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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

국어학의 오랜 숨결을 읽다 -
어느 진로를 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청년다운 크나큰 도전적 자세입니다. 여러 난관을 뚫고 전진하기 바랍니다.

국어국문학과 권인한 교수

  •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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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문회에서 수여하는 난정학술상은 국어국문학 연구와 발전에 평생을 바치셨던 故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의 뜻을 기리고, 국어국문학 분야에서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낸 연구자들을 지원하고 격려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6년 제1회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지난해 8회까지 본상과 우수상 각각 두 명의 수상자를 선정하여 매년 난정 선생의 생일인 4월 28일에 시상식을 열어 왔다. 그리고 국어학 분야 수상자를 내는 올해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에는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권인한 교수가 선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국어문회는 권인한 교수를 본상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국어 한자음 연구와 차자 표기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다수의 주옥같은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두고, 여러 학회의 학회장을 두루 거치면서 국어국문학 연구자를 이끌어 주었다”는 점을 들어 높이 평가했다. 권인한 교수가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며 국어학 연구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기는 순간을 함께해 보자.




| 안녕하세요, 교수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권인한입니다. 이제 정년이 몇 해 남지 않아 여러모로 먼발치로 물러나 있습니다만, 뜻밖에 성균웹진에서 조명받을 수 있게 되어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의 전공은 국어음운사 - 특히 한국한자음 역사인데요. 금석문, 목간, 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에 대한 판독 및 해석을 통해 고대 한국한자음의 재구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한국목간학회 회장직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무미건조한 국어학자의 이야기가 성균웹진 독자 여러분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권인한 교수 




| 지난 4월,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지금, 교수님의 올해 연구 여정에 깊게 새겨진 순간일 듯한데요. 이번 수상이 교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당시의 소감이 궁금합니다.


제9회 난정학술상 본상을 수상하면서 떠오른 감정은 영광스러움과 감사함, 그리고 행복함이었습니다. 난정학술상은 우리 어문 연구와 한자 교육 진흥에 평생을 몸 바쳐 열과 성으로 크게 공헌하신 난정(蘭汀) 남광우(南廣祐) 선생님의 뜻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인데, 저의 수상작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가 난정 선생님의 학문과 맞닿아 있어서 동일 전공의 후학이 이 큰 상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무척 영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부족한 저에게 난정상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신 한국어문회(이사장 남기탁 교수)와 난정학술상 심사위원회 여러 선생님들께 올리는 감사함이 컸습니다.


덧붙여 평생의 숙원을 이룬 행복감이 찾아왔습니다. 공부 외에 별다른 재주가 없었던 제가 40대 이후 30여 년간 금석문, 목간, 그리고 신라사경 등의 1차 문자 자료들을 만나 한자음 관련 증거들을 모으고 분석하여 그 결실을 이전과는 차별성을 지니는 ‘신연구’라는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기에 저 자신이 참으로 복 받은 행운아라는 행복감에 젖을 수 있었습니다.




| 교수님께서 주력하시는 연구 분야 -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 출토 문자, 구결 등 - 에 대해 성균웹진 독자분들께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세종대왕이 창제하신 훈민정음으로 우리말을 적기 이전에 우리 조상들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인명, 지명, 관직명 등을 적은 고유명사 표기, 관공서 문서를 적은 이두(吏讀) 표기, 불경 등의 경전을 학습한 구결(口訣) 표기, 그리고 우리의 노래를 적은 향찰(鄕札) 표기 등 각종 차자표기법을 발달시켜 왔습니다. 고대 한국한자음의 연구는 이러한 차자표기법의 절반 이상을 규명해 내는 학문이라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고유명사·이두·구결·향찰 표기자의 절반 이상이 한자의 음을 빌려 쓴 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는 이 차자표기자들이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한자음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를 규명해 내는 학문입니다.


제가 금석문, 목간, 신라사경 등의 자료에 집중한 것은, 당대 우리 조상들이 남긴 1차 문자 자료들인 이들을 통해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대한국어 시기 한자음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에서였습니다. 선배 학자들이 고대 한국한자음에 접근하고자 이용한 자료는 대부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고유명사 표기들이었는데, 이들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2차 역사서들에 실린 표기들로서 여러 가지 한계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신라 금석문, 목간, 신라 사경류(寫經類), 고려시대 불서류(佛書類)에 이르는 1차 문자 자료들을 살펴보게 되었고, 여기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학계에 보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고대한국어와 문자문화 연구에 오랜 시간을 할애해 오셨어요. 처음 관심을 갖고 깊이 파고들게 되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이 분야에 대한 흥미가 학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학부 시절이나 석사과정 시절의 최대 관심사는 현대한국어 음운 연구였습니다. 그러다가 박사과정을 수료할 즈음부터 한국한자음 연구에 뜻을 두기 시작하였고, 그 후 30여 년간을 이 작업에 몰두하였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음 연구에 들인 첫 발걸음은 박사과정 마지막 학기인 1991년 1학기에 제출한 「계림유사 “고려방언” 자료의 성조 재구를 위한 기초적 조사」라는 한 편의 기말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를 지도교수이신 故 김완진(金完鎭) 선생께서 그해 어느 학회 발표문에 인용하면서 저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보아주신 때를 기점으로 이 방면의 연구에 깊이 파고들게 되었습니다.


그 후 2002년 성대에 부임한 해에 구결 학회의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구결 자료를 접하게 되었고, 2007년 한국목간학회 창립 회원으로서 금석문, 목간 자료를 함께 다루면서 1차 문자자료를 통한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의 가능성을 발견하였습니다. 가장 결정적인 계기로 2009년 1월 이후 일본 나라시 소재의 동대사(東大寺) 도서관에서 신라사경인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740년대 추정) 속에 담긴 수많은 신라인의 각필(角筆) 문자들을 접하면서 신라한자음, 나아가 고대 한국한자음 연구를 본격적으로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 이번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과 특히 맞닿아 있다고 소개하신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2024)의 집필 과정과 내용에 대해 자세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인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저를 난정학술상 본상 수상으로 이끈 것은 『고대 한국한자음의 신연구』(역락출판사, 2024)입니다. 이 책은 앞서 말씀드린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저의 이전 졸작인 『광개토왕비문 신연구』(박문사, 2015) 발간 이후인 2016년 초엽부터 본격적인 집필 기획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합니다. 몇 편의 시험적인 논문을 발표한 후, 이를 바탕으로 한국연구재단(KRF)의 2019년도 중견연구자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2019. 7. 1.~2022. 12. 31.) 전문 학술지에 7편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들을 하나의 체재로 통일하는 동시에, 출토 문자 자료를 통해서 본 “고대 한국한자음 기층음의 형성과 전개” 부분과 연구 자료 중 자음주(字音注)들을 중심으로 성모·운모·성조별로 체계성 여부를 살펴본 “고대 한국한자음의 체계성 검증” 부분을 새로 집필해서 최종 원고로 완성하여(2022. 8. ~ 2024. 1.) 출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 책의 주요 연구 자료는 신라 금석문(9종 12건, 6세기), 함안 성산산성 출토 목간(245점, 6세기 중·후반), 일본승 中算이 찬한 『묘법연화경석문』(976)에 실려 전하는 신라의 원측, 순경, 경흥, 태현사의 한자 주석(7~8세기), 오타니(大谷)대학 소장의 元曉 찬 『판비량론』 단간 속에 보이는 성점(聲點), 범패부(梵唄符) 등 각필 한자음 자료(733년 이전), 동대사도서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 권12~20에 보이는 각종 각필 한자음 자료(740년대), 사산비명 등 최치원의 협주, 비명시 압운 등의 한자음 자료(9세기 말~10세기 초),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8·61·66 등 고려시대 불서류에서 찾을 수 있는 한자음 자료(11~13세기 초) 등 6세기에서 13세기 초에 이르는 한자음 관련 자료들을 조사하여 분석한 것입니다.


연구 결과로 제시한 고대 한국한자음의 특징을 11가지로 제시하였는데요. 그중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한국한자음의 /-ㄹ/ 종성의 시작이 6세기 중·후반으로 소급된다는 점, 상성과 거성이 혼동되는 한국한자음의 특징이 8세기 초반에까지 소급된다는 점, 어두에 /ㄹ/이 올 수 없는 두음법칙의 시작이 3세기 『삼국지』 고유명사 표기들에까지 소급되고, 5세기 『광개토왕비문』을 거쳐 13세기에 이르기까지 굳건하게 유지되었다는 점 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목간·금석문·구결 등 출토 문자 자료를 다루실 때 크게 다가오는 난점이 있으신가요?


목간과 금석문의 경우는 글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특히 울진 봉평리 신라비처럼 논이나 도랑 등 비석이 본래 세워진 위치가 아닌 곳에서 부분적으로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을 때 손상된 문자의 판독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고 목간의 경우도 묵흔이 잘 남아 있지 않았거나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행서나 초서로 쓰인 부분은 판독상의 어려움이 가중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이 따르는 자료는 각필로 쓰인 신라시대 구결 자료입니다. 1,000년이 넘는 시간적 간극으로 인한 각필 흔적의 손상도 문제이려니와, 각필 자료의 조사를 위해 각필 스코프라는 장치의 도움을 받게 되는데, 빛의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해당 글자가 눈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어서 판독상의 어려움을 겪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 동대사도서관 화엄경 각필 조사




| 국립국어원이 창립되던 1991년부터, 학예연구사로 5년여간 근무하셨어요. 국어원에서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도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991년 1월 10일 국립국어연구원(현 국립국어원)이 창립될 때부터 1996년 2월까지, 5년여 동안 학예연구사로 근무했습니다. 처음에 제가 맡은 연구 업무는 북한어 연구였습니다. 북한의 신문·잡지 등을 살펴보고, 북한의 국어사전들을 분석하는 것이 주 업무였는데요. 1992년에 『조선말대사전』이 출간되었을 때, 표제어의 발음에 표시된 악센트 높낮이 숫자를 분석한 보고서를 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부터 지금의 『표준국어대사전』 편찬 사업에도 참여하여 주로 각 표제어의 발음 표시에 대한 원칙과 실제에 대한 지침을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 3월부터는 울산대학교에 부임하여서, 끝까지 이 작업을 마무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국립국어원에서의 5년은, 남북한 언어 차이를 조사·분석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의 편찬 사업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바가 있었다고 사료되기에 저의 30대 초반에 보낸 보람찬 시절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되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2년 3월 국어국문학과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 학과에는 저를 포함하여 7분의 교수만 계셨는데, 제 바로 윗분이 박양규 교수님으로 저와의 나이 차가 15년이 될 만큼 다들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분들이었습니다. 사학과의 어느 선생님이 말씀하셨듯 노인대학의 사무장 역할로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일찍 학과장 역할도 수행하였는데, 매년 가을 문학기행 때에는 안동이 고향이신 김시업 선생님을 모시고 안동 일원을 여행하면서 국문과 학부·대학원생들과의 친목을 도모했던 기억이 새록합니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 한 분 한 분 정년을 맞으시기 시작하여 과세(科勢)가 줄어들기도 하였습니다만, 2005년부터 노명희, 천정환 교수를 비롯하여 많은 뛰어난 신진 교수들을 새 식구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제가 처음 부임해 왔을 때보다 두 배 가까운 열세 분의 교수를 모신 학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과대학 학장직을 수행할 때(2017~2018) 학교 당국의 협조하에 대학원에 한국어교육학과를 개설하게 되었는데 지금의 학과 성장세에 조금은 기여한 바가 있지 않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학과는 교수들 사이, 교수와 학생들 사이 관계가 매우 화목하다는 점이 널리 자랑할 만한 특징입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교수들끼리 크게 다투어 본 적도 없고, 전공 간 이견이 생기더라도 학과 회의를 통해 원만한 해결책을 모색해 왔으며, 매 학기 초 교수-학생 간 상견례를 통해 학생들과의 친교도 도모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화합된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데에는 선배 교수님들의 가르침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감사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 국어국문학과 문학기행, 2012년 가을 임진각




| 고대 한국어, 국어사에 관심이 있는 학부생에게 어떤 준비를 해 보라고 조언해 주시겠어요?


<국어의 역사> 강의 시간에 지금까지 소개한 문자 자료들을 화면에 띄워가며 수강생들의 흥미를 끌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고대 한국어 연구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발견하게 되면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해줍니다.


첫째, 고대 한국어 연구에 필요한 자료는 예외 없이 한자,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기에 글자의 판독에서 해석에 이르는 기초 작업을 위해서는 한자, 한문에 대한 기초 지식 연마에 힘쓰라고 말합니다. 여러 가지 서체를 모아놓은 서체 자전은 물론, 불경 등의 자료를 해석하려면 한글대장경을 비롯한 기존 해석 자료를 충분히 섭렵해야 합니다. 또 자신의 해석 능력 향상을 위해서 한문 문법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말 것을 주문합니다.


둘째, 신라~고려시대에 이르는 구결 자료의 연구를 위해서는 구결자에 대한 학습도 필요합니다. 구결자는 대부분 한자의 획 일부를 따온 생획자(省劃字)들이므로, 해당 구결자가 어느 한자에서 온 것인지를 알아야 해당 한자의 음과 훈을 적용하여 구결의 독법을 세울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구결문의 해석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기존에 발표된 선배 학자들의 논저를 공부하면서 어느 점들이 문제인지를 파악하여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정하고, 이를 자신만의 학문 체계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많이 보고, 읽고, 익히는 과정에서 학문적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 마지막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 국어국문학과에는 현대문학 5분, 고전문학 3분, 국어학 3분, 한국어교육학 2분 등 한국 최고 실력의 교수진이 여러분들을 학문의 길로 이끌고자 기다리고 있습니다. 각자의 관심 영역에 맞는 교수님들과 만나 적극적인 질의와 응답을 통하여 학문에 입문해 보십시오. 학문의 길뿐 아니라 교사, 언론인, 관료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사회인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학생들도 우리 교수진이 인생 선배로서 건네는 조언을 통하여 모두의 꿈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진로를 택하든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청년다운 크나큰 도전적 자세입니다. 여러 난관을 뚫고 전진하기 바랍니다. 처음에 가졌던 문제의식을 유지하여 노력하다 보면 여러분들 앞에 달콤한 성공의 열매가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끝까지 파이팅!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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