸준히 읽다 보면, 그 분야의 핵심 난제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실험적으로 풀어가는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하게 됩니다. 이것이 비판적 사고와 연구 설계 능력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읽기만 해서는 좋은 작가가 되지 못합니다. 직접 써봐야 합니다. 연구도 마찬가지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설계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비로소 연구자의 감각이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학회와 세미나에서 다른 분야 연구자들과 교류하는 경험이 더해지면 ‘이 연구자는 같은 문제를 이렇게도 바라보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신선한 시각 하나가 상투적인 틀을 깨는 계기가 됩니다. 대학원은 바로 그 토양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원 과정을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한 단단한 채비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성균관대학교 선배이자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대학원 생활 Tip이 있다면요? 1. 자기관리 Tip 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Resilience, 즉 회복탄력성입니다. 연구라는 길은 생각보다 훨씬 험합니다. 공들인 실험이 재현되지 않고, 자신 있게 제출한 논문이 거절당하고, 어렵게 신청한 연구비가 탈락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논문이나 연구비 심사 통과율은 높이 잡아도 10~20% 안팎입니다. 즉, 열 번 도전하면 여덟아홉 번은 거절당한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냉혹한 현실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능력이 Resilience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첫째, 실패를 재정의하세요. 실패한 실험 데이터 안에도 반드시 배울 것이 있고, 거절당한 논문의 리뷰어 코멘트 안에도 연구를 더 단단하게 만들 재료가 있습니다. 실패는 무능함의 증거가 아니라, 연구 과정의 일부입니다. 둘째,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멘토, 동료, 가족의 존재가 연구자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합니다. 막혔을 때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입니다. 마지막으로, 연구 밖의 나를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을 지도하다 보면 학위 기간 더 많은 성과를 내려는 마음에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특히 유학생들은 빨리 학위를 마치고 돌아가야 한다는 부담까지 더해져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더군요. 하지만, 취미든, 운동이든, 소중한 사람과의 시간이든, 연구 외의 삶이 탄탄할수록 연구가 잘 안될 때 심적으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자신의 페이스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 결국 가장 멀리 갑니다. 2. 랩 동료 및 지도교수와의 소통 Tip “연구 실력은 시간이 지나면 늘지만, 관계는 한번 틀어지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입니다. 연구실은 실력만큼 관계가 중요한 곳이거든요. 대학원 연구실은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공간입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그 어떤 곳보다 중요합니다. 미국에서 연구할 당시 연구기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던 개념이 있었습니다. 바로 Microaggression입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일상에서 반복되는 크고 작은 차별적 언행을 뜻하는데, 연구실에서도 생각보다 훨씬 자주 일어납니다. 특정 배경의 학생에게 암묵적으로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거나, “넌 왜 대학원생이면서 이것도 모르니?”라는 무심한 핀잔, 특정 학교 출신이나 국적·성별에 대한 편견, 공동연구의 공이 특정인에게만 돌아가는 것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지속되면 구성원 각자의 마음에 아주 작은 상처가 생기고, 긴 대학원 생활 동안 조금씩 쌓이면서 결국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연구실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결속력과 화합을 무너뜨리는 가장 조용하고 위험한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늘 마음에 새기면 좋겠습니다. 동료가 힘들어할 때, “나도 그때 힘들었어”보다 “내가 다 알 순 없지만, 네 곁에 있겠다”는 말이 훨씬 큰 힘이 됩니다.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 그 말을 방어적으로 받지 않는 문화가 건강한 연구실의 토대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소외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침묵은 곧 동조입니다. “저도 그 의견 좋다고 생각해요”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큰 버팀목이 될 수 있습니다. 지도교수님과의 관계에서도 팁을 하나 드리자면, 랩미팅에 들어갈 때는 '지금 상황 - 막히는 지점 - 내가 생각한 해결책'을 미리 정리해 가세요. 잘된 실험뿐 아니라 실패한 실험도 솔직하게 가져가는 것, 그것이 신뢰의 시작입니다.
기술은 세상을 바꾸고, 법은 그 변화를 조율한다. 양극단에 서 있는 듯 보이면서도 그 어떤 분야보다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 이 두 학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이끌어 왔다. 인물포커스 584호에서는 이 두 분야를 모두 경험해 온 김경진 교수의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다. 공학 분야를 전공한 후 삼성전자에서 변리사로 일하다,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김경진 교수는 이제 학생이 아닌 교수로 올해 3월, 성균관대학교를 다시 찾게 되었다. 다채로운 도전을 이어 가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김경진 교수의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여 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특허법 교수로 부임하게 된 김경진 교수입니다. 저는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을 1기로 졸업한 후, 법무법인(유) 율촌과 법무법인(유) 광장 IP(지식재산권)팀에서 근무했고 로펌에서 특허소송 및 심판, 영업비밀 침해 소송, IP 전략 업무 등을 수행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주요 화학사를 위한 특허침해소송 사건을 다수 대리하였습니다. * IP(Intellectual Property): 인간의 창작으로 발생한 무형의 자산 및 이를 보호하는 지식재산권 | 학부와 석사 학위 모두 이공계 분야의 전공에서 취득하셨어요. 당시에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고등학교까지만 해도 과학에 관심이 많은 과학 소녀여서, 대학에 진학할 때 자연스럽게 이공계 분야의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로펌에서도 특허 관련 업무를 수행하였고, 지금도 과학과 공학에 대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어렸을 때 저의 꿈은 과학자였는데, 사실 변호사가 되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교수가 되어 저 자신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오랫동안 삼성전자에서 변리사로 근무하시다가 우리 대학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셨어요.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대학교 때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변리사로 일을 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법학을 공부해 보니 논리적인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실제 생활에 법률 지식을 적용해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또한,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공부했던 민법, 특허법에 대한 관심이 변리사 업무를 통해 법학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었던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기술 분쟁의 최전선에서 특허권 침해소송을 대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법학전문대학원이 처음 생긴다는 소식을 듣고, 법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 변리사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두고 새로운 길을 선택하시는 데 있어 두려움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원래 새로운 일을 시도하거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어떠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되었을 때, 비록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실제로 그 일을 해 보아야 후회가 없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길을 선택할 당시에도 큰 두려움과 불안감은 없었습니다. 다만 당시 법학적성시험을 준비해야 했고, 법학전문대학원의 경쟁률도 치열했기 때문에 합격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기억은 납니다. |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자는 한국 로스쿨 제도의 첫 세대이기도 한데요. 그 상징적인 시험을 치르고 합격하기까지의 감회는 어떠셨나요? 변호사시험이 처음 진행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시험 문제나 그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웠습니다. 또한, 시험 자체가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제1회 시험이었기에 합격률 자체는 높았던 편이라, 비교적 수월하게 준비했던 것 같습니다. 요즈음에는 변호사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더 높아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 시카고에 소재한 Northwestern University LL.M. 졸업식 당시 김경진 교수 | 대학 시절, 그리고 변리사로 일하시는 동안 쌓아 오신 경험이 변호사 업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로펌에서 제약 및 화학 분야의 특허 심판 및 소송을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학 시절에 배웠던 화학공학을 다루는 전공 지식이 변호사로 일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실 전공 지식 자체가 기억에 남아 있기보다는 해당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있었고, 이러한 측면이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학부에서 반드시 이공계를 전공하지 않더라도 공학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가 있다면 IP 분야의 변호사가 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 변호사로 일하시는 동안 기술과 지식재산(IP) 관련 업무를 주로 다루셨어요. 지금 돌아봤을 때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신가요? 글로벌 제약사를 대리하여 국내 최대 규모의 특허권 침해소송 및 심판을 대리하였던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사건은 블록버스터 의약품*을 보호하는 특허와 관련된 소송이었는데, 당시 수많은 제약회사가 시장에 진입하려 하는 상황이었고, 이와 관련하여 수많은 특허권 침해소송 및 심판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각국의 주장이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요. 그래서 한국, 미국, 유럽 등의 특허 법리를 동시에 고려하여 한국에서의 주장 및 논리를 정교하게 다듬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블록버스터 의약품: 간 매출 10억 달러 이상을 올리는, 시장에서 큰 영향력을 가진 대형 의약품 |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법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식재산 분야에서 활동하시면서 이 간극을 체감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기술혁신의 시대에는 특허권의 보호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특허권 침해소송이나 특허무효 심판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특허권 침해소송이나 특허무효 심판 절차는 기존의 틀 안에서 유지되고 있고, 제도 자체가 급진적으로 변경되지는 않습니다. 법적 안정성 등을 고려했을 때 소송 절차 등이 급진적으로 변화하기도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다만, 이러한 점에서 아무래도 법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로스쿨 생활을 하셨던 성균관대학교를 이제는 교수로서 다시 찾게 되셨는데, 학생 시절과는 또 다른 위치에서 모교를 마주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우선, 모교에 교수로서 다시 돌아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매우 영광입니다. 제가 로스쿨을 다닐 때 교수님들로부터 배운 것들을 저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강의를 준비하면서, 교수님들께서 수업 시간에 하신 말씀들을 다시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교수로서 다시 학교를 찾게 된 것이 잘 실감이 나지는 않고, 아직 반쯤은 학생 같은 느낌입니다. 다행히 법학관 건물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반가운 마음도 있습니다. 사실 법학관 건물의 환경은 더 개선된 것 같아서 이 점도 보기 좋았습니다. 학생들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모습이나 활기찬 모습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서 기분이 좋습니다. 또한, 로스쿨 재학 당시에는 학교 공부가 바빠서 여유 있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보기 어려웠는데요. 오랫동안 학교 밖에서 지내다가 다시 캠퍼스로 돌아오니 우리 대학의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 좋았습니다. | 풍부한 실무 경험을 안고 이제 교단에 서게 되셨는데요.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법조인의 태도나 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법학전문대학원 기간은 법조인으로서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공부를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실무에 나가게 되면, 차근차근 공부하기는 어려워지니까요. 또 당부드리고 싶은 한 가지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원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만 생각하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열심히 질문하고 도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어떠한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때는 고민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새로운 도전 앞에 서 있는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자기 자신을 믿고 도전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학점이 잘 나오지 않거나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을 때 좌절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어떠한 일에 실패했을 때, 내 인생이 이미 결정되어 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러한 일들은 과정에 지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학창 시절에 학점이 좋았다고 해서 꼭 그 삶이 성공한다거나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말고, 자기 자신을 믿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취재: <성균웹진> 정수연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성능이 작은 반도체 칩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기 위한 연구자들의 고민은 지금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오늘 만나볼 유창식 교수 역시 그 최전선에서 반도체 기술의 발전을 이끌어온 인물이다. 서울대학교에서 아날로그 회로 설계 분야로 박사학위를 받은 유창식 교수는 삼성전자 연구원, 한양대학교 교수, fabless 창업 등 학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경력을 쌓아왔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으로 재직하며 DRAM 개발과 차세대 메모리 기술을 이끌었다. 산업 현장과 대학 연구실을 넘나들며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전문성을 축적해 온 그는 올해 3월, 우리 대학 반도체융합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성균관대학교 학우들에게 참된 가르침을 선사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올해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게 된 유창식입니다. |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시게 된 계기와 배경이 궁금합니다. 저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서 4년간 근무했습니다. 이후 한양대학교 융합전자공학부에서 18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어요. 당시 삼성전자에서 연구년을 지내던 중이었는데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하면 좋겠다는 복귀 제안을 받아 DRAM 개발실 부사장으로 5년을 근무했습니다. 이후 이렇게 성균관대학교 반도체융합공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어요. 삼성전자와 한양대학교에서 쌓은 산업과 학문 현장의 경험이 성균관대학교의 산학협력 강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회로 설계 분야를 포함한 교수님의 연구 분야를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세요. 제 연구 분야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입니다. 많은 분이 이미 디지털 시대인데 왜 여전히 아날로그를 연구하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인지하는 빛, 소리, 촉각 등 모든 정보는 본질적으로 아날로그입니다. 이를 디지털 정보로 전환해 처리한 후 다시 아날로그 신호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죠. 실제로 제가 삼성전자에서 개발했던 DRAM의 경우, 정보를 ‘0’과 ‘1’의 디지털 형태로 저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정보를 DRAM 내부에서 쓰고 읽는 내부 동작 과정에서는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아날로그 회로 기술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아날로그 회로는 반도체 시스템의 핵심 기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년 전 한양대학교 재직 시절에는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을 지원받아, 기존 방식과는 다른 접근으로 아날로그 회로를 구현하는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해당 연구는 시간 정보와 통계적 기법을 이용하는 것으로, 반도체 설계 분야 최고 학회인 ISSCC와 국제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었습니다. ▲ ISSCC에 게재된 유 교수의 논문 | 학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3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반도체 분야에 몸담아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 분야를 연구하시면서 느낀 반도체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반도체 분야도 소자, 공정, 설계 등 다양한 기술 영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회로 설계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 설계는 전자공학에서 연구하는 다양한 이론을 실물로 구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론이 실제로 구현되어 동작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이 분야의 매력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10여 년 전 제가 ISSCC의 프로그램 위원으로 활동할 당시, 학회에서 “아날로그 회로 설계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주제가 논의된 적이 있습니다. 디지털 기술의 빠른 발전으로 아날로그 회로가 구시대적인 기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오히려 현재는 아날로그 회로 설계자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더 많은 학생이 저와 같은 분야에서 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한양대학교 교수 재직 중 삼성전자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어 1998년 이후 18년 만에 삼성에 복귀하신 이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맡으셨던 프로젝트와 그 성과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의 DRAM 개발실에서 근무했습니다. 여러분이 사용하고 계신 스마트폰, 노트북, 컴퓨터를 비롯해 유튜브를 보거나 제미나이를 사용할 때 접속하게 되는 google의 서버에 들어가 있는 DRAM*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제가 근무한 5년 동안 DRAM의 속도와 집적도는 2배나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최근에는 팀원들과 함께 LPDDR6*와 DDR6*의 표준을 정의하는 JEDEC* 업무를 진행했습니다. 특히 LPDDR6의 경우, JEDEC 표준 업무와 개발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여 세계 최초로 제품 개발을 완성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 연구의 결과는 올해 2월 ISSCC에서 발표되었으며, 내년에 출시될 스마트폰에 해당 제품이 탑재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DRAM: 동적 랜덤 액세스 메모리로,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 *LPDDR6: ‘Low-Power Double Data Rate’의 6세대 규격으로, 모바일 기기에 쓰이는 저전력 DDR 메모리의 최신 세대 *DDR6: DRAM의 차세대 규격으로, 상승·하강 에지 모두에서 데이터를 전송하는 DDR(Double Data Rate) 기술을 적용한 최신 메모리 *JEDEC: 반도체 표준을 제정하는 국제표준화 기구로, 메모리·패키징·신뢰성 시험 등에서 널리 쓰이는 규격 체계를 제공. >삼성전자 부사장 재직 시절 관련 기사 ▲ D램 관련 발표를 하는 유 교수 | 고성능과 저전력을 동시에 구현하는 반도체 개발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들었습니다. 반도체 연구 과정에서 마주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고, 이를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날로그 회로에 많이 사용되는 커패시터*는 실리콘 면적을 많이 차지합니다. 이는 곧 칩 면적 증가로 이어져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해요. 저가격이라는 요소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지죠. 당시 앞서 말씀드린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에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제가 찾은 해결책은 시간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커패시터는 전압을 적분하는 특성이 있으며, 전압 제어 발진기(VCO) 회로 역시 전압을 적분하여 위상 정보를 만들어내는 특성을 보입니다. 이 둘 사이의 유사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치열하게 연구한 결과, 회로의 면적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고성능, 저전력, 저가격은 모든 반도체 개발자가 지닌 목표입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요소를 동시에 완벽하게 만족시키기는 어렵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일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결국 최종 제품의 성공 여부는 이 세 요소 사이에서 어떤 기준으로 최적의 균형점을 찾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커패시터: 내부의 전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는 부품 | 스위스 연방 공대(ETH) 연구실과 캘리포니아 실리콘 이미지에서도 근무하셨습니다. 이러한 다년간의 해외 연구 경험이 현재 교수님의 연구 방향이나 철학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합니다. 박사 학위를 마치고 post-doc으로 스위스 연방 공대 (ETH)에서 16개월 정도 근무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의 국제적 위상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고, IMF 구제 금융을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박사 학위 기간에 발표한 논문을 ETH의 지도교수께서 높게 평가해서 해외로 나가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었어요. 당시 근무를 하며 우리나라에 비해 ETH는 대학원 연구실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운영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행정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과 실험 장비를 관리하는 직원이 별도로 있어 대학원생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여름 방학에 2주 이상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점 중의 하나였어요. 그런 인상을 바탕으로 이후 한양대학교에서 제가 지도하는 연구실도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한편, 한양대학교에서 첫 번째 연구년을 가게 되었을 때 실리콘 이미지로부터 제안받아 1년간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개발하던 제품이 최종 field test 단계에서 간헐적으로 결함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수천 번 테스트해야 가끔 한 번씩 불량이 발생하기 때문에 검수 단계에서 걸러내는 것도 불가능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문제를 해결하면서 설계 단계에서의 면밀한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양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대학 연구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지만, 졸업 후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줄이기 위해 학생들에게도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개발하는 자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post-doc: 박사 학위 취득 후 일정 기간 연구 기관에서 연구책임자 지도하에, 연구과제에 참여하며 연구 능력과 성과를 심화하는 연구자(연수자) |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연구 분야나, 현재 관심을 두고 준비 중인 연구 주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DRAM scaling* 한계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꽤 오랫동안 alternative memory에 관한 연구를 해왔지만, 미래의 DRAM 역시 결국 DRAM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결론입니다. 즉, DRAM을 대체할 기술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AI 시스템이 요구하는 더 높은 대역폭과 용량을 지니면서도 더 낮은 전력과 비용을 지닌 DRAM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가 숙제인데 정답을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 정답을 성균관대학교 학생들과 같이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아날로그-혼성 신호 회로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될수록 공급 전압은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 아날로그-혼성 신호 회로 기술의 한계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DRAM scaling: 반도체의 집적도와 비용 효율을 높이는 과정 | 마지막으로 올해 교단에서 새롭게 만나게 될 성균관대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훌륭한 성균관대 학생들과 생활하게 되어 너무 기쁘고 기대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여러분께 아낌없이 나누고자 하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 연구실 문은 언제든 열려 있고, 전화, 이메일 모두 환영합니다. 유 교수는 이상적 엔지니어란 스스로 사고하고, 동료들과 토론하며, 적극적으로 질문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성균관대학교 학생들이 유 교수의 강의를 통해 이러한 태도를 갖춘 인재로 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취재: <성균웹진> 김은서 기자 / 편집: <성균웹진> 김유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