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열린 아트 공모전’ 렛미인(Let Me In) 대상 수상
미술학과 신제현 겸임교수(미술 02)
예술가는 한 시대의 본질을 탐구하는 관찰자이자 창조자에 비유되곤 한다. 이들은 사회를 관찰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작업은 대중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고 그들의 인식을 확장하는 데에서 나아가 때로는 개인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기도 한다.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동시대 사회 현실을 인식시키고 긍정적인 방향의 사회 변화를 이끄는 미술 작가 신제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만나서 반갑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미술 작가 신제현입니다. 현재 공공미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어요. 우리 학교 미술학과와 미술 대학원을 졸업했고 지금은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직을 맡고 있기도 합니다.
별마당 도서관 중심부에 공개된 그의 조형예술 작품 <렛미인(Let Me In>
신제현 작가의 작품 <렛미인>은 10개의 문 너머에 있는 새로운 만남과 행운에 대한 기대감을 전한다. 책을 펼치면 책 속 이야기로 빨려 들어가듯 10개의 문이 열리면서 장애 예술가 10인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렛미인>은 다양한 세상과의 만남과 교류를 표현해 만남의 장이라는 별마당 도서관의 역할과 잘 어우러진다는 평을 얻었다.
| 올해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 도서관이 개관 7주년을 맞아 개최한 ‘제6회 열린 아트 공모전’에서 <렛미인(Let Me In)>이 대상작으로 선정됐어요. 이 작품이 탄생하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이 있어요. 장문원은 장애인 문화예술 정책을 개발하고 제안하는 정책기관이에요. 장문원에서 운영하는 사업 중에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라는 사업이 있는데요. 대학교와 협력해 예술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장애 예술가들의 창작 역량을 강화하고 장애 예술의 기반을 확대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제가 작년에 성균관대학교에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장애 예술가들을 만났어요. 단기 프로젝트였지만 수업이 잘 마무리되면서 올해는 학교에서 장애 예술가들의 다원예술캡스톤디자인 수업을 맡았어요. 수강생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결과물을 전시하기도 했고요. 이음 아카데미와 다원예술캡스톤디자인 수업에 참여한 장애 예술가들과의 협업으로 <렛미인>이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었어요.
| <렛미인>은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도시에서 배제된 집단을 조망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가 유독 장애 예술가에 대한 평가가 낮아요. 편견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작품성이 높은 것들이 많은데도 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죠. 그런 인식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스타필드라는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잖아요. 그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우리 장애 예술가들이 만든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을 보면 감탄이 나오고 이들의 작품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거든요. 작품 자체는 동명의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이 문 앞에서 ‘렛미인’을 외쳐야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설정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장애 예술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마치 ‘렛미인’이라는 허가가 없으면 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이러한 사회적 현실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 별마당 도서관에서 <렛미인>을 감상하는 관객들이 끊임없이 문을 여는 모습이 눈에 띄었어요. 철학적인 아이디어를 예술 작품으로 어떻게 구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장애 예술가들이 그린 그림을 영상으로 만들었고 관객들이 문을 열면 이 영상을 볼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그런데 문이 40초마다 열렸다가 닫히기를 반복해요. 관객들이 문을 열고 차분하게 영상을 보려고 하면 문이 닫혀버리죠.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할 때쯤 문이 다시 열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한 문은 닫힙니다. 관객들이 이러한 불편함을 경험하게끔 만들어서 ‘렛미인’이라는 허가, 즉 문을 직접 여는 귀찮은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현실을 표현했어요.
신제현 작가의 작업은 우리 사회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경험한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한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과 도시 문제 관련 활동에서 그의 작업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제현 작가는 2009년부터 다양한 퍼포먼스와 영상, 악기 제작 워크숍 등을 통해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예술적 논리로 저항해 왔다. 그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쫓겨난 가게에서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퍼포먼스 <한남스타일>로 화제를 모았고 2016년에는 서울의 복합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과 프랑스의 젠트리피케이션 지역 갤러리 이그렉에서 위치 센서를 이용해 두 공간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러한 그의 작업 활동은 예술 작가가 법적 문제에 절묘하게 개입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예술을 가교 삼아 동시대 사회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그의 행보는 사뭇 대단하게 느껴진다.
| 그동안 선보인 작업의 주제를 살펴보면,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신제현 작가의 지속적인 관심이 드러납니다. 예술과 사회 운동을 병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나요?
예술이 사회 운동으로 넘어갈 때 종종 생기는 문제가 있어요. 미학적인 가치가 사회 운동의 효율성에 묻혀서 이게 사회 운동인지 예술 활동인지 구분이 안 되고 양쪽 다 흐지부지되는 거예요. 꽤 많은 액티비스트들이 미술관에 들어가기에는 예술적 의미가 부족하고 사회 활동으로 보기에는 활동이 미비한 딜레마 상황을 겪어요.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사회 운동과 예술 활동을 분리하려고 해요. 사회 운동을 할 때는 사회 운동에 전념하고 예술을 할 때는 사회 운동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나 느낌을 작품화하는 거죠. 사회 운동을 직접적으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사회 운동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철학적인 부분을 예술의 실마리로 활용하는 거예요.
| 현대 예술과 사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도 둘의 성격을 분리하려고 한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예술과 사회 운동의 역할 구분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술과 사회 운동은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어요. 그렇지만 사회적인 이슈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신선한 방식으로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고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가가 사회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은 언론인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언론만의 영역이 있는 한편 예술은 일반 기자들이 다루지 못하는 영역을 다뤄야 해요. 예술가의 목표는 대중에게 예술적 논리로 사회적인 이슈를 각인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는 거니까요. 이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대상화의 문제가 일어나서는 안 되겠죠. 어떤 경우라도 사회 운동을 하는 예술가가 사회 운동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특혜를 받거나 사회적 약자의 안타까운 처지를 이용해서 개인의 이득을 취해서는 안 돼요. 그런 상황이 생기는 순간 예술가에게 선한 의지로서의 목적성은 완전히 상실된다고 봐요. 저는 이러한 부분을 조심하려고 하는 편이고요.
| 사회적인 이슈를 주제로 예술 작품을 기획할 때는 타자(他者)로서 문제 당사자의 일상에 얼마나 개입하는 게 적절할지 가늠하는 감각도 필요해 보입니다. 신제현 작가는 예술적 개입의 정도(程度)를 어떻게 결정하는지 궁금해요.
제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제 명예나 이득을 얻는 데 대상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요. 과거에 젠트리피케이션이나 환경 보호와 관련된 활동을 할 때도 사회 운동의 일부분을 작업에 직접적으로 끌어오지 않으려고 했어요. 제가 하는 활동을 SNS에 홍보하거나 주변 지인들에게 알리는 일도 하지 않았죠. 작업물에 사회 문제의 당사자들이 불편함을 느낄 만한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 고민을 많이 해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면 불편함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도 마련하고요. 예를 들어, 다큐멘터리 영상을 찍을 때는 해당 주제의 당사자를 출연시키는 게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높겠지만 저는 전문 배우를 쓰려고 해요. 당사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방식으로, 더욱 예술적인 형식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들고 싶거든요.
<물의 모양(The Shape of water)>, 2021, 40년 된 집에서 나온 나무들 Wood from an abandoned house, 7일간의 퍼포먼스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는 작가 신제현의 작품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버림받아 사라져가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2021년 11월 한강을 무대로 펼쳐진 다원 예술 퍼포먼스 <물의 모양>이 있다. 40년 된 주택을 작업실로 리모델링하던 신제현 작가는 버려지는 목재에 주목했다. 리모델링 과정에서 나온 나무와 물건으로 배를 만들다가 새로운 프로젝트 <물의 모양>이 시작된 것이다. 관람객들은 작가가 만든 배를 타고 한강을 돌아다니며 강에 떠 있는 무대장치를 만난다. 피아노와 가야금, 드럼 등의 무대장치는 작가가 투자한 코인의 등락 폭에 의해 자동으로 움직인다. 피아노가 뗏목 위에서 강을 떠다니며 자동으로 연주되는 광경은 관람객들에게 생경함을 선사한다.
| 버려진 물건들로 악기를 만들어 연주하는 <시간의 소리>, 10년 후면 사라지는 데이터를 자개 기법으로 표현한 <윤슬> 등 신제현 작가의 작품은 사라져가는 사물을 예술로 승화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사라져가는 존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제 작품 세계의 공통 주제는 시간 철학이에요. 모든 작업이 ‘시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려는 시도였어요. 그동안 예술계에서는 영원불멸한 진리가 있을 거라는 믿음이 강했어요. 그림도 한 번 완성되면 그 상태로 유지되고 조각도 완성되면 거기에서 끝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동시대 미술이라고 불리는 현대미술로 넘어오면서 모든 건 시간의 흐름에 의해 변하고 바뀐다는 철학적 사고가 대세예요. 저도 자연스럽게 멈춰 있고 굳어진 무언가보다는 끊임없이 사라지고 변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 개념적인 담론이 중시되는 동시대 미술의 패러다임 속에서 ‘사라져가는 존재’는 매력적인 소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신제현 작가가 ‘사라져가는 존재’를 통해 대중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도시 문명이 발달하면서 세속적인 프레임 안에서 영혼 불멸한 안정성 혹은 황금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사실 그런 생각들이 인간을 더 외롭고 우울하게 만들잖아요. 모든 건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세상에 영원한 건 없으니까요. ‘이걸 인식하는 순간 사람들이 삶과 죽음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텐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큰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을 작품화하고 무언가 사라지는 것도 결국 변화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면서 소멸을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제 작품을 관람하는 관람객들과 이러한 지점을 공유하고 싶어요.
신제현 작가는 실험적인 성격의 동시대 미술 작업을 기획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개념적 이해가 필요하고 작업의 구조 역시 복잡하다. 그의 대담한 기획 의도는 치열한 탐구 과정을 거쳐서야 우리에게 다가온다. 신제현 작가는 분명 쉽지 않은 작품을 선보인다. 하지만 그는 미술 작가로서 미술을 대중화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관람객을 대상으로 한 미술 강의나 워크숍, 정부 기관 협력 사업 등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전시 장소의 성격에 따라 관람객들이 작품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하기도 한다. 작품을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흥미와 작품의 개념, 구조를 파악해야만 느낄 수 있는 흥미, 이 둘의 균형을 맞추려는 그의 세심함이 눈에 띈다.
| 음악,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술은 유독 진입장벽이 높다고 여겨집니다. 미술관 방문에 막연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나요?
미술 초보자라면 국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부터 가는 게 좋아요.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 미술관 같은 곳이요. 국공립 미술관은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대중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해요. 작품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제공하고요. 그런데 대안공간이나 상업 갤러리부터 방문하면 현대 미술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어요. 거긴 일반 대중이 아니라 미술 전문가를 위한 공간이거든요.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면 모두를 위한 미술관에 방문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 미술관 방문 경험을 쌓은 뒤 미술 공부에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면 어떤 경험을 하는 게 좋을까요?
미술에 흥미가 생겼다면 미술관에서 도슨트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더 복잡하고 어려운 미술을 경험해 보세요.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강좌도 듣고 현대 미술을 공부한 다음에 난도가 높은 대안 공간에 가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극한의 쾌감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예술 작품 감상을 통해 얻는 쾌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현대 미술은 표현에 제한이 없거든요.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깊이와 파격, 자유로움을 느껴보세요. 거기까지 가는 일련의 과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무겁지 않은 전시부터 시작해서 취향을 맞춰간다면 미술에 재미를 붙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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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파도에 쓸려가듯이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거예요. 파도가 높아지면 무서워하고 파도가 낮아지면 낮아지는 대로 안정을 취하면서요.
여기에서 조금 더 재미있고 창의적인 일상을 보내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 학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말에 그는 이런 대답을 내놓았다. 동시대 사회 현실을 관찰하고 관성화된 일상에서 예술 작업 형식의 개입을 골몰하는 ‘미술 작가 신제현’다운 답변이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각자 주체성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간다. 신제현 작가의 말처럼, 견고하고 안정된,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형태의 미래를 꿈꾸며 살아가기보다는 하루하루의 일상에 집중해 보는 게 어떨까.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극한의 쾌감을 선물하는 ‘미술’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