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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균관대학교는 국내 대학과의 비교를 넘어 세계 유수의 대학과 경쟁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성균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학업에 충실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세계를 향해 포부를 실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법학과 92 조순열 동문

  •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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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커밍데이(homecoming Day). 학교의 졸업생들이 졸업한지 30년이 되는 해에 모교를 방문하는 행사를 뜻한다. 우리 대학에도 홈커밍의 전통이 있다. 성균관대학교의 졸업생들은 입학 30주년이 되는 해에 모교를 찾는다. 올해는 2022년이니 올해 홈커밍의 주인공은 1992년, 쌀쌀한 봄바람을 맞으며 성균관에 입학한 92학번들이다. 그리고 30년만에 모교를 다시 찾는 92학번들에게 즐겁고 의미 있는 홈커밍데이를 선물하기 위해 ‘홈커밍준비위원회’ 가 꾸려졌다. 홈커밍준비위원장을 맡은 조순열 동문을 인터뷰했다.




Q1.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조순열입니다. 저는 사랑하는 우리 모교 법학과 92학번이고, 사법연수원 33기 수료 후, 현재 법무법인 문무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만나서 반갑습니다. 최근의 일상을 좀 여쭤보고 싶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찾아주셔서 반갑고 감사드립니다. 저는 서울 서초동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로펌 운영, 법원 재판, 검찰 및 경찰수사 참여, 기업 자문, 국가기관 각종 위원회 회의 참여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또한 전국 변호사 숫자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고, 사단법인 김대중 이희호 기념사업회 이사장, 경찰청 인가법인 한국청소년육성회 서초지구 회장, 대한중재인협회 부협회장을 역임하며 공익 분야의 사회활동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Q3. 올해 있을 92학번 홈커밍 준비위원장을 맡으셨어요. 홈커밍,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요?


우리 대학은 전통적으로 대학 입학을 기준으로 30년이 되는 해에 홈커밍데이 행사를 하고 있는데요. 제가 저희 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은 후 사회활동이 위축되어 행사준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동기들의 성원에 힘입어 철저히 준비 중이랍니다. 현재 준비위원회 집행부를 꾸리고, 각 학과의 대표들이 모여서 학우들의 참여를 적극 독려하고 있습니다. 학교의 적극적인 후원과 사회 곳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기들의 활발한 참여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은 기간 동안 더욱 열심히 준비해 부족함 없이 기분 좋은 행사를 만들고자 합니다.




Q4. 곧 있을 홈커밍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성균관대학교 92학번의 저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날이 발전해 온 성균관대학교의 위상과 성균인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애교심을 거침없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최고의 인싸 공개를 포함한 깜짝 행사들은 공개하면 스포가 되어 본 행사가 재미 없을 수 있으니 공개하지 않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것입니다.




Q5. 92학번의 홈커밍을 기념하며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1992년의 성균관대학교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92년도의 성균관대학교에는 근대 유물로 남을만한 건물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서 그런지 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 촬영을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정문에서 들어가면 왼쪽에 하마비, 용 모양의 동상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공자를 위시한 성현들을 모신 대성전이 있었습니다. 가파른 대성로와 잔디밭 캠퍼스에는 항상 활기찬 성균인들이 가득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산실답게 학생운동이 활발했고,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아 고등학교별로 동문회를 한다는 현수막이 줄지어 걸려있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이나 농촌활동체험을 모집하는 문구들도 많았고, 각종 고시, 공무원시험, 대기업 합격 축하 현수막도 가득했습니다. 강의실과 도서관에는 학업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성균관대학교는 전통적으로 학생수는 적지만 합격률이 최고인 대학이었습니다. 현재 있는 건물은 대부분 신축되어 92년도에는 없었습니다. 있던 자리에 신축한 건물로 교수회관이 있고, 학생회관 건물 자리에는 대학본부 건물이 있었고, 국제관에는 법대와 사회대가 있었고, 600주년 기념관 자리에는 대학도서관이 있었습니다. 경영관에는 여전히 경영대가 있었고, 그 뒤에 있는 퇴계인문관은 신축되었습니다. 법학관은 당시 테니스장이었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선관은 당시에도 높은 건물로 상징적인 건물이었습니다. 경영대 앞 금잔디광장에는 소라모양의 공연장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져 참 아쉽습니다. 학교에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맞이해 주는 건물인 비천당은 옛날에도 그 모습 그대로였던 것 같아요. 비천당 글자를 읽기까지는 몇 년이 걸렸고, 불탄당, 비탄당 등등 잘못 붙인 이름들로 명명되기도 했답니다(웃음).




Q6. 성균관대학교에 다니던 ‘학생 조순열’ 의 모습도 궁금해지는데요. 재미난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졸업 후 알게 된 동문들은 그럴 리가 없다고 하겠지만, 학창시절 저는 지독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입학 직후 고교 동문모임에 가서 선배님들을 잘못 만났어요. 1학년 때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 선배님 말에 속아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강의실, 도서관과 하숙집을 오가는 찌질이 모범생이었지요. 이런 꼴을 보기 싫어하는 좋은 선배님의 영도 하에 가끔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술을 마신 추억과 친구들과 창경궁 돌담을 넘어 나무 밑에 숨어 소주를 마시다 들켜 혼이 났던 기억이 선합니다. 당시 함께 했던 친구는 현재 부장판사, 삼겹살집 사장님을 하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하루는 일요일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농활을 같이 가자고 해서 도서관에 책을 그대로 놔두고 강원도 봉평으로 농촌활동을 갔습니다. 하루면 되는 줄 알았는데 1박 2일이었습니다. 저는 농촌 출신이라 도시 출신인 친구들에 비해 농삿일이라면 감히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실력을 갖고 있습니다. 거의 농부 수준이지요(웃음). 경운기 운전, 삽질, 괭이질, 낫질 등등 모두 잘하거든요. 당시 봉평마을 주민들께서 제가 농삿일을 하는 것을 보고 며칠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동안 제 법서는 도서관에 1박 2일간 방치되어 있었답니다.




Q7. 성균관대학교에서 공부 말고 배워간 것이 있다면?


당연히 ‘인의예지’의 덕목이지요. 다른 대학에서는 결코 접할 수 없는 최고의 덕목을 배워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잘 다졌고, 지금은 그 덕목이 제 삶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인의’라는 덕목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사랑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가치’ 라는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 인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후에 깨닫게 되었지요. ‘예지’라는 덕목에는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을 표현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헌법상 기본권도 서로간 충돌을 야기할 수 있지만 상호 양보하는 미덕이 있어야 지켜질 수 있습니다. 성균인들은 법과 철학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이미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Q8. 졸업 후 변호사로 일하고 계세요. 왜 변호사가 되기로 하셨나요? 변호사로 일한다는 것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법조인이 꿈이었고, 그래서 법대에 들어왔고 사법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 변호사를 하게 된 솔직한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사법연수원에서의 성적에 따라 법원, 검찰, 변호사가 나뉘는데, 제 성적이 임관 성적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변호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변호사라는 직업이 참 좋은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변호사 업무를 통해 경제적 수익을 얻는 것도 있겠지만, 약자를 위한 변호, 공익을 위한 변론, 사회악을 추방하기 위한 역할 등 공익 보호와 법치주의 실현이라는 나름의 철학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 저에게는 참으로 뜻깊은 것 같습니다.




Q9. 인간 조순열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를 움직이는 동력은 ‘사람에 대한 애정’입니다. 저는 사람을 참 좋아합니다. 사람에 따라 사회적 평가가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를 존중하고 그것이 누구든 인간의 아름다운 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강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만나든, 사회적으로 비난 받고 있는 사람을 만나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존엄과 가치를 지켜주고 싶고, 어떤 사람이 가진 장점을 살려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이든 직업적인 삶이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어디든 달려가고 싶고,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를 움직이는 동력은 ‘인간 존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10. 끝으로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우리 성균관대학교는 국내 대학과의 비교를 넘어 세계 유수의 대학과 경쟁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성균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학업에 충실하고 사회에 진출하여 세계를 향해 포부를 실현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회 곳곳, 세계 곳곳에서 일등을 달리고 있는 선배님들이 후배님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랑스런 성균인으로 성장해 나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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