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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내편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저자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장자 「내편」, 이 책을 통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통의 사상가를 만난다!

신문방송학과 김정탁 교수

  • 장자 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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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동아시아 고전을 제대로 해석하려면 역·주·해·소·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譯)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역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고전은 번역만으로는 내용 파악이 쉽지 않기 때문에 모내기를 할 때 물을 주듯 번역한 글에도 물을 대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주(注)다. 해(解)는 해석을 뜻한다. 역과 주를 통한 글이라도 여전히 거칠거나 딱딱하므로 해석이 이루어져야 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달을 수 있는데 이것이 해(解)다. 그렇더라도 이 내용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것이 통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소(疏)이다. 마지막으로 이 내용에 대한 비판도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이 논(論)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동아시아 고전의 내용이 제대로 밝혀진다.

장자가 직접 쓴 글로 여겨져 장자사상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읽어야 할 내용이 장자의 내편이다. 이 책은 장자의 내편을 재해석한 것으로, 내편은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양생주(養生主)>, <인간세(人間世)>, <덕충부(德充符)>, <대종사(大宗師)>, <응제왕(應帝王)>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요유>는 내편의 총론에, <제물론>은 이론적 틀에 그리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은 각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가 보기에 장자의 텍스트는 다른 어떤 제자백가의 것보다 짜임새가 있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핵심에 이르기까지는 역(譯)·주(注)·해(解)·소(疏)·논(論)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장자를 재해석했고, 이 책에선 내편 역·해·소를 수록했다. 


왜 장자인가?


저자가 이 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왜 장자인가’였다. 저자가 보기에 이 질문엔 두 가지 뉘앙스가 있는데 하나는 ‘유가(儒家)’가 아니라 왜 ‘도가(道家)’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커뮤니케이션 전공자로서 왜 장자를 선택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에 저자는, “장자는 인류 역사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한 소통의 사상가이다. 그러므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는 학자로서 장자를 연구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고 확언한다. 저자는 오히려 장자의 이런 면모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을 안타까워하며,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노력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소통 사상가로서의 면모는 장자가 시작되면서부터 펼쳐진다. 첫 편 <소요유>가 큰 앎(大知)을 상징하는 대붕과 작은 앎(小知)을 상징하는 작은 새를 비교함으로써 소통의 중요성을 제기한다면 뒤이은 <제물론>에선 작은 말(小言) 대신 큰 말(大言)을 사용함으로써 소통에 이르는 방법론을 제시한다. 장자에서 내편만이 유일하게 장자가 쓴 것으로 보이고, 또 내편 중에서 <소요유>와 <제물론>이 장자사상의 뼈대를 형성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자 내용 전개의 핵심은 ‘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는 탈산업사회를 맞이해 산업사회에서 강조되던 조직의 논리가 후퇴하고, 이 빈자리를 개인의 창의가 메우고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일(work)도 놀이(play)로 바뀌어야 한다. 일 대신 놀이가 이루어지려면 장자의 ‘유(遊)’의 가치에 새삼 주목해야 한다. 장자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유로 표현한다. 그래서 노는 것도 유이지만 일하는 것도 유이고, 공부하는 것도 유이고, 사랑하는 일도 유이고, 여행하는 것도 유라고 말한다.

논어의 인(仁)이 공동체의 선을 목표로 한다면, 장자의 유(遊)는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목표로 하는데, 오늘날 개인의 창의가 중요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 시점에서 유의 의미를 새롭게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자연과의 소통으로 귀결되는 장자 사상의 핵심, <내편>


장자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목표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람과 자연과의 소통으로 귀결된다. 첫 편인 <소요유>의 주제가 소통이고, 또 뒤이은 <제물론>이 ‘호랑나비의 꿈’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호랑나비의 꿈’은 사람들이 꿈과 현실의 차이를 느끼지 않는 데서 출발해서 결국 삶과 죽음의 차이도 없다는 걸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사람과 자연 간 소통의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다. 그리고 무위자연에 입각한 삶이 얼마나 보람된 삶인지를 우리로 하여금 실감케 한다.

내편 중에서 소요유제물론인간세로 이어지는 축이 소통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면 양생주덕충부대종사응제왕으로 이어지는 축은 무위자연(無爲自然)에 따른 삶을 소개한다. 즉 <양생주>는 무위자연에 따라 생명을 온전히 보존하는 방법을, <덕충부>는 자연스런 덕이 충만한 사람의 모습을, <대종사>는 무위자연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응제왕>은 무위자연에 따라 천하를 다스리는 방법을 각각 설명한다.

그런데 무위자연에 따른 삶이라도 자연과 소통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소요유제물론인간세의 축이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을 다룬다면 양생주덕충부대종사응제왕의 축은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을 다룬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자는 인간끼리의 소통을 넘어서서 인간과 자연과의 소통까지를 목표로 하는 셈이다. 이럴 때 인간은 비로소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 이 점이 절대자에 의존해서 죽음을 극복하려는 서구의 유일신 종교가 추구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복잡해졌다. 부작용이 생기면 과거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게다가 지금 우리는 위험사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 부작용이 생기면 그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다. 따라서 일을 추진하는 단계에서부터 그 부작용을 염두에 두고 기획해야지 과거처럼 목표를 달성한 후에 부작용을 처리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만약 그렇게 접근하다간 부작용 처리를 위한 비용도 만만치 않아 결코 경제적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니 경제적이란 소리를 듣기 위해서라도 부작용 방지를 처음부터 염두에 둬야 하는데 무위자연의 원리에 따라 일을 기획하고 실행하면 이런 목표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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